다산길6 - 백련사 템플스테이 첫째날
장 소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246
일 시 : 2011년 8월 26일
강진읍의 사의재를 뒤로하고 백련사로 향한다.
백련사 옆이 다산초당이니,
이제 다산길의 순례도 마무리의 정점에 이르른듯 싶다.
이 여행길의 단초가 되어준 박석무 선생은 <다산연구소>를 설립하여 애쓰는 분이다.
박석무 선생이 번역한 茶山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다산사상이 더욱 올곧게 다가 왔다.
선생은 일평생 다산 연구에만 주력하시고 한때는 국회의원으로 牧民의 정치를 실천하시던 분이다.
선생을 처음 뵙던 때가 88년 4월 26일 13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선생께서 평민당 공천장을 받으러 가던 새마을호 침대칸에서였다.
이 지역의 민주인사 몇몇이 함께했던 즉석 침대칸 모임이 바로 그 공천장 수령길이었다.
선생은 야간열차 속에서도 고진담론을 막힘없이 펼치시어 우리들을 압도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다음날 여의도 백인회관에서 김대중 선생 주재로 공천대회가 열렸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그 시절 김대중 선생은 인동초의 새벽을 알리는 여명기에 계셔서 힘차고 밝은 모습이었다.
대회 후에 격려의 봉투를 나누어 주시던 김대중 선생의 흡족한 미소가 눈에 선하다.
그 시절, 선생이 밝고 후덕한 모습을 보여줄 때는 '정치자금이 많이 들어 왔을 때'라는 보좌관들의 입담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야당생활을 하기에는 군부의 독재가 너무나 심했던 시절이었음을 대변해 주는 우스개 소리 중의 하나다.
그렇게 평화민주당은 민주화의 틀을 다지기 위해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으니 후세의 사가들이 이를 기억하리라.
동교동의 김대중 선생 자택과 여의도의 평민당사를 오가던 필자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도무지 필자와 정치는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많은 선후배 정객들의 인맥이 교류와 소통의 장를 이루던 그 기회의 시간들 속에서 '할 일이니까, 잠시 머문다!'는 생각 이외에는 도통 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 시절을 회상해 보면서,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듯이 박석무 선생, 김대중 선생은 옥고 뒤의 영광이 있었는데 다산 선생은 그런 재기의 영광이 없었다.
다만 말없는 수천권의 저술이 선생의 품격을 대변해 주고 있을 뿐이다.
그런저런 상념 속에 템플 스테이 집결시간인 오후 4시 30분이 아직 일렀으므로 백련사 앞바다인 구강포 해안도로를 달려 보았다.
칠량 쪽의 산들이 아스라하게 산수화를 그려내며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 내고 있었다.
이름 모를 포구의 한적한 배들과 갈매기의 군무 속에서 비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 이곳이 강진만의 구강포 해안도로 -
- 구름이 가득 차면서 산수화를 그려 냈다 -
- 이름 모를 포구에서 -
- 배만 보면 어디론가 자꾸 미지의 세계로 가고싶은 호기심이 일어난다 -
- 드디어 백련사 초입 주차장에 도착했다 -
- 주차장에서 바라본 백련사 입구 -
- 만경루 아래 문이 진입로이다 -
- 대웅전 -
- 지엄하신 삼존불 좌상 -
- 석가여래상과 좌우의 여래불상 -
- 주지실 옆 방을 배정 받았다 -
- 주지 여연스님은 대흥사 일지암에서 차공덕을 쌓으셨던 분으로 茶論의 대가이시다 -
- 학정 선생의 글씨 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무소주 이생기심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
- 새벽 4시30분 기상이라는 점에 갈등을 느꼈던 템플 스테이 일정표 -
- 소나기 내리는 석등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
- 주지실 마루에서 바라본 백련사 앞 뜨락 -
- 공양간에서 저녁식사를 알리는 타종이 있었다 -
- 자율적 부페 배식 -
- 향신료를 쓰지 않은 채식 위주의 식단 -
- 담백한 사찰음식이 구미를 당겼다 -
- 마눌님 많이 많이 드소서 -
- 일담스님과 원정스님은 따로 상을 받았다 -
- 배식 후에는 자율설겆이를 해야 한다 -
- 비내린 뒤끝의 구강포 앞바다가 참으로 싱그럽다 -
- 강진만 뒤편이 칠량이라 한다 -
- 저녁공양이 끝난 후 잠시 자유시간의 산책길이다 -
- 원정스님께서 저녁타종 치는 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
- 원정스님은 미황사에서 외국인 수련 지도생활을 오래 했었다 한다 -
- 스님의 지도로 난생 두번째로 타종을 해 보았다 -
1987년쯤 동해안의 관동팔경을 순례하던 필자는 금강산 초입의 휴전선에 있는 통일전망대에 올라가서,
금기 시 되어 있던 범종 앞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사슬을 풀고 타종을 했던 기억이 있다.
비무장지대 건너편에는 한가하게 운동을 즐기던 북한 병사들이 있었는데,
타종 후 많은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범종을 울려대는 바람에......
북한과 남한의 경비병들이 모두 비상 상태에 돌입하였던 기억이 떠올라, 다시 웃음을 자아내게 해 준다.
그런데 그 기원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초저녁의 경내 -
- 저녁예불 준비로 바쁜 스님 -
- 모두들 저녁예불에 모였다 -
- 일담스님과 원정스님의 낭랑한 독경 속에 저녁예불이 시작되었다 -
- 저녁예불을 끝내고 원정스님의 처소에 들러 차공양을 대접 받았다 -
- 정통 일지암파 녹차공양은 참... 감미로웠다 -
- 박윤실양과 모나리자님이 열심히 스님의 법문을 경청하고 있다 -
마음이라는 놈!
應無所住 응무소주
而生其心 이생기심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내 놓아 보아라
어디 출신의 마음이더냐
네 이놈!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있다 없다 장난질 말고
어디 그 알몸 드러내 보아라
고이연 놈!
평생을 괴롭히는 놈!
- 小 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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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인생과 불교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눈풀린 부처님(?) 모습 -
원정스님 이야기 중에,
한 어린이가 "왜 부처님 눈은 졸린 듯이 풀려 있는거에요?"라 물었다 한다.
선매삼경에 든 부처님의 졸린 눈! 풀린 눈!을 지적해낸 말이다.
이제 부처님의 눈이 정확히 어디에 시선을 고정시키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
오랜 수행 끝에 대열반을 이룬 대선각자의 눈이 그러하다는 것을 대변해 주는 말이다.
풀린 눈!
- 주지실 처소의 석등도 꺼지고 이제는 수면공양할 시간 -
참으로 귀하고 값진 시간들이 흘러간다.
벼르고 별러 참석했던 템플 스테이는 약간의 긴장감 속에서 소중하게 필자에게 다가 왔다.
천주교인으로서 십계명의 계율을 어기는 죄에 대한 갈등도 이제는 해소되는 성 싶다.
물론 몇해 전부터 필자는 대웅전의 참례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시작하는 달관의 수행을 다시 시작했으나,
이번의 정식 예불 참례를 통해서 모든 종교의 마지막 귀착지는 하나임을 크게 깨달았다.
그래, 유무자재有無自在 일체유심一切唯心이라 하지 않던가.
'있다 없다가 마음 속에 있으니 모든 것이 오직 마음 속에 있다'라는 말 아니던가.
마음 속에서 모든 지음이 있는 까닭이니......
오로지 당신 마음만을 친구할 일 아니겠는가.
2011년 9월 22일 목요일
사진을 정리하며... 小 鄕 權 大 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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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은 아래 링크된 블로그에 더 있습니다.
http://blog.daum.net/valer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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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배경음악은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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