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순례기

서울 길상사 - 매화향기 가득한 성지순례 4

梅君子 2012. 4. 20. 10:33

 

 서울 길상사 - 매화향기 가득한 聖地巡禮 4

 

 

 

                                                                                                          일   시 : 2012년 4월 15일

 

                                                                                                                             장   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323

 

 

 

아름다운 봄날 문득 서울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매화 찾아, 성지 찾아 떠나온 것이 어느덧 서울에까지 이르게된 것이다. 

 

서울에는 가보고 싶은 성지가 어디 한둘이랴.

 

새남터, 약현성당, 절두산 등등 성지가 한두군데여야 말이지.

 

그러나 번잡한 서울에서 오래 머물기에는 강원도의 성지 일정이 너무나 빠듯했다.

 

서울 주변이야 많이 다녔던 곳이니,

 

오늘은 성북동의 길상사만 참례하고는 바로 강원도로 떠날 것이다.

 

'맑고 향기롭게'의 본향인 길상사는 산중생활로 많은 가르침을 주시던

 

법정스님의 향기가 서려있는 곳이기에 꼭 참배하고 싶었던 장소다.

 

 

아름다운 절, 길상사!

 

보고나오는 마음 속이 온통 담백한 봄꽃들로 화려하게 채색되었다.

 

다시금 새겨보는 법정스님의 말씀들이 울림이 되어서 곳곳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은 공간이었다.

 

오기를 잘했다는 느낌을 가질수 있어 다행이다.

 

 

꼭 한번 참례하고 싶었던 절이다.

 

속세의 도화꽃 궁전이 어떻게 피안의 향기로 채워지며 정화되었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너무 선진화된 절의 느낌이, 어쩐지 거북한 감이 드는 것도 조금은 사실이었다.

 

법정스님의 향기가 아니었으면 이곳 기화요초들의 청량한 빛은 바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의 향기는 오래도록 신통력이 있는 법이다.

 

잔잔하게 살다가 맑게 간 양반!

 

그 향기가 그곳에는 곳곳에서 숨쉬고 있었다.

 

 

 

 

- 길상사 뒷편 주차장 공간 -

 

- 돌담에서의 모나리자님 -

 

- 차를 파킹하고 내려가야 정문에 이른다 -

 

- 길 옆의 고급주택들 -

 

- 진달래, 개나리로 수놓은 이쁜 집들 -

 

- 삼각산 길상사 -

 

 

 

 

 

길상사 [吉祥寺]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삼각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고급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대원각을 송광사에 시주하여 탄생하였다.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였으며, 1997년에 길상사로 사찰명을 바꾸어 창건하였다. 사찰 내의 일부 건물은 개보수하였으나 대부분의 건물은 대원각 시절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경내에는 극락전, 범종각, 일주문, 적묵당, 지장전, 설법전, 종무소, 관세음보살석상, 길상화불자공덕비 등이 배치되어 있다. 사찰의 대웅전격인 극락전에는 아미타부처를 봉안하고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시민운동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도량으로 해마다 5월이면 봉축법회와 함께 장애우, 결식아동, 해외아동, 탈북자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개최한다. 승려이자 수필작가인 법정이 1997년 12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회주(會主: 법회를 주관하는 법사)로 주석하였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일주문이라 해야 하는가 -

 

- 상시 피어있는 불연佛緣의 꽃등 -

 

- 메인 법당인 극락전 -

 

- 범종각 -

 

- 타종으로 하루를 깨우는 곳 -

 

- 마침 피어난 개나리가 인상적이었다(적묵당) -

 

- 극락전에서는 일요법회가 준비중이었다 -

 

- 곳곳에 있는 서구식 집들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

 

- 담백한 조경미가 퍽이나 솜씨있어 보인다 -

 

- 많은 건물들이 대원각 시절 건물 그대로라고 한다 -

 

- 담장에 두른 개나리 하나하나도 정성이 배어 있다 -

 

- 담장을 내다보고 있는 꽃을 보아라 -

 

- 예전에는 기방으로 드나들던 문이었을까 -

 

- 특이한 건물들이 많은 곳이었다 -

 

- 길상선원 -

 

- 스님의 행보가 여유롭다 -

 

- 쉼터 하나하나의 배치도 정성이 들어 보였다 -

 

- 핑크와 옐로우의 조화美 -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 무소유-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 홀로 사는 즐거움 -

 

 

 

 

 

 

 


 

법정 [法頂]

 

속명은 박재철이다. 1932년 10월 8일 전라남도 해남(海南)에서 태어났다. 1956년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3년을 수료한 뒤, 같은 해 통영 미래사(彌來寺)에서 당대의 고승인 효봉(曉峰)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같은 해 7월 사미계(沙彌戒)를 받은 뒤, 1959년 3월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승려 자운(慈雲)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어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승려 명봉(明峰)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하였고, 《불교신문》 편집국장·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및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송광사 뒷산에 직접 작은 암자인 불일암(佛日庵)을 짓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면서 홀로 살았다.

 

1994년부터는 순수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끄는 한편, 1996년에는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이듬해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었다. 2003년 12월 회주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강원도 산골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면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폐암이 발병하여 3~4년간 투병생활을 하였으며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78세(법랍 54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생전에 수필 창작에도 힘써 수십 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였는데, 담담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정갈하고 맑은 글쓰기로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 작가로도 문명(文名)이 높다.

 

대표적인 수필집으로는 《무소유》 《오두막 편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소리》 《산방한담》 《텅빈 충만》 《스승을 찾아서》 《서 있는 사람들》 《인도기행》 등이 있다. 그 밖에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숫(수)타니파타》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법구경)》 《인연이야기》 《신역 화엄경》 등의 역서를 출간하였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행지실 -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 때일 뿐, 그러나 그 한 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기-

 

 

 

 

 

- 아름다운 매화가 반겨주어 나도 반가웠다 -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 오두막 편지-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있는 것이다.

 

- 물소리 바람소리-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 산방한담 -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 홀로 사는 즐거움 -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람도, 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 오두막 편지-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 산에는 꽃이 피네 -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

 

 

- 지장전 -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 버리고 떠나기-

 

 

- 곳곳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

 

 

 

 

 

누군가가 필자에게 '법정이 성자였는가?'.

'그래서 순례코스로 잡았는가?'하고 묻는다면,

필자는 단호히 법정스님은 '성자가 아니다!'라고 답을 할 것이다.

 

그러나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내용이나,

그 말씀의 아름다움에 감복하여 선듯 길상사를 내놓은 김영한님이나

모두가 성인의 반열에 들어서기에 흡족한 인물들이었기에

공경하는 마음으로 참배하는 것이라는 말은 해주고 싶다.

 

오래도록 명경헌의 숲속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부터 '산정山亭'에서 느끼는 바가 컸기 때문에

법정스님을 흠모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 순례코스에 넣었다고 한다면 그대는 수긍을 해 주겠는가.

하고 안하고는 그대의 자유이다.

그대를 필자가 존중하듯이,

필자의 견해 또한 존중해 준다면 바랄 나위 없겠다.

그러므로 법정스님은 이 시대의 사표師表이셨다고 정의하겠다.

 

 

 

 

- 누각이 딸린 아름다운 한옥구조는 산속 암자를 연상시킨다 -

 

- 길도 예사롭지 않게 포장되어 있어 그 색감이 미려하다 -

 

- 입구쪽 쉼터 -

 

- 봄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기 시작한다 -

 

- 범종각과 극락전의 모습 -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산에는 꽃이피네 -

 

 

 

▲ 서울 성북동 길상사 관세음보살상.  법정 스님의 발원에 따라 조각가 최종태가 2000년 화강암으로 조성해 봉안했다. 높이 180㎝.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1) 서울 길상사 관세음보살상

 

천주교 신자가 만든 ‘창작불상’의 파격미

 

양식(樣式)이란 ‘시대나 부류에 따라 각기 독특하게 지니는 형식’이라고 국어사전은 정의합니다. 실제로 불교가 전래된 이후 우리 불교미술은 시대별로 뚜렷한 특징을 보여왔지요.

하지만 최근의 불교조각은 과거 작품에서 좋아 보이는 요소를 덜어내 조합시키곤 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양식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훗날의 미술사학자들은 정확한 시기와 제작지를 알기 어려운 고대 불상이 아니라,20∼21세기에 만들어진 불상 때문에 혼선을 빚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나아가 이 시대의 불교조각은 아예 미술사의 연구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마저 듭니다.

 

양식이 사라진 시대에 조각가 최종태(1932∼)의 관세음보살상은 ‘창작 불상’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법정 스님의 권유로 조성된 이 관음상은 2000년 4월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봉안되었습니다.

길상사 관음상이 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은 불모(佛母)를 맡은 이가 가톨릭미술가협회장을 맡을 만큼의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이지요. 그는 호기심을 갖는 이들에게 “땅에는 나라도, 종교도 따로따로 있지만 하늘로 가면 경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최종태는 소녀상과 소녀다운 성모 마리아상으로 이름을 날린 조각가입니다. 길상사 관음상의 이미지가 성모상의 연결선상에 있는 것도 심성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는 불교의 견성(見性)이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나라가 모두 같은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하지요.

이 관음상은 한국 불교 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의 하나인 국보 제83호 삼산관반가사유상과 이미지가 비슷합니다. 사유상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반면 관음상의 표정에서는 슬픔이 스쳐가고 있음에도 그렇습니다. 관음상은 여러 개의 봉우리가 솟은 관을 쓰고 있는데, 반가상의 삼산관(三山冠)을 떠올리게 하여 더욱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최종태는 실제로 창작에 한계를 느꼈던 젊은 날, 삼산관사유상을 비롯한 삼국시대 불상들이 막혔던 길을 뚫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회고하고 있지요.

 

길상사 관음보살은 삼국시대 말기 이후에 많이 만들어진 관음상처럼 왼손에는 맑은 물이 담긴 정병(淨甁)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목이 길다란 전형적인 관음보살의 정병이 아니라 조선시대 초기의 분청사기 편병처럼 납작한 모양이지요. 그것도 들고 있다기보다는 가슴에 품듯 감싸안고 있습니다.

오른손은 아무 걱정 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바닥을 펴든 시무외(施無畏)인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 관음상에서 가장 불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부드럽게 흘러내린 겉옷은 관음보살의 대의라기보다는 수녀복에 가깝고, 대좌 또한 연화좌가 아니라 성모상에 흔히 쓰는 장식 없는 사각형이지요. 이미지는 삼국시대 불상과 닮았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실제로 닮은 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최종태는 앞으로 불상을 더 만들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파격적인 불상이 예배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술 쪽에서도 이 관음상을 불교미술사의 영역이 아닌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평가할 가능성이 크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전통을 잃어버린 시대에 길상사 관음상은 우리 불교미술의 돌파구가 어디인지 한번쯤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dcsuh@seoul.co.kr


[출처] 서울신문

 

 

 

 


 

 

 

 

존재함으로 자각한다.
자기를 성찰 하는 공부가, 없으면 안된다.
일체의 모든 법은 무상으로 존재함을 알고 살아야 한다.

 

강낭콩을 땅에 심어 두면 햇살과 바람, 비가 그를 자라게 한다.
싹이 트고 열매가 열기까지 기후의 조건에 따라 수확이 다르다.
조건이 기후도 되지만, 심은 자의 성찰省察에 따라 달라진다.

겨울에는 나비를 볼 수 없다. 3월 이면 어디에서 있다 오는지 꼭 찾아 온다.
나비를 성찰하는 사람은 겨울에도 나비를 본다.
3월의 매화꽃 속에는 겨울의 눈보라가 들어 있다.
그리고 7월의 푸른 열매가 주렁주렁함을 볼 수 있다.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열매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매화꽃 속에는 열매가 존재하는 것이다.

 

성찰하라. 깊이를 보라. 생이란 나의 생일날 부터이다.
나의 탄생은 부모의 조건이다.
성장하는 조건에 따라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신神이 나를 만든 것이 아니다. 행복도 불행도 내가 만들어 간다.
만약 신이 있다면, 3살난 어린아이를 지진으로 매몰하지 않을 것이다.

 

무상이란 흘러가는 세월이다.
가는 세월은 권력으로도, 재력으로도 막지 못한다.
모든 조건과 형상은 나타나고 사라진다.
이것 또한 무상 이다.

 

조건이 모여서 희노애락을 만든다.
빠지면 오욕락이요 성찰하면 무상이다.

시절인연을 상호보완하는 용기가 불교 공부다.
깊이 들어다 보는 성찰. 그것이 현현 가피다.
앨범 속에서 5살 때의 자기를 한번 보라.
보낸 세월의 조건에 안이비설신의와 수상행식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무한이 변하고 고정불변 하는 것이 무상이다.

 

하루에도 열번씩 자신을 성찰 하라.

 

[출처] 법정스님 말씀

 

 

 

- 템플  스테이 안내판 -

 

 

 

 

너무 좋아할것도 없고 너무 싫어할것도 없다.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 너무 미워해도 괴롭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 두가지 분별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 괴로움도 젊음을 좋아하는데서 오고
병의 괴로움도 건강을 좋아하는데서 오며
죽음 또한 삶을 좋아함
즉 살고자 하는 집착에서 오고
사랑의 아픔도 사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가난의 괴로움도
부유함을 좋아하는데서 오고
이렇듯 모든 괴로움은
좋고 싫은 두가지 분별로 인해 온다.

좋고 싫은 것만 없다면 괴로울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처럼
무감각하게 살라는 말은 아니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 하더라도
거기서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되다는 말이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그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분별의 괴로움이 시작된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머무는 바 없이 해야한다.

인연 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 따라 받아 들여야 하겠지만
집착만은 놓아야 한다.

 

- 법정스님 말씀 중에서 -

 

 

 

- 아름다운 절이다 -

 

- 그러나 서울도심이라는 한계 때문에 좀 답답해 보였다 -

 

- 이렇게 깨끗한 해우소는 드물다 -

 

- 봄의 꽃이 길상을 노래한다 -

 

- 인위적인 꽃도 길상을 노래하니 -

 

- 길상의 천국이로구나 -

 

- 태곳적 부터 있어왔을 바위가 신비롭다 -

 

- 바위 위의 나무 또한 신비롭다 -

 

- 이제는 길상을 마감하는 시간 -

 

- 오래도록 지친 도시민을 위로하거라, 길상이여 -

 

 

 - 법정스님 계시던 곳의 백매님도 영원무궁하시거라 -

 

 

 

 

 

< 풍경에 취한 데생 - 60 >

- Dessin for Enraptured at the Scene -

  

 

 

聖地 巡禮 4 - 서울 길상사

 

 

대원각에는

지분거리는 화장내

가득했겠지

 

장안의 내로라 하는 이들

각이니 루에서

향연 즐겼겠지

 

부처님 찾아 오시니

맑고 향기롭게

상서로움 가득찼다

 

맑은 터로 승화되니

땅의 일도

참, 알수가 없구나

 

이승에서 남긴 추억들

슬픔은 청류되어 내려가고

기쁨은 꽃향기로 오르니

 

법정의 향기, 처처에서

무욕으로 빛을 남긴다

길상이여 승화되거라

 

 

- 小鄕 權大雄 ( infol@daum.net )

 

            

 

 



 

 

 

 

종무소 관계자분에게,

'강원도 쯔데기골의 법정스님 사시던 오두막을 방문해 보려고 하는데

법정스님도 남의 민가를 빌어 사용하신듯 하여서 출입이 자유로운지 궁금하다'고 물어 보았더니,

가급적이면 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어찌나 관광객이 많이 찾아가는지,

심지어는 방 내부를 보기 위해 창유리를 깨고 사진기를 들이미는 몰상식한 행동들이 많아서

그 집 주인이 아주 질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어 보기를 잘했다.

필자같이 깊은 산골에서 혼자 숲속 생활의 여유에 감동하는 이들에게는

법정스님의 사시던 모습이 삶의 멘토가 되기는 하겠으나,

굳이 욕까지 먹어가면서 쯔데기골을 참배하고 싶지는 않다.

송광사 불일암을 재작년에 참배했으면 되었지,

법정스님의 껍데기인 행주좌와行住坐臥의 흔적이 무에 그리 중요할까.

 

그런 마음이 들어 일찌감치 단념하기로 했다.

법정스님은 조계종의 초대종정을 지내신 효봉스님의 제자시다.

그 법형제 분들이 바로 시인 고은님하고 송광사 방장이셨던 구산스님이시다.

필자는 고은 선생님하고 구산스님은 직접 뵌적이 있으나,

언제고 한번 뵈어야겠다던 법정스님을 생전에 뵙지 못해서 그리움이 더 컸던 모양이다.

 

글로써 사람이 정도正道를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풀어주고, 몸으로써 실천하는 삶을 사셨던 분이기에 더욱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직접 뵈온다 한들,

그 말씀으로 대오각성하던 초심의 그 마음만 할까.

그러니 애써 집착을 끊을 일이다.

스님도 집착을 끊어야 자유로워질 것이라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이 들자, 모든 사유가 맑고 향기로운 그늘에 휩싸여 명쾌해졌다.

 

맞아! 

법정스님의 향기는 이로써 충분해!

그러니 이제는 자장율사의 길을 따라서 금강산 건봉사로 성지순례를 떠나는거야!

그런 마음으로 길상사를 빠져 나왔다.

 

 

 

 

 

 

 

 

- 2012년  4월 28일  완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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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鄕  權大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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