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순례기

무소유길을 아시나요? - 감로암에서 불일암까지

梅君子 2014. 11. 5. 16:58

 

 

[ Bulil Report ]


무소유길을 아시나요? - 감로암에서 불일암까지

 

 

 

일 시 : 2014년 11월 4일(화)

 

 

 

 

 

무소유길은 바로 [무소유]라는 수필집으로 이 세상의 메마른 정서를 순화시켜 주었던 이 시대의 은자隱者! 법정 스님이 평소 즐겨 걸었던 송광사의 산내암자 가는 길을 지칭하여 부르게된 이름이다. 송광사 본전에 머물렀던 법정 스님은 서울에 올라가 다래원에 살면서 그 시대의 사상운동을 주도하다가, 이내 속세의 세상사로부터 법연을 단호히 끊고자 결심하고서 제적본사인 송광사로 다시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효봉대선사의 상좌이며 그당시 송광사 주지이자 같은 법형제간인 법흥 스님과 상의하여 자정국사 부도가 있는 옛 자정암 터에 불일암을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17여년을 머무르게 되는 역사가 시작된다.

 

법정 스님은 그러나 [무소유]가 유명해지자,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방문객들에 질리다 못해 강원도 오대산골의 쯔데기골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 그러니까 이 [무소유 길]은 스님이 강원도로 떠나기 전, 본사를 드나들던 암자길을 다시 부르게 된 이름이다.

 

[무소유길!] 이름 한번 잘 지었다. 어차피 빈손으로 나온 이상 무슨 소유가 그리 중요하던가 말이다. 무소유의 정신은 이 시대의 알고리즘으로 모든 이들의 환영을 받았지만, 정작 그 환영인파는 무소유를 소유할 줄 모르던 기층 지식사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법정 스님께서는 [무소유]라는 화두를 꺼내들고서 이 사바세계를 맑고 향기롭게 하려고 애를 쓰시다가 입적한 분이었던 것이다. 가히 사표가 되실만한 분! 이었다. 

 

오늘 금강산림법회 봉사하는 자투리 시간을 무소유길 답사로 하고자 했던 마음을 오후에 실행하였다.  법회는 이미 끝났고, 지금이 조계산 단풍을 카메라에 담기에는 최적의 시간이니까 서두를 이유 또한 있었다. 지난봄에 불일암에 들렸으니 반년만에 다시 들리게 되었다. 초봄의 생동하는 초목은 너무나 싱그러웠는데, 오후의 햇빛이 스물스물 이지러져 가는 시간에 찾은 불일암은 시자도 아니 계셔서 매우 스산하고 쓸쓸해 보였다. 그렇게 살으셨던 법정 스님의 고고한 향취를 느끼는 것 처럼 그렇게...... 스산한 가을 숲이 그곳에서는 펼쳐지고 있었다.

 

 

 

 

    효봉영각 옆 담장길로 들어서면 율원가는 길이 나온다

 

    송광사의 진면목을 조망할 수 있는 터에서, 잠시 숨을 내려 놓고

 

    맑은 스님이 한 분 내려 오신다

 

    율원의 기상만큼이나 하늘이 시푸렇다

 

    그리고 단풍이 들기 시작하였다

 

    대숲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은행나무는 아직 단풍외투 살 돈이 없었나 보다

 

    비림에만 가득 단이와 풍이가 모여 들었다

 

    감로암 가는 길도 화려일색이다

 

    정녕 최고완숙의 시간을 노래하는구나

 

    감로암이시어, 감로수를 내놓으소서

 

    며칠전에 무량수전에서 점안식이 있어 그것도 궁금했다 

 

    이 삼존불이 바로 그 당사자분들이시다

 

    조계봉에서 송광굴목이까지 단이와 풍이가 한껏 치장을 뽐냈다

 

    풍요를 노래하는 모과

 

    원감국사비는 원감국사 부도를 향해 귀두를 틀고 있댄다

 

    석두대선사비가 있는 곳에 가 닿았다

 

    이제 불일암 가는 무소유길이 시작되었다

  

    빠알간 단풍!

 

    불일암 입구는 여전하였다

 

 

 

*아래 글은 지난 2010년에 불일암을 찾았던 심회인데, Remind 겸 해서 이곳에 다시 옮겨와 본다

 

 

 무소유라는 소요유를 화두처럼 이고지고 가신 분의 발자취를 따라서

(法頂之道 - 불일암편)

 

 

 


  - 생전의 법정스님 -

 

 

 

천자암을 순례하고 상현암을 찾아 보았으나... 그곳 사람들은 암자의 내력 자체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왜 지도에는 상현암 또는 상환암으로 표기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장발곡계곡을 내려 오며 들렸던 보리밥집 아저씨도 금시 초문이라 하면서도... 암자터의 기와가 나오는 곳이 있기는 있다고 말끝을 흐린다. 확실한 신념이 없는 까닭이다. 아무튼... 장안리의 촌로들도 역사적 내력 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방법이 없어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법정스님의 길을 따라 순례하는 오늘의 법정지도法頂之道에도 그 코스는 해당이 없으니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장발곡계곡의 그 풍부하고 맑은 계류에 대한 인상을 깊게 간직하고서... 송광사로 향했다. 법정스님은 효봉스님 문하로 출가한 이후에 서울에서 장준하, 함석헌 선생과 함께 민권운동을 하다가... 8명이 판결 당일날 사형을 당한 사법살인 인혁당사건을 접하고서는 큰 충격을 받는다. 결정적으로 출가수도승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명색이 출가수행자로서 마음에 적개심과 증오심을 품는다는 일 또한 자책이 되었다. 무슨 운동이든지 개인 인격형성의 길과 이어지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원 위치로 돌아가 내가 무엇 때문에 출가수행자가 되었는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그릇과 삶의 몫이 무엇인가도 헤아리게 되었다.'라는 깨달음을 가지고 다시 산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곳이 바로 자정국사의 부도전만 있던 자정암의 터였다. 추측컨데, 송광사의 개산주였던 불일보조국사를 기리는 불일암은 800년 전부터 역사의 궤를 함께 하면서 법정을 이곳으로 불렀는지도 모른다.

 

올곧은 스님들은 그당시 모두들 민권운동에 뛰어들어 '불의를 불의不義!'라 외치다가 곤욕 치르기를 밥먹듯이 하였으며... 그 와중에 생멸의 부침을 보고서는... 수행자로서 당신의 갈 길을 새로움으로 깨닫게 되었으니...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재정권은 스님에게 참 수행자로서의 길을 열어 준 것이나 진 배 없게 되었다.

우습다. 인연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풀리니... 악연惡緣이고 선연善緣이고... 우리가 정의를 내리는 것 자체가 한낱 하루살이의 송사와 같지 않겠는가.

 

불일암은 송광사로 내려온 법정스님에게 새로운 안식처 겸 위안처가 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그 암자는 아마도 폐허나 다름 없었으리라. 듣기로는 암자를 헐어내어 요사채인 하사당을 아랫채에 내고... 윗채에는 불일암을 새로 지었다 하니... 아마도 '무소유'가 유명해지면서 그 인세와 신도들의 시주금이 보태어져 그리되었을 것이다.

 

송광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나서 매표소에 계시는 노인분에게 불일암 가는 위치를 재삼 확인하였다. 그러니까 매표소에서 500여미터 정도 사찰로 가는 길을 가다가, 다리를 건너지 말고 좌측의 산길로 진입하면 된다 하였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불일암] 가는 이정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없이 들락거리니까 오죽하면 [등산로 없슴]이라는 표지를 달아 놓았을까.

 

 

 

 

 

 

    불일암의 원주인인 고려시대의 자정국사 부도

 

    묵언!

 

    이곳 후박나무 그늘에 스님의 향기가 고요히 배어 들었다

 

 

 

  

 - 당당한 대자유인의 아름다운 모습 -

 

 

 

 

 

등산로가 아니라는 산길을 호젓하게 부부가 걸어가니 삼림욕으로 마음이 씻기워져 밝은 기운이 물씬 묻어 나온다. 피톤치드가 많이 나온다는 아름다운 편백숲을 지나는 길은 조금 가파랐으나... 숲속의 요정들과 노니는 즐거움을 가지고 오르게 되었으니... 오늘의 여정이 너무나 고맙다.

 

필자는 아내가 시집 올 때 가져온 [무소유]를 읽으면서... 법정스님 계신 곳이 천자암인줄로만 착각했었다. 그래서 천자암 아래 벌교길을 지나 다니면서도... 저곳에 오르면 법정스님을 뵐 수 있을 텐데... 강원도에 가고 안 계시면... 손수 만든 의자라도 볼 수 있을텐데... 하는 기대감으로 지나 다니곤 하였다. 그러한 착각이 오늘 법정의 길이라는 법정지도法頂之道의 첫번째 순례지로 천자암을 꼽았던 이유가 되었다. 법정과 보조국사의 향훈이 곱향나무에서 물씬 풍기리라 생각했던 기대가 은연 중에 작용했던 까닭이리라.

 

아무튼 우리는 편백림을 벗어나 마지막 깔딱길을 힘내어 올랐더니 이내 대밭에 이르게 되었다. 대밭 위쪽이 바로 불일암이라는 것은 인터넷 자료를 살펴 보면서 알고 있었으니... 이제 다 왔다는 반가움에 마음이 설레기 시작하였다. 대밭을 지나면 펼쳐질 불일암과 법정스님의 족적들을 생각하면서... 필자는 무소유를 주장했던 당신의 함성을 듣고 있었다. 필자에게 있어서 무소유는 대자유인의 경지 쯤으로 해석이 되었고... 장자의 소요유를 퍼뜩 생각나게 하였다.

 

소요유가 무엇이던가.

대자유인의 한량없이 높은 지혜로움이 아니었던가.

 

 

소요유(逍遙遊) -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이름하여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의 등도 그 길이가 몇 천 리인지 알 수가 없다. 붕이 한번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에 태풍이 불면 남쪽 바다로 이동하게 된다. 남쪽 바다란 천지를 말한다.
붕이 남쪽 바다로 옮아갈 때에는 물을 쳐 올리되, 그 높이가 3천리나 되고, 회호리 바람을 타고 9만리나 올라가 유월의 거센 바람을 안고 날아간다. 아지랑이나 먼지 같은 것은 생명체가 숨을 쉬면서 서로 불어내 보낸 것이다. 하늘이 파란 것은 그 본래의 색깔이 그러한 것인가? 그 멂이란 다함이 없는 것인가? 그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역시 그러할 것이리라.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수명이 짧은 것은 수명이 긴 것에 미치지 못한다. 하루살이는 새벽과 밤을 모르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모른다. 이것들은 수명이 짧은 것들이다. 초나라의 남쪽에 명령이라는 거북이 살았는데, 오백년을 봄으로 하고 또 오백년을 겨울로 삼았다. 상고시대에 대춘 이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이것은 팔천년을 가을로 삼았다.

 

소요유는 도와 합치되어 편견과 얽매임을 벗어나 노니는 자유의 경지를 일컫는다. 글머리에 나오는 곤은 아직 자아의 가능성과 도를 실현하지 못한 미성숙한 자아를 뜻하고, 붕새는 자기의 가능성을 실현해 도를 체득한 신인, 지인, 성인을 비유하는 것이다.

말매비나 작은 비둘기의 무리는 현묘한 도의 의미는 헤아리지 못하고 눈 앞에 놓인 세속적 가치에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일반적인 무리를 비유하는 것이다. 이들은 도를 체득하지 못했으며 도를 따라 사는 삶을 비웃기도 한다.

 

따라서 붕새의 크나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며 자신들은 온 힘을 다해도 그저 작은 나무 위에나 간신히 올라 앉을만한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지극히 이상향이 낮은 무리들일 뿐이었다. 장자는 이렇듯 소요유를 통해 도와 합치되어 온갖 세속적 가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이상 소요유는 인터넷 자료를 발췌한 것임)

 

우주를 포용하는 장자의 소요유와 같이... 대장부 걷는 큰 길 중의 하나는 바로 수도자가 되는 경지라 생각해 본다. 무소유로 소유를 질타하고 당당하게 걸어갈라치면 많은 부작용이 따르게 된다. 가진 자의 역습에서 그 교묘한 모함에 당한 자유인이 어디... 한 둘이던가 말이다.

 

그러나 법정스님은 당당하게 당신 삶의 궤적에 모범을 보이므로 해서 대자유인의 경지를 완성하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혹여 길상사를... 시주받고 나서 자기 무리들만 호의호식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호도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속세인의 그러한 짧은 생각이 바로 붕새의 단편적인 생각일 뿐이며... 천리만리길을 가기 위해서 천일千日동안 준비하는 수도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 그러한 속세의 부귀영화야말로 바로 붕새의 이상향 같은 것으로...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가치일 뿐이라는 점을 애써 깨닫고 자성하기를 기대해 본다.

 

재물이라는 것에는 날카로운 창끝이 많이 있어서... 잘못 취하다가... 그 창끝에 베이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 던가 말이다. 스님의 혜안으로 길상사는 맑고 향기로운 사찰로 거듭나서 서울의 공기를 맑히우는데 일조를 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시주자 길상화보살의 뜻이 아니었겠는가 말이다.

 

 

 

 

    불일암은 정말 단정한 암자이다

 

    무엇 하나 허투루 놓여있는 사물이 없다

 

    장작쌓음도 빈틈이 없이 단정하다

 

    단아하고 깨끗하다

 

 

 

 

불일암에 다녀가는 많은 순례객 중에서 유독 슬피 우는 처자가 있어 그 사유가 자못 궁금했으나...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이곳을 찾는 참배객이 많았으므로 굳이 그 이유를 따져보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그러고 보니 법정스님은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한없이 소유하다 가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어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다비식을 치루어 달라 하였지만... 애시당초 그렇게 되리라 기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당신의 사유가 전파되어 모두의 정신 속에서 앞으로도 시퍼렇게 살아 있을 것이나... 지상에서의 흔적을 당신이 모두 거두어 갔기 때문에 '당신의 물리적 흔적은 갈 수록 찾기 어렵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였다. 부도가 있는 불일암이 바로 고려 때 자정국사가 원주인이었다 한다면... 법정스님은 현재의 후계자가 되는 셈인데... 법정스님의 유골이 산화되어 흩뿌려져 있어서 '수목장의 자양분으로 승화되어있는 후박나무 아래에만이라도 조그만 표지석을 달아 두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해 본다. 더러는 후박나무가 그분의 현신목現身木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참배하러 오기도 할 것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수많은 말을 남기고서 스님은 열반했다. 스님은 당신의 말 모두도 거두어 가고 싶다 하면서 말을 아꼈으나... 필자는 청공스님이 남긴 열반게涅槃偈가 법정스님이 남긴 임종게와 맥을 같이 한다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에 인용해 본다.

 

청풍靑風을 팔아 백운白雲을 사려했던 그 덧없음을 한하면서... 급기야는 모든 것을 초개처럼 버리고 가는 선사들의 그 깊고 깊은 행장行狀 속의 유서인 임종게를 조심히 살펴 보기 바란다.

그 안에 생멸의 답이 있으므로... 깊이 새겨 둘 일이다.

 

 

 

 

사세송(辭世頌)

 

흰구름을 사려고 맑은 바람 팔았더니

살림살이 바닥나서 뼈에 사무치게 궁색하네.

남은 건 두어 칸 띠로 얽은 집 하나 뿐이니

세상을 떠나면서 그것마저 불 속에 던지노라.


白雲買了賣淸風  散盡家私徹骨窮

백운매료매청풍  산진가사철골궁

留得數間茅草屋   臨別付與丙丁童

유득수간모초옥   임별부여병정동

 


석옥청공(石屋淸珙 1272-1352) - 강소성 상숙(常琡)사람.

그의 문하에 우리나라 고려 말의 태고보우(太古普愚) 등이 있다고 한다.

 

註 : 사세송辭世頌은 스님들이 열반에 들 때 주고 가는 게송을 말한다.

 

 

 

 

 

    스님이 수목장으로 머무르시는 저 후박나무는 벌써버 잎을 비워 냈다

 

    불일암 내력기

 

 

 

 

 

佛日庵의 哀處子

 

 

 

무소유로 가신다더니 한껏 소유를 자랑하셨구나 

 

슬피 우는 저 처자의 정신세계마저 소유하셨으니

 

이승에서 못다한 소요유에 어찌 눈을 감으셨을까

 

구르믈 버서난 滿月이 마음의 그림자 쓸어 내누나

 

 

                                  - 小 鄕

 

 

 

 

 

 

    이제 대숲을 헤치고 길을 나선다

 

    무소유길

 

    피안의 다리를 되건너 나오는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하여... 이승도 살만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천하의 대자유인을 필자는 더러 뵈... 왔었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자연스런 따뜻함이 눈빛에 깃들어 있었으며,

촛점에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필자의 업은 아직 소멸의 시기가 멀어서...

세세생생 가야할 길이 멀다.

그러나 조급해 하지는 않는다.

인연의 연기법으로 보았을 때... 만남이 필연이라 한다면...

마음을 급하게 쓴들 소용이 없는 까닭이다.

 

다만 소멸의 업장이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그 매듭을 현생現生에서 풀어주는 일만을 되풀이 하고 있다.

 

알고난 연후에...

매듭 푸는 일을 게을리 할 수는 없잖은가.

 

......

......

......

 

허공의 낙타 세마리가 또 비웃으며... 구름사막 지나간다...

 

 

 

***   ***   ***

 

 

 

이 시대의 스승들이 너무도 많이 가셨다.

특히 작년과 올 해 사이에 너무나 큰별들이 지셨다.

노무현선생과 김대중선생!

김수환추기경과 법정대종사!

 

이런 정신적 지도자들이 한국을 살려내는 근기일진데...

이 시대의 참 스승들이시여...

참 근기로 당차게 사시는...

올곧은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 주시오.

그렇게 살아 계시는 스승들에게 기원을 드리며 귀로에 올랐다.

 

역사는 참 스승이 있어야 역사다움이 있다.

 

치욕을 수반하던 역사에는 참 스승이 아니 계셨다!

...는 점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불일암이여 잘 있거라!

 

법정스님의 흔적도... 잘 계시거라!

 

 

 

 

小 鄕   權  大  雄  書

 

 

 

 

 

일 시 : 2010년 7월 22일 (수)

 

장 소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 관내 불일암

 

 

 

 

 

    무소유길을 따라 내려오면 판전에 이르른다

 

    오늘은 오고가는 중에 내리는 스님과 오르는 스님을 모두 보게 되었으니, 이것이 무엇고?

 

    알 수 있겠어? 大雄!

 

 

 

 

단이와 풍이가 한껏 성장을 갖춘 30대의 기생으로 보이기에는 무리였고, 다만 아직은 앳된 처녀인 춘향이 정도의 색감으로 무소유길은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성장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완숙의 풍성미를 지닌 완벽한 단풍의 모습보다는 뺨이 발그레하게 조금씩 홍조를 띠기 시작하는 지금이 더 눈에 시원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정녕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마음가짐이다.

여인으로 비유하자면 조선의 산하는 지금의 계절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때다. 그 포인트를 잘 잡지 못하면 어수룩하거나 너무 화장이 짙은 조선여인을 만나게 되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으니 매우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그대가 만일 호사가라면 말이다.

 

무슨 호사?

바로 아름다운 자연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여기며 인지하는 호사!

 

아름다운 날들에......

아름다운 인연 주심을 다만 감사 드린다.

 

 

 

 

 

- 2014년 11월 5일 완성하다 -

 

 

 

 

德  山    權  大  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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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 돋움체-필자 글(녹색), 궁서체-인용 글(검은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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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Wings / Cathy 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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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하에 가장 당당했던 대자유인! -

 

 

 - 김수환추기경과 생전의 법정스님 -

 

 - 법정스님 다비식 -

평생을 무소유로 간단하고 단순한 삶을 설법하시고... 평생을 청빈하개 삶을 살아 온...

법정대종사님 다비식이 2010년 3월 13일 오전 송광사에서 열렸다.

 

 

 

- 죽으면서 태어나라 -

 

우리는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삶 또한 무의미해질 것이다.

삶의 배후에 죽음이 받쳐 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낮과 밤처럼 서로 상관 관계를 갖는다.

영원한 낮이 없듯이 영원한 밤도 없다.

낮이 기울면 밤이 오고

밤이 깊어지면 새날이 가까워진다.

 

이와 같이 우리는 순간순간 죽어가면서 다시 태어난다.

그러니 살 때는 삶에 전력을 기울여 뻐근하게 살아야 하고,

 일단 삶이 다하면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가지에서 떨어지듯이,

그래야 그 자리에서 새로 움이 돋는다.

 

 순간순간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날마다 새로운 날이 이울때,

그 삶에는 신선한 바람과 향기로운 뜰이 마련된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나그네인지

매 순간 살펴보아야 한다.

 

----- 살아 있는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

 

 

 

  

 아름다운 마무리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수 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 법정 스님

 

 

 

바람 소리만 가득한 법정스님의 산골거처 (평창=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열린 13일 법정스님이 1992년부터 머물러 참선을 했던

강원 평창군 오대산 자락의 일명 쯔데기골 산골 거처(居處).

이곳은 바람과 새소리, 계곡의 물소리만 가득했다.

 

 

 

< 네티즌이 가려 뽑은 스님의 주요 어록들 >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 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중에서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산방한담> 중에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중에서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 창건 법문 중에서) 

 

 

(본 표 안의 내용은 모두 인터넷 자료들을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