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 명경헌

LP로 듣는 명경헌

梅君子 2017. 7. 19. 09:12

LP로 듣는 명경헌




2017년 7월 16일(일)








장마의 뒤끝에 계류를 바라보며 LP Disc를 꺼내 들었다.
포효하는 물줄기의 계곡을 바라보며 말러리안이 되는 호사를 오랜만에 누려 본다.









옛시절 중파방송국의 파이널 출력관으로 600Watt의 파워를 거침없이 토해내던 진공관 833A는...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의 대포소리도 가볍게 커버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그 시절 진공관 833A는 PP로 1.2Kilowatt의 출력을 내주어, 웬만한 AM방송국은 모두 이 출력관을 선호하였다. 道內 전역을 커버리지로 송출하던 그 위력을 한번 생각해 보시라! 그 귀한 출력관으로 오디오를 듣는다는 시도는 세계에 그 사례가 많지 않으니... 귀하디 귀한 Final Tube인 것이다. 그 위용에 비하면 중급 출력관이라 할만한 오른쪽의 6V6이 어쩐지 초라해 보인다.










내 이런 호사를 해발 300미터인 명경헌에 준비하는데 무려 20년이 걸렸다.
거기에 덤으로 3,000장의 LP는 하루에 한 장을 마스터해도 10여년이 걸릴 것이니, 이 이찌 최고의 호사가 아니랴?









더 부러울게 없다는 소욕을 터득하는데... 반평생이 걸렸으니...
이제는 자족하며... 이 호사만 누리리라!


여기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을 옮겨와 그대들도 동참시켜 본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 때로는 행운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가능하면 친절해라. 언제든지 가능하다.


○사랑과 연민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다. 이것들이 없으면 인류는 생존할 수 없다.


○잠은 최고의 명상이다.


○인내를 실천할 때 적(敵)은 최고의 스승이다.


○문제에 해법이 없다면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해법이 있다면 고민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사람은 성취감과 행복을 위해 저마다 다른 길을 선택한다. 누군가 자신과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그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행복은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만들어진) 기성품이 아니다. 당신의 행동이 만드는 것이다.


○욕심의 반대는 무욕(無慾)이 아니라 만족(滿足)이다.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창조됐고, 사물은 사용하려고 만들어졌다. 세상이 혼둔에 빠진 것은 물건이 사랑받고, 사람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 좋구나!

주말에 명경헌에 들어가... 흐르는 계곡물에 흥이 겨워... 청음에 함께할 말러리안을 찾아 본다.










말러의 교향곡 1번부터 10번까지 모두 외워 보고 싶은 분! 어디 계시우?
오리지널 초반본으로 준비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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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 돋움체-필자 글(녹색), 궁서체-인용 글(검은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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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전체 악장 감상 -

(트랙中 1시16분 부분! 정말 감동입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


요약
1860년 7월 7일에 보히미아의 작은 마을 카리시트에서 태어나 1911년 5월 18일에 빈에서 51년이 채 못되는 생애를 마쳤다. 농촌에서 자란 말러의 소년시절에는 농민의 음악과 군대음악이 그가 접한 음악의 전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찍부터 음악의 재능을 나타내어 15세 때에 빈에 가서 음악원에 들어갔는데, 이 때는 같은 해에 태어난 휴고 볼프와 같은 반이었다. 1879년 할의 하계()극장을 시초로 카셀, 프라하, 부다페스트. 함부르크에의 지휘자로서 계약 갱신 때마다 지위를 높이어 1897년에는 명예로운 빈의 궁정극장의 정() 지휘자가 되어 그의 명성은 절정에 이르렀다. 1907년에는 뉴욕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도미하였으나 병을 얻어 빈으로 돌아와 여기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말러는 시대를 풍미한 명지휘자였을 뿐만 아니라 작품으로 거대한 로만주의적인 9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그 중 거개가 성악적인 점에 특색이 있고, 《대지의 노래》와 《여읜 아이를 생각하다》 등의 오케스트라를 반주로 하는 성악곡도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출생 - 사망

1860. 7. 7. ~ 1911. 5. 18.
출생지보히미아 칼리슈트
직업작곡가, 지휘자
사조

후기 낭만파


보히미아 칼리슈트 태생인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지휘자. 유태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후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어 음악 교육을 받고, 소년시대에는 피아니스트로 눈부신 재능을 발휘했다. 1875년 15세 때 빈 음악원에 입학하여 엡슈타인에게 피아노, 훅스에게 화성학, 크렌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1878년에 졸업하기까지 빈 대학에서 역사, 철학, 음악사의 강의도 들었다. 이 무렵부터 바그너와 브루크너의 영향을 받았다. 1880년에 할레 가극장의 여름 지휘자가 되고, 최초의 원숙한 작품 《탄식의 노래》를 완성했다. 이듬해 라이바하 시립 가극장 지휘자, 이어 오르뮈쯔 가극장 지휘자, 카셀 시립 가극장 지휘자(1885년까지)가 되었다.

이미 말러는 지휘자로서의 역량이 널리 인정되어, 1885~6년은 프라하에서 활약하고, 1886~8년에는 라이프찌히에서 정지휘자 니키시의 밑에서 일했다. 1888년에는 부다페스트 왕립 가극장 정지휘자, 1891년에 함부르크 시립 가극장 정지휘자, 1897년에 빈 궁정 가극장 지휘자, 1898년에 빈 필하모니의 지휘자로 활약하면서 브루크너 등의 신작을 공연했다. 1908년 이후부터는 미국에 건너가, 겨울은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이나 뉴욕 필하모니를 지휘하고 여름에는 유럽으로 돌아갔다. 작곡가로서의 그의 활약이 시작된 것은 1894년으로, 이 해에는 제1교향곡의 개정판이 바이마르에서 초연되었다. 그 후에 《천명의 교향곡》 제8번을 완성했고, 1910년에 심장병의 발작을 일으켜 유럽으로 돌아가, 한없이 사랑하는 빈에서 영면하고 싶다는 희망으로 빈에 안주했다.

말러는 방대한 악기 편성과 거대한 구상을 가진 9곡의 교향곡을 완성하여, 후기 낭만파의 웅대 화려한 양식 속에 독일의 전통을 꽃피게 했는데, 가곡 분야에도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등 여러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작품이 교향곡과 가곡에 한정되고, 더구나 이 이질적인 분야가 훌륭히 융합된 예는 음악사상 드문 일이다.

[주요 작품] 10곡의 교향곡(제 10번은 미완성) 중에서 제8번 《천명의 교향곡》(1907), 《대지의 노래》(1908), 가곡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1883),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1888), 《죽은 아이를 기리는 노래》(1902) 등.

작품

  • 탄식의 노래(1880년)
  •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1883년)
  •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1888년)
  • 죽은 아이를 기리는 노래(1902년)
  • 천명의 교향곡(1907년)
  • 대지의 노래(19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