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순례기

무등산 신년 비박 - 61, 이제 다시 시작이다!

梅君子 2013. 1. 6. 13:27

 

무등산 신년 비박 - 61,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일 시 : 2012년 12월  31일 ~ 2013년 1월 1일

 

                                                                                                                                   장 소 : 전남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무등산 장불재)

 

 

 

 

이제 임진년의 묵은 해가 지나가고 계사년의 새해가 떠 오르는 시각이 되었다.

광주인들의 신년맞이 행사인 [무등산 일출 산행]에 해마다 습관을 들인 필자는 이번에도 어김 없이 몸살이 나기 시작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새해 새아침을 무등산 마루금에서 보내고 싶은 광주산꾼들의 증상이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도져오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때 무등산 중봉(915m)을 처음 오른 이후,

철마다 혹은 매 주말마다 어김없이 찾아 다니던 무등산(1187m)이었는데 이번에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었으니 더 조급하다.

왜냐하면 그 수많은 날을 야영할 수 있었던 광주인들의 행복을 이제는 포기해야하기 때문이다.

무등산을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물려주는데 있어서는 이견이 없고 매우 잘된 일이라 여기지만,

필자의 경우 노년의 즐거움을 무등산과 함께 하려던 계획은 수정을 필요로 하게 되어 그 점이 못내 서운한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래 오늘은 무등산과의 고별 야영이 될 것만 같아 떠나는 마음이 어쩐지 숙연하다.

저번에 안양산 야영 글을 올렸을 때 어느 누리꾼이 도립공원에서 야영했다고 필자를 따라 댕기면서 몹시도 비난했던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물론 정당하지만(그래도 꼭 그렇게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해야만 할까 싶다),

무등산을 평생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곳에서 숙영하며 호연지기를  키우던 청장년기의 필자 심정을 헤아려 주시기를 부탁드릴 뿐이다.

그러므로, 내년 3월 무등산국립공원 개원식 이전에 결행하는 마지막 고별 야영이 바로 오늘이라 생각하시고 널리 해량해 주시기 바란다.

 

무등산을 가득 안았던 마음을 이제는 세계인에게 내어 놓으면서 그러나 아프기만한 이 마음도 있었음을 헤아려 주신다면 고맙겠다.

요즘은 원칙만 따지시는 도덕군자 누리꾼도 계시어서 늘상 조심스러운데,

과연 그분은 자신에게 정말 충실한 삶을 원칙적으로 살아내고 계시는지 한번 지켜보고 싶은 마음 어쩔 수가 없다.

지나가는 행인이 무심코 던진 돌에 연못의 개구리는 목숨이 경각에 달리기도 하기 때문에

댓글을 다시는 분들은 부디 쓴소리는 자제하시고 힘을 주시는 아름다운 댓글을 지향하시면 어떨까.

차라리 그냥 지나 치시던지...... 애써 글을 올리는 자의 심정도 해량해 주시면 어떨까......

 

 

 

 

 

 

- 광주시에서는 무등산국립공원 승격 해맞이 기념행사를 증심사에서 개최할 예정인데 5천명분의 아침이 제공된다고 -

 

 

 

 

- 무등산을 찾아가는 길에 우연히 조우했던 임진년에 보는 마지막 해와 독수리의 비상이 매우 상서롭게 다가 온다 -

 

 

 

 

어찌 그리도 부지런히 무등산을 찾았는지 모른다.

젊은 청년시절에는 쇄인봉과 의상대에서 암벽대원들과 함께 자일을 타면서 젊은 기를 한껏 발산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크로스 칸츄리에 참가하며 무등산을 울트라 마라톤으로 주파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학창시절을 함께했던 곳이 바로 무등산이었으니

어찌 감회가 남 다르지 않으랴.

 

이번에 지리산국립공원의 3봉을 오르면서 느낀 점은 너무나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그 부러움이었다.

지정 탐방로에는 쓰레기 한 점 없이 말끔해 보였고, 곳곳을 자연휴식년제로 묶어서 식생보호를 잘하고 있었던 점이 그 부러움의 주된 이유였다.

그런데 2010년에 670만명이 다녀 갔다는 무등산은 북한산 다음으로 국내 등산인구의 탐방이 잦은 곳이라 환경파괴의 우려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국가가 책임을 지고 관리하게 된다면 자연유산을 그나마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어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기며 마음만은 가뿐하다.

  후손들이시어...... 함께 기뻐하시자!

 

 

 

 

- 화순 수만리4구에 도착하여 차를 파킹하고서 등정 준비를 한다 -

 

- 장불재(900m)의 KBS중계소 좌측 마루금이 오늘의 야영장소다 (사진 출처 :이경선님) -

 

- 너와 나의 목장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오던 견공 -

 

- 임도를 벗어나자 본격 산행 준비를 한다 -

 

- 영하 8도의 눈보라에 아이젠과 스패치는 필수!다 -

 

- 근래에 정말 엄청난 눈이 쌓여 등로가 아닌 곳은 무릅이 쑥쑥 들어간다 -

 

- 힘들게 오르던 등로 중반쯤에서 만난 유일한 쉼터의 벤치 -

 

 

 

 

그러나 필자로서는 국림공원 승격이 다시금 생각해 보아도 정말 애석한 일이기는 하였다.

필자가 사랑을 바치던 무등산을 규모있게 보호하자는 일에는 절대 찬성을 하겠으나 그로 인해 필자의 노년 놀이터가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에 정말 안타깝다.

륙색에 군용 A Tent를 넣어 등에 짊어지고서 권총반도에는 미군수통과 대검을 달고서 찾아가던 중학교 시절의 무등산은 그러니까 1960년대의 추억이었으니,

어언 사오십년 전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

 

당시 필자는 충장로에 살고 있었는데 황금동의 미국공보원 앞에는 유명한 반찬가게가 있었다.

아마도 불로동에 술집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쪽에서 구매가 많아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났던 반찬가게였다.

그래 친구들과 미국공보원 앞에서 만나 반찬가게에서 김치며 나나스께며 짜장을 사서 륙색에 쑤셔넣고, 그당시 유일하게 운행하던

1번 버스(임동 공설운동장 - 학동 숭실고 노선)을 도청 앞에서(그때는 버스비가 3원이었다) 타고 학동삼거리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하던 기억이 늘 감미롭기만 하다.

와잠혈의 천하명당이라던 현준오씨 제각을 지나 배고픈 다리와 배부른 다리를 지나치던 무등산 증심사 길은 유달리 자갈이 많아 군화발에 채이기만 하여 성가셨다.

 

주마등같이 흐르는 소년시절의 추억 속에 무등산은 항상 함께 하고 있었다.

주말마다 찾아가 텐트를 치고 야영하던 원효사, 풍암정, 신선대, 약사암이며 쇄인봉, 증심사, 당산나무, 중머리재, 중봉, 동화사 터, 바람재 등등...

아름다운 시절의 아름다운 꿈이 그렇게 일장춘몽처럼 지나갔는데 이제는 야영이 금지되는 구역으로 묶이게 되었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랴?

그러나 천번만번이라도 국립공원 승격은 정말로 잘한 결정이라 싶다.

그러니 감내해야 한다.

노년의 놀이터로 너 혼자 욕심을 부리기에는 무등산의 기상이 너무나 아깝고 장엄하기 때문이다.

 

무등산이 어떤 산이시던가.

임진왜란 때에는 수많은 의병장들이 칼과 창을 만들어 호연지기를 기르며 병란을 대비했었고,

일제하에서는 광주학생들이 총궐기하던 그 의기로운 기상을 키워 주시던 산! 아니시던가.

그리고 지금에 와서도 군사독재를 척결시키고 이제는 참민주주의를 향하여 앓고 있는 광주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바로 무등산! 아니시던가.

혹자는 이번 대선에서 광주인들이 90%이상 결집했던 양상을 보고서 너무 편협된 주권행사라 할지 모르겠으나,

이 망국적인 지역대결 구도를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정말 우리 국민의 선진화된 민주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싯점이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기 아파트의 지가 하락이 무서워 보수를 선택했다는 정말 한심한 60대를 바라보면서 동년배로서 안타까운 일이라 여기며 매우 부끄럽다는 말씀을 올린다.

정말 60대 이상은 이번에 욕을 얻어 먹어도 싸다.

중고등학교 시절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경찰에, 방첩대에,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던 그 끔찍한 세월을 치러내고서도,

그 횡포를 망각한체 친일의 찌꺼기로 무장된 군사독재의 잔재가 남아있는 어정쩡한 보수를 지지했으니 욕을 먹어도 정말 싸다.

오로지 정적 김대중을 죽이기 위해서 망국적 지역 구도를 각본으로 짜냈던 지난 날 군사독재의 잔재들은 정말 사라져야만

진정한 국민화합이 이루어질 것이라 필자는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대선 구도를 바라 보면서 지역대결 타파야 말로 조국의 명운이 달린 중차대한 일이라고 여겨 다시금 강조해 본다.

지역이념이 아니라 참의식으로 무장된 국가이념을 논쟁하는 정치인들의 맑은 대동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것이 필자의 소망이라는 점을 밝혀 둔다.

 

그러니 무등산인들 얼마나 피곤하고 아프시겠는가.

그 역사의 심장부에서 백두대간을 품에 안고서 가슴으로 아파하는 산이 바로 무등산! 아니시던가 말이다.

 

모두가 듣기 싫어하는 정치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려 하나,

다시금 강조해 봐도 이는 탐관모리배들의 흐린 정치이야기가 아니라

민족의 명운과 흥망성쇠가 걸린 테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할 과제라 생각되어 길지 않은 글로서 그 답답한 소회를 밝혀 보았다.

 

그러므로 기득권을 잡은 분들은 차제에 진정으로 나라와 겨레를 살릴 국정방향이 어디에 있는가를 곰곰 살펴서 따지고 전진해 주시기를 신신당부 부탁 드려 본다.

우리는 한민족 한뿌리이기 때문에 비록 대결과 이념 논쟁은 할지언정 겨레를 위한 공통선을 향해 나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모두 함께 매진해야만 하는 까닭이다.

 

 

 

 

- 너와 나의 목장 좌측으로 만연산이 보인다 -

 

- 너와 나의 목장에서 장불재(1.7Km) 코스의 2/3 지점에서 만나는 약수터의 물맛은 정말 달고 시원했다 -

 

- 유달리 급경사가 심한 등로가 다행히 럿셀이 되어 있어서 무난하게 장불재에(900m) 오를 수 있었다 -

 

 

 

 

무등산 눈길

 

 

 

 

얼마나

오랫동안

이 길을 다녔던가

 

무등산아

그대는 아시는가

 

오매불망

그대 사모하며

오르내리던

그 정성을

 

눈길에

발자욱 그리며

어제도 지나갔을

내일도 지나갈

그들을 향해

기도 드리노라

 

다만 헤아림 없이

빈마음으로

오르시라

 

아픈 마음

시린 마음

모두모두

내려 놓으시라

 

따뜻함과

자애로움은

길동무하시면서

 

다만 빈마음으로만

무등산 눈길

오르시거라

 

 

 

- 小鄕 權大雄

 

 

 

 

- 장불재에 올라 안양산 방향으로 200미터 정도 전진하면 오늘의 비박지가 나온다 -

 

- 광주비박팀이 벌써 도착해서 본부동인 알타이를 치고 있었다 -

 

- 알타이 쉘터는 12명 정도의 비박이 가능하단다 -

 

-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삽으로 걷어내야만 하였다 -

 

- 본부동과 함께 개인 텐트들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간다 -

 

- 알타이 텐트를 완성하는 중에 날은 저물어가며 눈보라도 심해 졌다 (사진 출처 : 산이조아님) -

 

- 그렇게 밤이 되자 광주의 야경이 빛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

 

- 각자 준비한 찬거리를 디팩에 담아 본부동에 모여 저녁파티를 준비하였다 (가운데 필자, 출처 : 산이조아님) -

 

  - 인자하신 자연조아님과 섬세하신 슈렉님 -

 

- 좌장이신 스킨님과 맑은 별달님, 활달하신 루이님 -

 

- 스킨님은 눈을 감으신게 아니라 음식요리를 지휘하고 계신다 -

 

- 다정함의 상징 재백님 부부 -

 

- 매사에 깔끔하신 산이조아님 -

 

- 2012년의 마지막 하현달이 떠 오르기 시작하였다 -

 

- 야간산행으로 10시경에 도착하신 멋장이 다도님과 힘찬 악동님이 착한 별달님과 함께 사이트를 구축중이시다 -

 

- 그렇게 2012년 마지막 밤은 광주의 야경과 함께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 -

 

- 필자의 아지트는 새벽내내 영하 15도 체감온도 -20도의 세찬 눈보라를 잘도 견디어 주었다 -

 

 

 

 

무등산 비박

 

 

 

계사년 새해를

무등산에서 맞이하러

떠난 비박 여행

 

장불재에서

눈보라 이겨내며

묵은 해와 이별한다

 

잘 가시오

다사다난했던 그대

아픈 마음일랑

부디 곱게 접으시오

 

깊은 밤

하현달 떠 오르니

환희심 일어 난다

 

꽁꽁 언 영하15도지만

이제 우리는

한마음으로 이겨 내리니

 

해야 솟으시오

희망이여 웅비하소서

 

비는 마음에

나라와 민족이 겹치며

오래도록

명상길을 뒤척인다

 

 

 

- 小鄕 權大雄

 

 

 

 

- 광주여! 새해에도 그 빛나는 기상! 잃지 마소서! (사진 출처 : 산이조아님) -

 

- 마지막 2012년을 외로이 지키던 달님은 무슨 상념에 잠기셨을까 -

 

- 그렇게 2013년 새벽을 맞이하였다 (출처 : 산이조아님) -

 

- 맑은 아침을 담으시느라 부지런한 별달님과 산이조아님 -

 

- 별달님 카메라에 잡힌 필자 -

 

- KBS 중계소 마이크로웨이브 타워 -

 

- 이쪽 편으로 멀리 월출산이 보여야 하는데,오늘은 새해와 하경 모두 건질 수가 없었다 -

 

 

 

 

무등산 하경

 

 

 

무등산에서

천하를 내려다 보면

어느덧

교만은 사라진다

 

평등한 세상

꿈꾸며 천불천탑 새겼을

운주사도 보이고

 

하화중생 제도하자며

곳곳에 기도 드리던

월출산도 보이고

 

천지 가득 구름 품은

민족 최고의 성산

지리산도 보인다

 

다만 보이지 않는 것은

그대의 닫힌 마음

 

열어 내 보아라

무등이 치유해 줄 것이니

거침 없이 내어 놓아라

 

무등산에서 바라보면

천하는 내 것이 아니고

님의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님은

무등산이실 밖에

 

 

 

- 小鄕 權大雄

 

 

 

 

- 원래는 새벽에 이런 운해도 보여 주시고 -

 

- 장엄한 일출도 보여주는 산이 무등산이신데... 정말 안타깝다 -

 

 

 

 

새해 새각오

 

 

 

누구나

새해를 맞이하면

새각오를 한다

 

올 해에는

이루어지이다

비는 마음 긴절하다

 

그러나

뒤돌아 보면

얼룩이 많은 한 해다

 

그래

실망을 한다면

삶의 원동력 없다

 

끊임 없이

맑은 세상을

희구하며

 

새해

새각오를

다시금 여미자

 

마음 속에

각오를 되새김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 小鄕 權大雄

 

 

 

 

- 장불재의 송신탑에 매서운 눈보라가 다시 휘감기 시작한다 -

 

- 장불재에 신년맞이 광주산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

 

 

 

 

무등산 장불재

 

 

 

 

장불재는

노루부처들

뛰어 다니시는 곳이다

 

오쳔년을 뛰며 나던

장불재는

빛고을 지켜 보았다

 

새벽 약수 길어

기원 드리던

그들의 정신 읽었다

 

오로지

소원하는 것은

평등한 세상

빈부 없는 세상

 

너와 내가 남이 아니고

아픈 이는 치유시키

배고픈 이는 서로 돕자던

그들의 기상에 기쁘다

 

아프면 지켜 줘라

배고프면 나눠 줘라

너와 나도 구별하지 말아라

 

장불재는 이르신다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만 살라신다

 

 

 

- 小鄕 權大雄

 

 

 

 

- 무등산의 유명한 상고대 -

 

- 눈보라가 거세져 철수작전이 매우 힘들다 -

 

- 그러나 모두들 비박의 베테란들이라 여유만만이시다 -

 

- 필자도 완전군장을 갖추었다 -

 

- 그렇게 신년맞이 비박은 종결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

 

- 중머리재 방향으로 하산하실 광주비박팀과 여기서 작별을 고한다 (사진 촬영 : 별달님) -

 

- 홀로 다시 너와 나의 목장 길로 하산을 시작했다 -

 

- 잊지 못할 신년비박의 추억을 눈에 깊이 담으며 하산한다 -

 

- 날이 좋으면 이런 무등산의 진경을 뵐 수가 있을 터인데 안타깝다 (사진 출처 : 원시인님) -

 

 

 

 

무등산 백호

 

 

 

수많은 의병장들에게

국운의 흐려짐에

병란을 대비하라시던

평등의 聖山!

무등산

 

임란에 처하자

무등산은 의병들에게

칼과 창을 내어 주었다

 

그러나 1900년대에

무등산 백호는

또 앓아야만 했다

 

학생들이 뭉쳐 일어나

민족의 자주를 외치고

일제에 저항하며 스러졌다

 

온 시민이 함께 하며

군사독재 식민잔재

몰아내자 한 목소리였다

 

아직도 조국은 신음중이다

2012년에 꽁꽁 뭉쳐

친일 척결 외쳤다

 

무등산 백호는

일제의 창칼에 찔리고

독재의 총검에 찢어지고

다수의 횡포에 신음중이다

 

민족의 자주 외쳐 보나

국민의 과반을

재교육시켜야 가능한

이 참담한 현실이 아프다

 

무등산 백호가

얼마나 더 포효를 해야

우리의 정기가 세워질 것인가

 

백호야 아프자

아파서 희망의 미래 오신다면

백번이라도 아프자꾸나

 

 

 

- 小鄕 權大雄

 

 

 

 

- 다시 눈보라 속의 상고대를 뚫고 서서히 하산을 시작한다 -

 

- 너와 나의 목장지대 목초지가 보이기 시작하면 급경사는 이미 다 내려 온 셈이라 안심이다 -

 

- 드디어 임도에 이르렀다 -

 

- 수만리4구에서 차를 다시 회수하고 -

 

- 큰재의 급경사 내리막길에서 차들이 뒤엉켜 한참 애를 먹었다 -

 

- 오늘 산행을 함께 해주었던 산벗! 내 그림자!  -

 

 

 

 

레오나드 코헨Leonard Cohen은 그의 나이 78세때 런던 리사이틀을 치루면서 이런 멘트를 한 적이 있다.

'내 나이 60살 때, 나는 이곳 런던의 거리에 Crazy Dream을 가득 안고서 찾아 온 적이 있었다.'라고 말하던

레오나드의 눈가에는 회한인지 모를 번뇌의 이슬이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을 필자는 목격했었다.

 

캐나다의 음유시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레오나드 코헨은 나이 60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연륜이 깃든 가장 최상의 나이라 작정했던 것이다.

크레이지 드림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의 나이 육십대!

이제 61이니 필자도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 아니겠는가.

 

 

 

 

 

- 필자의 저술생활을 동무해 주는 청음실과 음반들 -

 

- 교보문고에서 출간한 그동안의 필자 저서들 -

 

- 백운교 옆으로 흐르는 맑은 계류와 청정한 소향숲 -

 

 

 

 

필자는 지난 2년 간을 숲에 들어와 저술작업에 매진하면서 음악과 숲의 요정들과 함께 사는 유리된 삶을 지향해 왔다.

그렇게 해서 십여권의 책을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었으니 그를 보람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이제 육십대의 아름다운 경륜을 풍부하게 펼쳐야만 할 또다른 사명감을 다시금 부여받았다고 생각해 본다.

가능성의 나이가 바로 육십대 아니겠는가?

 

61st!

Powerful Age of Possibilities!

 

 

 

 

 

- 어제 보았던 독수리의 비상을 상기하면서 새해를 알차게 다시 설계해 보리라 다짐해 본다 -

 

 

 

 

독수리의 비상

 

 

 

 

자,

이제 날으는 거다

 

아무런 스스럼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날아 보렴

 

두려움은 병아리들 주고

거리낌 없이 차고 일어 나렴

 

너희들은 그 세계 모를 거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

날아 보면 안단다

 

어찌 그리 땅바닥에서

옹졸하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날아 보면 안단다

 

이제 편견일랑 거두어라

높이 날게 되려면

군자의 위엄 갖추어야 한단다

 

아!

말 못할 내밀한 이야기

날아 보면 안단다

 

결코 포기하지 말아라

날고 싶은 그대여

 


 

- 小鄕 權大雄 ( infol@daum.net )

 

 

 

 

 

 

61st!

Now, New Start!

 

 

 

 

- 2013년  1월  6일 완성하다 -

 

 

프로필 이미지

 

 

小鄕 權大雄 쓰다

 

 

 

++++++++++++++++++++++++++++++++++++++++++++++++++

 

 

관련 글은 아래 링크된 블로그에 더 있습니다.

http://blog.daum.net/valeriano

 

 

 

 

 

 

 

레오나드 코헨( Leonard Cohen, CC, GOQ, 1934년 9월 21일~)

 

캐나다의 음유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싱어송라이터.
퀘벡 주 몬트리올의 유태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Suzanne〉, 〈I'm your man〉, 〈Hallelujah〉, 〈Famous blue raincoat〉 등의 노래로 잘 알려져 있으며,
〈Bird on a wire〉는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Dance me to the end of love〉가 번안되기도 했다.

200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2010년에는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billities - Anne Vada

++++++++++++++++++++++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이 있는 자료이오니,무단 사용시 그 출처를 꼭 명기 바랍니다>

 

 

- 격려하는 의미에서 추천 버튼을 눌러 주시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