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비의 향취에 취했던 초춘탐매기初春探梅記 3부 -
< 기획연재18 : 아내와 함께 하는 심경순례기深景巡禮記 - 상사호-선암사 편 >
- 목 차 -
◈ 금전산을 넘어 상사호로
◈ 선암홍매를 만나러 나섰던 순례길 아니던가
◈ 조계산의 품안에 비로소 들어서다
◈ 태고의 신비로움이여
- 상사댐에서는 인공수초 재배연구가 한창이었다 -
- 봄바람이 거센 날이라 상사댐에는 파도가 너울거렸다 -
◈ 금전산을 넘어 상사호로
금둔사에서 바라보며 취했던 납월홍매에 대한 향훈을 깊이깊이 간직하며 금전산을 넘어 승주의 선암사를 찾아 운전대를 재촉하였다. 이른 초봄에 환희심을 불러일으켜준 금둔사의 매화향은 너무나 그 자태가 고와서 지금도 이 글을 쓰는 필자의 곁에서 향취를 발휘하고 있다. 사실은... 매화 몇 점을 꺾어왔기 때문이다. 착着을 놓지 못하는 어리석은 습習을 용서하시라...
금전산을 넘으면 바로 주암호의 물을 잡아 가둔 상사호에 이르게 된다. 전남의 남동부권 수원이 부족하니까 주암호와 수로를 연결하여 식수원을 보충하여... 인근 순천과 광양 그리고 여수의 식수원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상사댐인 것이다. 상사호 또한 가뭄에 많이 말라 보였으며... 어렴풋이 이번의 식수난은 지구 온난화 덕분에 해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내게 하였다. 물부족 국가로 떨어지고 있다고 하니 삼천리 금수강산이 점점 무색해 질 일이며... 후손들을 위해 충분히 대비하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상사호 중턱에서 다시 북으로 잡고 오르니 이내 선암사의 자태가 드러나는 조계산 자락에 이르게 되었다. 이곳 조계산과 천자암 쌍향수도 아직 순례를 못해 보았으니 아내와 함께 언젠가는 꼭 순례를 해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천천히 순례하기로 여유를 부려본들 어찌하겠는가. 남은 노년의 길에 어느날 문득 떠나와 본들 누가 무어라 할 사람 있겠는가. 가급적이면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노년을 설계해 보고 싶은 것이 현재의 바램이며 그렇게 살다 가겠다고 다짐해 본다.
어제 명경헌을 나서면서 이곳저곳에 과실수를 심을 궁리를 잔뜩 하다가 그러한 習도 이제는 자제할 줄 알아야 진정한 완성으로 가는 노년을 대비함이 아니겠는가 하는 각오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아내가 필자 보다 시범적으로 한 수 위의 경지를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필요가 없으면 과감히 버리는 연습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중동의 버림에 대한 미학을 이제는 습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놓자! 놓자! 놓자... 무엇이든 단 한 개라도 쥐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모두 놓고서, 이 마음의 허망함만 이고지고 떠나야하지 않겠는가. 언젠가는... 가능하다면 허망함 보다는 미련을 버린 자족自足만을 데리고 떠나고 싶다. 그럴 날이 오도록 하기 위해서 그대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 순천의 상징은 최근에 각광을 받고있는 순천만이 백미인 모양이다 -
◈ 선암홍매를 만나러 나섰던 순례길 아니던가
선암사 입구 주차장에 애마를 파킹을 시켜놓고 나서 도보순례행을 시작하였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순천만을 떠올리며... 이제는 가공하지 않는 자연이 상품화 되는 세상이 왔다고 생각하니... 어릴 때 부대끼며 살았던 가공하지 않았던 자연에 대한 아스라한 회억에 빙그레 한번 웃어 본다. 우리의 선조는 그런 곳에서 우리를 길러 주셨는데...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 자연 조건을 후세에 물려 주려 하는가. 인위적인 운하나... 고층빌딩숲을 남겨 주고 떠나기에는 후손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해 본다.
아무튼, 참! 아름다운 순천만이로다!
주차비 내고 매표소에서 입장권 끊고 하면서 국립공원은 입장료를 징수하지 않는 요즘의 행정을 보면서... 어차피 국민의 세금으로 관리하니까 그런다고 하지만... 이곳은 국립 관할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내는 것이 아깝기는 하지만... 시주하는 셈 치기로 생각을 다시금 바꾸어 본다. 남에게 보시도 하는 판에...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시주를 못 할 일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결정을 마음 먹기에 따라서 우리의 감정도 저절로 순화될 수 가 있는 법이니... 가급적이면 긍정적인 삶(Positive Life)을 살아 가기를 서원해 본다. 마음 한번 바꾸어 먹으면 그 순간 세계는 극락이요 천국이 되는 법. 아니던가...
매표소를 지나 오르기 시작하니 이내 싱그런 개울소리가 들리는 선암계곡을 만나게 되었다. 겨울이 녹아나면서 그예 물줄기가 터지니 '졸졸~'하며 흐르는 양이 '신록을 노래하는 병아리의 노래 소리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아직은 바람이 거세서 아내는 상당히 추운 듯 조깅으로 몸을 뎁히러 하는 양이 아직 젊어 보이기까지 해서 신선한 생각이 든다. 그 노는 양을 보면서 아직도 젊은 맑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일상에서 보여주던 아내의 신앙심과 아내의 모든 정성심에 대해서 다시금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온다. 항상 단정한 삶을 이루며 곁에서 적당히 필자를 정신적으로 일깨워주는 아내의 존재가 새삼 싱그럽다.
고마운 아내... 나의 평생 도반道伴! 항상 건강하시게나...
- 상사호와 승주 사이에 위치한 선암사에 이르다 -
- 산기운이 쌀쌀하여 아내는 조깅으로 맞섰다 -
- 조계산은 거찰인 송광사와 선암사를 끼고 있다 -
선암사는 결혼 전에 아내와도 데이트를 하러 왔던 곳이었다. 필자는 그무렵의 겨울에 중동에서 휴가차 나왔다가 아내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다시 열사의 나라로 돌아가야하는 1월의 어느 날에 선암사의 겨울을 간직하고 싶어서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순천에서 완행버스를 타고 이곳에 내려 오늘과 똑같은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사찰을 참배하고... 아무말 없이 오래도록... 계곡을 서성이다가 광주로 돌아왔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었다. 열사의 중동에서 너무나 더울 때면 그때의 추운 겨울 선암계곡을 떠 올리고는 하였기 때문에 지금도 그 추억이 강렬하게 각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선암계곡은 맑음을 유지하고 있는 아름다운 터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초봄의 순례길이 너무도 평화로워 보이는 가운데 우리는 어느덧 일주문 앞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예전에 선암사는 대처와 비구의 분쟁이 너무도 심했던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는 아마도 이승만 정권이 비구종단을 비호하였기 때문에 대처종단이 갈 곳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러나... 아무튼 종교를 내세우며 분쟁을 일삼는 작태는 일반 수행자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혐오! 그 자체라고 밖에 할 수가 없을 것이니 참으로 경계해야될 일인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날의 종교를 빗대 전쟁을 일으켰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전쟁 등등이 또한 혐오스럽게 다가오는데... 제발 자국의 이해관계로 인해서 자행되었던 과욕에 대해서 신성한 종교를 대의명분으로 내세워 더럽히지 말았으면 좋겠다. 종교를 믿는 인류의 수치가 바로 그런 점들 아니겠는가. 코란과 칼을 들고 양자택일하라며 싸웠던 이들이나... 성지수호를 위해 일으켰다는 십자군원정이나 다... 오십보 백보 아니던가 말이다. 삼대에 걸쳐서 그 갚음을 받으려고 그러한 작태를 벌이는 것인지...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모두가 정말로 자중해야할 일이 종교를 내세우며 행하는 악행! 아니겠는가. |
- 법정스님이 주석했던 천자암과 쌍향수 -
- 설명이 필요없는 승보대찰 송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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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화가 만발한 생태체험학습장 -
◈ 조계산의 품안에 비로소 들어서다 조계산은 사진으로 보듯이 그 넉넉한 산세와 비견되게 명소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불일 보조국사는 무등산 규봉암無等山圭峰菴에서 문득 나무매를 날려보니, 그 나무매가 훨훨 날아 동복의 모후산을 넘어서더니 마침내 조계산에 착지를 하였기 때문에 그 흔적을 따라와서 길지임을 확인하고 송광사를 창건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설화에서의 길지라는 명성만큼이나 송광사는 전국에서 가장 큰 승보종찰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선교양종의 수련처로 쌍벽을 이루던 선암사가 바로 동쪽계곡에서 맞수를 겨루자며 버티고 있으니... 이 땅의 불교에 관한 두 명처가 모두 이곳에 둥지를 틀고서 자웅을 겨루고 있으니... 조계산의 산세에 관한 품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지언정...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사찰로서는 단연 선암사가 압권이라고 필자는 평을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아름다운 숲과 아름다운 기와선이 살아있는 곳이 바로 선암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찌기 법정스님이 소요해서 유명해졌던 천자암과 쌍향수가 조계대간의 중턱에서 버티고 있으며, 새로 순천시에서 조성하였다는 전통야생차체험관이 또한 선암계곡에 있으니 오늘 순례행의 백미를 이룰 것임을 미루어 짐작하면서 가슴이 설레기까지 하였다. 두 곳의 대보찰이 있었으니 녹차향기 또한 전국을 진동하며 유명했지 않겠는가 미루어 짐작해 보는 설레임이라 할 것이다. 그때의 녹차가 지금의 야생녹차가 되었음은 자명한 일 아니겠는가. |
- 고요함이 머무르는 곳 태고종찰 선암사 -
- 이곳 체험관에서 새로운 감동을 얻었다 -
- 선암사 - 선암굴목이 - 보리밥집 - 송광굴목이 - 송광사가 유명한 등산로이다 -
- 봄이 터지니 계곡물도 터졌구나 -
- 예전에는 이곳이 선암사 입구였다 -
- 선암사 부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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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장승이 액맞이를 해주는 듯 하다 -
- 너무나 유명한 승선교 안내판 -
- 승선교와 강선루는 함께 보아야 맛이 난다고 -
- 선녀가 노니는 곳이 맞지 않을까 -
- 강선루는 승선교와 상당히 떨어져 있다 -
선암매향가 仙巖梅香歌
선암골에 선녀가 강선하여
맑은 물에 달을 풀어 놓았다
맑은 물로 한참 노닐던 달은
선녀를 태우고 승선하였다
달이 풀어 놓은 매향梅香만이
천상이라 우기며 남았다
2009. 3.10 - 小 鄕 -
- 이 누대에서 달을 희롱하며 노닐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 누대는 아무 말없이 지금도 그대를 맞이할 뿐이다 -
◈ 태고의 신비로움이여 새소리와 함께 절길을 오르는 마음이 분주하다. 그것은 바로 선암홍매를 친견하기 위한 설레임 때문이었다. 이미 매표소에서 선암홍매가 아직은 봉우리로 남아있다는 설명을 들은지라 매화의 만개는 포기하며 오르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한두송이는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함께 가지고서 오르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조선 최고의 수령에 버금가는 선암홍매를 바라보면서 오래도록 이 산하를 지켜주시라는 기구를 드리려는 마음도 함께 가고 있었기 때문에 오르는 걸음이 숙연하기까지 했다.
아내도 도보행에 어느덧 추위를 극복하였는지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필자의 기원도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하오의 멋진 산책길을 함께 오르고 있는 셈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대체로 산행중이거나 산책 중에는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 편인데... 기실 말이 필요 없어도 오래도록 살아왔던 연륜으로 묵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말없이 나누는 자연과의 대화 또한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
베토벤은 자기가 창작하는 작곡률律은 모두가 신神의 대필자로서의 역할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자연에서 지저귀는 저 산새의 음률에서도 신의 메시지를 느끼려는 마음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지 않겠는가 문득 생각해 보기 바란다. 지금 흐르고 있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스프링Spring 제2악장을 들으면서 그대는 무엇을 연상하며 느낄 수 있겠는가. 정숙한 자연의 살아있음과 슬프기까지 한 우주질서의 정연함에 대해서 느껴지는 것이 없겠는가. 그것은 모든 살아있음에 대한 베토벤의 비장한 메시지이자 바로 우리의 삶을 조화롭게 꾸려나가게 법리적으로 우주질서를 운영하고 있는 조물주의 배려라는 생각은 혹시 안해 보았는지... 한번 되돌아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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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그대를 맞이하는 선암사 입구 고사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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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일주문과 그 안내문 -
- 대처의 종찰이라 비구와는 조금 다른 격이 있어 보인다 -
- 선암사 옛터 복원사진을 보니 장엄한 가람이었음을 알겠다 -
- 차를 우려먹기에 너무나 좋았을 샘이 아닌가 -
- 대웅전 주변은 대찰의 규모에 비해 좁아 보였다 -
-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심어져 있는 정원수가 너무나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준다 -
- 군계일학인 삼나무 -
- 각종 기화요초가 만발할 불조전 앞 뜰 -
- 팔상전 주변에서 위용을 드러낸 선암매 -
- 수백년은 되었을 자산홍의 자태가 빼어나다 -
- 이렇게 큰 철쭉을 본 적이 없으니 과연 선암사로다 -
- 수백년된 매화들이 뽐내지도 못하고 들어서 있는 곳이 선암사 아니던가 -
- 태고종정이 주석하는 종정원인 모양인데 각황전이라는 옛 명칭이 있단다 -
- 각황전의 또다른 이름으로는 부처의 몸을 지칭하는 장육전이라 하였다고 -
- 종정원 돌담길을 지키고 있는 수령 오륙백년의 선암홍매군락지 -
- 이곳 선암홍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
- 다행히 청매는 일주일전부터 꽃망울을 틔웠다 -
- 조계산의 지기로 자라는 선암청매의 단정한 기상을 보아라! -
- 하늘을 온통 가리고 피어날 선암고매의 위용을 보아라 -
- 홍매의 색감이 연상되어지는 꽃망울의 모습을 보아라 -
- 희끗휘끗 나서며 숨으며 노래하는 아리아를 들어 보거라 -
- 꿈에서도 보이던 선암홍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다 -
- 하심(下心)을 가지고 내리는 참배길이 되리라 -
우리는 선암사 경내를 구경하며 오르며... 하다가... 마침내 종정원 옆 담길의 그 유명한 선암매의 도열식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도열식에 정장을 갖추고 나온 선암매는 오로지 청매뿐이었다. 나머지 이쁜 매들은 아직 우리가 수줍은지 꽃망울을 터치지 아니하고 꽁꽁 숨어서 오로지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을 뿐이다.
어찌하여 아니 나오는지... 아니 나오는 야속함에 우선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아니 나오는 것이 우주율律이라면 서운해 할 이유가 반드시 있을 필요는 없었다. 우주는 그대로 운행하고 있는데... 그 우주질서를 역행하여... 그대가 먼저 꽃망울에게 찾아왔을 뿐이다. 선암매는 가만히 있는데 너 혼자 먼저와서 홍매가 수줍어서 아니 나온다 어쩐다하며 서운해 하고 있는 것이다. 홍매가 수줍어하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이 우주의 질서를 거스르며 홍매가 수줍어한다고 작위적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모든 행불행이... 인연의 풀고맺음조차도 모두 다 우리네 마음 한자락의 경망스러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던가 생각해 보며 또한 반성해보며 살 일인 것이다.
선암사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옛것이 살가웁게도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은 어디인지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출입금지가 되었다가 해체복원 공사로 인해 개방이 되었던 어느 곳을 들르던 10여년 전의 선암사행에서 필자는 조선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부엌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장독터와 샘터와 부엌의 조화로운 어울림에서 필자는 넉넉한 조선의 여유로움을 발견하고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비경이 선암골에는 곳곳에 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필자는 수백년을 자라면서 멋진 수형으로 잘 보존되고 있는 자산홍과 철쭉을 처음 발견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한 두해의 품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조물주의 작품을 우리는 선암골에서 종종 발견할 수가 있으리라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 중의 하나가 특히 선암매 아니던가 말이다.
그런저런 생각에 묻히며 종정원을 감싸며 품고 있는 태고종 본향本鄕 선암매의 향기를 숨가쁘게 들이키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자태로다. 참으로 신선한 향내로다. |
- 선암사중수비만이 가장 옛스러운 모습으로 남아있구나 -
- 중수비를 지나면 암자로 가는 푯말이 서있다 -
- 선암사 대웅전 현액 -
종정원의 담장을 서성거리며 선암매에 취하고 보니 옛 선비들의 매화사랑에 대한 고사가 떠오른다. 우선 고려 말 충신이었던 목은 이색 선생의 시조를 한 수 적어 보겠다. 영해에서 태어나 거주한바 있는 목은 선생은 관어대에 올라 동해에서 노는 고기떼들을 보며 관어대부觀魚臺賦를 쓰는 등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시조는 유독 한 수밖에 안 남겼다고 한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흘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였는고 석양에 홀로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 목 은 - 이 시조를 읽어 보면 목은 선생이 갈 길을 잃고 헤매이는 것처럼 이해되고 있지만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 고려에 충정을 다하겠다는 강단이 엿보인다는 깊은 뜻이 있는 글이다. 고려말의 국운이 쇠퇴해 갈지언정 자신은 고려의 중신으로서 해저무는 노을을 그냥 바라보고 있겠노라는 충절을 읊은 노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목은 선생은 조선이 주는 관직을 사양하여 후세의 칭송을 더 받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이렇듯 선비의 지조는 매서운 겨울을 이겨내는 매화의 품격과 다를 바 없다 하였던 것이다. 퇴계 이황 선생도 유달리매화를 아끼고 노래한 선비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 매선梅仙으로 의인화해 부르면서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하였다는 일화는 퇴계 선생의 매화사랑에 대한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 할 것이다. 퇴계 선생이 그토록 매화를 사랑했던 까닭은 ‘매화는 춥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인 ‘매화불매향梅花不買香’이라는 문장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완성과 기개를 지켜 나간 자기 성찰과 수양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 보지 않았어도 보았을 천상의 선암홍매여! 나, 그대를 아리따운 춘선매라 칭하리라 - |
- 3월의 어느 멋진 날에 오매불망 그리던 님의 향취에 취했다... 오다 -
2009년 3월 6일
小 鄕 權 大 雄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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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은 이곳 카페에 더 있습니다.
http://cafe.daum.net/valeriano
P.S: 배경음악은 Beethoven의 Spring Sonata "2악장"
- 2009년 3월 10일 완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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