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정성이 닿았던 명경헌 산앵음의 날
지극한 정성이 닿았던 명경헌 산앵음의 날
- 불당골에 봄이 찾아 들면서 산벚꽃이 만개하기 시작하였다 -
- 동장군이 물러가는 첫 징조는 바로 이곳의 맑은 계곡물이 터지는 모습으로 알 수 있다 -
고요했던 동안거를 깨우는듯...... 산하山河가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일어 났다.
명경헌이 자리한 이곳 불당골에는 신록의 계절이 찾아들어 복수초, 생강꽃 피어나며 매화 향기 그윽하더니 진달래, 개나리도 피어 오르다가,
지금은 산벚꽃이 만개하였으며, 떼죽나무, 굴참나무에 여린 애기닢이 새록새록 솟아 오르면서 귀여운 자태가 극極을 달리고 있다.
애기닢의 그 연두빛 잎새들의 색감을 필자는 너무나 좋아한다.
뽀송뽀송한 아가의 피부결처럼......
성하盛夏를 맹열하게 수놓을 진초록 잎새 이전의 봄철의 애기닢은 어찌 이리 이쁠까.
아름다운 계절이다.
초봄의 그 신선함이라니......
그 맑은 계곡의 싱그러운 물소리라니......
그런 아름다운 봄날의 어느 날, 한양에서 명상의 고수분들이 명경헌을 방문하시었다.
- 뒷짐 진 한량의 모습이 가히 신선급들이시다 -
- 이틀 전에 운강 선생이 명경헌 방문을 연락해 왔다 -
- 오늘은 명경헌의 빗장을 아니 풀 수 없는 날이다 -
전남대 철학과의 이중표 교수가 불쑥 전화를 했다.
서울에서 명상센터의 멤버들이 전라도 답사기행 프로그램을 열었는데,
지금 무등산 수만리의 계산 선생 댁에서 수련하고 있는 중인데, '남도명상길의 마지막 날 명경헌에 꼭 들리고 싶어한다'는 내용이 요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받았던 최훈동 병원장(운강 선생)의 이메일 내용이 하~ 수상터니......
기어코 명경헌 빗장을 풀라는 통보성 전화였기에...... 조금은 난감하였다.
운강 선생, 이교수와 필자는 고등학교 동창간인데, 어찌보면 초등학교 때 부터 내리 동창간이었다 할 수 있는 사이다.
이교수의 통보를 받고 처음에는 초면의 방문객이 8명이나 된다하여...... 참으로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평소 존경하던 이교수가 통보해 온 모처럼의 전화에다가,
서울에서 명상 모임을 이끌며 한별병원 병원장에, 서울대의대 초빙교수까지 맡고있는 운강선생의 압력까지 더해지니 필자는 불가항력이었다.
지금부터 20년 전 쯤, 광주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는 친구를 축하하러 한양에서 내려왔던 운강선생의 인품이 아스라히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친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운강선생의 눈빛과 단정한 모습 주위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오로라가 휘광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마, 그보다 더 중요했던 점은 전화를 받을 때, 교감처럼 느껴져 오던 방문객의 면면들이 모두 신선하였던 때문이기도 하였다.
Mind Control을 위해서 일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은 매우 아름답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니까......
혼자 산중에서 대접할 것이 무에 있겠느냐마는, 요는 마음의 정성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분들도 그를 이해해 주시리라......
그렇게 해서 명경헌의 빗장은 스르르~ 풀렸다.
- 신록이 덮여가는 명경헌의 계곡은 맑음 그 자체이다 -
- 필자는 이 계곡을 혼신을 다해 사랑한다 -
- 물소리는 사시사철 필자에게 맑은 가르침을 주시면서 하계下界로 나리시고 계시다 -
- 손님들을 위해 LP와 CD음반들도 단장을 하고 기다렸다 -
- 명경헌을 방문하신 명상의 대가분, 면면들... 필자의 친구는 좌에서 다섯번째 최훈동 병원장과 맨 우측의 이중표 교수이다 -
무등산의 신선이신 계산 장찬홍 선생의 소요당에서 이틀간 수양하면서 장흥 보림사와 화순 운주사, 쌍봉사를 거닐던 분들이 마침내 명경헌을 찾아 오셨다.
계산선생이 누구시던가!
의재 허백련옹께서 남종화의 화풍을 드날리던 시절에,
의재선생의 춘설헌 옆에 초막을 짓고 사시면서 의재선생의 모든 면을 가르침 받으신 분 아니던가.
천년을 산다는 미인송을 화폭에 담아내는데 특히 대가이신 계산선생은 이교수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고 하였다.
오늘 방문객들은 첫눈에 뵙자마자, 꿈 속의 모습 그대로 역시나 마음을 포근하게 해 주는 인자한 면면들이시다.
......
마음의 교감이라는 것이 무엇이던가.
우리가 손에 들고 하는 손전화에 음성이 실려 나올 때...... 우리는 바로 직감할 수 있는 느낌을 갖게 된다.
육감의 떨림이라고나 할까.
그 느낌이 좋으면 그대로 그 좋음은 계속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느낌을 중시하며,
때로 좋지않은 느낌이 들 때에는 마음 속으로 간절함을 더해 정성을 다해보면...... 그 염원이 아름답게 꽃을 피우게 되어,
그 결과가 너무나 좋은 느낌으로 바꾸어지는 기적도 있음을 우리는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의 예견과 기대는 그대로 딱 맞아 떨어졌다.
첫 대면인데도 마치 전생의 지기들을 만난 것처럼,
한 길을 함께 가던 도반을 만난 것처럼 그 은근함의 향기가 너무나 맑게 풍겨 나와 종았다.
그래서 부처는 설파하지 않으셨던가.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이라고 말이다!
자등명법등명 [ 自燈明法燈明 ]
대반열반경에는 자등명법등명에 대한 석가모니부처님의 말씀이 잘 설해져 있다. 이 말씀은 대열반을 앞두시고 아난다존자에게 들려주신 말씀이라고 한다.
자신의 등불을 밝힌다라는 말씀에서 등불은 dipa(디파)인데 빠알리어로는 섬의 뜻이라고 한다. 산스끄리뜨어는 섬이라는 뜻과 등불이라는 뜻이 같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을 등불로 삼고라는 말씀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라는 말씀으로도 번역된다. 아래의 빠알리어 대반열반경은 그래서 dipa의 원래 의미를 살려 섬으로 번역하고 있다.
자신과 법을 섬으로 삼고 귀의처로 삼아라.
2.26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63) 그대들은 자신64)을 섬65)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어떻게 비구는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아난다여,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면서 공부짓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66)가 될 것이다.
2.26 Tasmātihānanda,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Kathañcānanda,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ṇo anaññasaraṇo, dhammadīpo dhammasaraṇo anaññasaraṇo? Idhānanda,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Vedanāsu…pe… citte…p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Evaṃ kho, ānanda,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ṇo anaññasaraṇo, dhammadīpo dhammasaraṇo anaññasaraṇo Ye hi keci, ānanda, etarahi vā mama vā accayena attadīpā viharissanti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tamatagge me te, ānanda, bhikkhū bhavissanti ye keci sikkhākāmā”ti.
-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 대반열반경]에서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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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열반에 드실 때 하신 말씀!
자신과 법을 오로지 등불 삼아 정진하라시던 말씀!
필자는 종교가 아닌 불교를 사랑한다.
불교는 종교의 대상이 아니다.
이교수도 이를 설파한 적이 있지만, 종교 이전의 부처님을 필자는 사랑한다.
부처께서는 '부처 자신을 신神으로 공경하지도 말고,
자기 자신만을 오로지 빛으로 삼고 정진하라'라는 열반송을 남기셨는데 이 말씀은 너무나 신선하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문장이 있을까.
모름지기 달을 버혀 구름을 타는 배를 만들어도 이 보다 더 아름답고 신선하지는 않으리라.
신격神格을 부여하게 되면 분별의 질서가 성립되기 때문에.......
이후로부터 글로 형언할 수 없는 질서의 세계가 무한정으로 펼쳐지게 됨을 어찌할 수 없게 된다.
무변광대한 우주의 물질은 이로써 무한량無限量으로 싹 트게 되고 경배의 대상인 신神들도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 어딘가에 법등명法燈明의 법法이 꽁꽁 숨어있으니......
어디에 유무有無를 둘 것인지 또한 난감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단칼에 목불木佛도 베어 버려라!'라고 옛 조사祖師들은 설파하였던 것이다.
- 명상순례를 오신 분들을 위해 명경헌의 비경인 물소리 명상길을 내어 주었다 -
- 수억만년을 지나온 물길이 암석을 뚫고 만들어낸 유상곡수연로流觴曲水宴路 -
- 명경헌은 계곡과 계류가 있기에 살아있는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
- 단아하게 흐르는 물처럼 맑은 기운이고 싶다 -
- 손님들에게 필자는 오늘이 산앵음山櫻吟의 날이라고 말씀 드렸다 -
- 산벚꽃의 맑은 기운을 읊어볼 수 있는 아름다운 날에 지인들이 방문하셨다는 말씀이다 -
- 벚꽃 보러 오신 산앵음의 날인데 어찌 음악이 빠질소냐 -
- 이교수는 이분들을 3일간이나 가이드했다니 그 정성이 대단하시다 -
- 산앵음의 날에 우리는 소피 무터를 초청하여 베토벤의 '봄' 소나타를 즐겼다 -
- 음악명상에 빠져 드는 모습들이 진지하시다 -
- 음악과 도반과 자연만이 있을 뿐...... -
- 마음공부의 깊은 경지 빠알리어에 능통하시다는 분들이 참으로 진지하시다 -
- 베토벤은 '신神이 들려주는 멜로디를 받아 적었을 뿐!'이라고 하였다는데 -
- 그렇다면 음악은 신神의 이야기가 포함되는 것이다 -
- 이분의 빠알리어 경지를 언젠가 강의로 듣고 싶다 -
(빨리어는 부처님 시절의 언어에 가장 근접했다는 기원전 3세기의 서인도 방언이라고 한다)
- 운강선생이 음악의 삼매에서 나오지를 않으시는구나 -
계곡을 소요하며 자연명상에 들던 우리는 이내 음악실에 들어와 담소를 나누었다.
운강선생의 이야기로는 심경心耕이라는 다음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중인데, 월례회 행사로 함께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 다니며 마음 수련에 비중을 두고 있다며
주 멤버들이 교수와 작가분들, 명상 수련에 일생을 보내신 분들이 원로로 많이 포진되어 있다 하셨다.
그런데 이분들을 모시고 근 3일간이나 남도명상순례길을 가이드하신 이중표 교수도 참~ 대단한 분이시다.
이교수의 천재성이야 학창시절에 이미 인정을 했던 사안이지만,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씩 송광사에서 불교철학 강의를 맡고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석학이요 현인賢人이시다.
필자는 총각시절 이교수와 함께 무등산의 광륵사에서 함께 도반으로 한 철을 난 적이 있다.
그 시절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국어로 번역 작업을 하시던 동국대의 고익진 교수님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익진교수님의 냉철하게 밝으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학문 앞에서는 철저히 냉철하였지만 제자들에게는 따뜻한 미소를 늘상 거두지 않던 분이셨다.
그 시절 이교수는 단소를 멋있게 불어재끼던 낭만 또한 가지고 있던 한량이었다.
- 가운데 카메라 들고 서있는 필자 우측으로 최훈동 병원장과 이중표 교수 -
- 명경헌을 나서는 이분들을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 못내 서운한 감이 들었다 -
- 인근에 있는 화순양탕이 유명한 경인식당에서 중식을 들고 우리는 물염정으로 향했다 -
물염정은 여름이면 진초록 빛에, 가을이면 단풍 색감에,
겨울이면 백설의 하얀 자태에 물들며,
봄에는 황혼 빛과 벚꽃 낙화가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벚꽃이 피는 4월에 찾아가는 물염정을 필자는 제일로 추천해 주고 싶다.
물염정 뒷켠에 아름드리로 솟아있는 수령 몇 백 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산벚나무가 만개할 때에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 지는 도솔경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물염정이다.
‘벚꽃과 하늘과 적벽이 이렇게도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가 있을까?’하는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 추천해 본다.
그런 멋진 4월에 이곳을 방문하신 심경회 회원님들은 정말 복인들이시다.
- 물염정 좌우로 도열해 있는 아름드리 산벚나무를 보아라 -
- 이 벚나무의 꽃잎이 바람에 우수수 낙화할 적의 아름다움은 가히 보았던 이들만이 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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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천 황현선생의 경차물염정운 -
필자는 심경회 회원님들과 함께 물염정을 방문하여 이교수의 해박한 설명을 듣고,
연이어 필자가 집필하였던 '한국의 멋을 찾아서'의 '물염정편'에 쓰였던 시문詩文들을 낭송해 드렸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사숙私淑했던 매천 황현선생의 시문과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재로金在魯선생의 시액을 대표로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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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나무 뒤로 보이는 절벽이 바로 화순의 물염적벽으로 특히 황혼빛이 유명한 곳이다 -
물염정기 勿染亭記
勿染亭者福川之名○也 ○深窈○ 廻絶塵○ 淸幽之觀甲於湖南 默守子暇 日一訪焉 主人請文以記之 默守子問焉日 物之所謂染者 浸漬而變 其素質之稱也 今此名亭有取於一塵不染之義 主人亦知 夫勿染之 可以反隅於吾人者平此亭旣名於南國而登眺者非一 若夫歌舜盃酒 則染於聲色者也 牽係流連 則染於遊覽者也 侈廚傳恣驕傲 而不識山水之爲何樂 則方伯之染於功名也 盛僕從○服飾 而悤悤然閱過 則守宰之染於專城者也 當其澄波如鍊 霽月流暉 四顧寂寥纖塵不到 則亭之勿染也而人於斯時 一心湛然 萬慮皆空 有若古潭之澄淨 明鏡之無○ 視彼四者之染 無一染焉 則此可謂勿染 而如或私爲巳有 不欲共衆則是染於亭也 其於勿染之名 何如而必欲固求余文不幾於染於文者乎余則雖無四者之染 而爲副主人之需 索作此文記 此亭則亦可謂染於酬應 是主人與我 皆有○於勿染其可乎 主人日 惟向之四者之染 染之俗也 夫子所謂有慊於勿染云者染之雅也 水性一也 而涇渭不同土産均也 而薰○有異 豈可以彼此 一時需副之染 自夷同之於俗客難○之染乎 默守子異其言 乃命管而記之時夜將半 萬○俱寂 心情境淨 俗塵不染 以勿染之筆記 物染之亭 主人羅氏故都事諱茂松 字秀夫 卽澤堂詩所謂何當聯○水竹間 侍兒更唱歸來篇者也 主人能世守此亭云.
<强圍赤奮若孟秋○ 默子散人 晋山 柳成運 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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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물염정은 복천에 이름난 정자라 깊숙하고 고요하여 진속과 멀리 떨어져 호남에 으뜸하니 묵수자默守子가 한가한 날 한번 찾아가니 주인이 글을 청하여 기록하라 하거늘, 묵수자가 물物의 이른바 염染이라 하는 것은 젖어서 그 소질素質을 변하는 것을 칭함인데, 이에 정자를 이름 함에 일진의 물들이지 아니한 뜻을 취한 것이니 주인은 또한 아는가. 무릇 물염勿染은 가히 오인에 반우하는 것인가. 이 정亭이 이미 남국에 이름이 나서 등림한 자 하나뿐만 아니라 만약 주배로 가무한즉 성색에 물들인 것이요. 유연에 빠져버린즉 유람에 물들임이요, 주방을 사치하고 교만을 자행하여 산수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즉 방백方伯이 공명에 물들임이요,. 복종이 많고 복식이 화려하여 홀연히 지나다닌즉 수령이 전성專城에 물들임이라. 이에 마땅히 맑은 물결은 연금과 같고 개인 달이 빛을 흘러 사방이 고요하여 적은 티끌이 이르지 아니한즉, 정亭의 물들이지 아니함이라.. 사람이 이때에 일심이 담연하고 만념萬念이 공허하여 옛 못과 같이 맑고 밝은 거울처럼 가림이 없어 저 네 가지의 물들임을 보아 하나도 물들임이 없은즉, 이는 가히 물염勿染이라 이를 것이요. 만약 사사로 자기의 소유를 삼아 여럿이 함께 하고자 아니한 즉, 이는 정亭에 물들임이니 그 물염의 이름에 어찌하리요. 반드시 진실로 나에게 글을 구하고자 하면 글의 물들임에 가깝지 않으냐. 나는 비록 네 가지의 물들임은 없으나, 주인의 뜻에 부응하려고 이 글을 지어 이 정자를 기록한 즉, 또한 가히 수응酬應에 물들임이라 이를 것이니, 이는 주인과 나와 더불어 모두 물염에 혐의가 있으니 가하겠느냐. 주인이 이르기를 오직 위에 네 가지의 물들인 것은 물들임의 속됨이요, 자네의 이른바 물염에 혐의가 있다는 것은 물들임의 아름다움이다. 물의 성性은 하나로되 경涇과 위渭가 한가지가 아니고, 토산은 균일하되 훈薰에 다름이 있으니, 어찌 가히 피차 일시에 수부需副의 물들임으로써 스스로 객음客音의 낫기 어려운 물들임에 동일하랴. 묵수자가 그 말을 기이하게 여기어 이에 필을 들고 기록할 제, 이 밤이 장차 반쯤 지냄에 만가지 소리가 고요하여 마음이 맑고 주위가 깨끗하여 속의 티끌이 물들이지 않으니 물염의 필로써 물염을 기록하노라. 주인 나씨는 옛 도사都事 휘 무송茂松 자 수부秀夫니 곧 택당시澤堂詩에 이른바 「하당연○수죽문何當聯○水竹問 시아갱창귀래편侍兒更唱歸來篇」’어찌 옷깃을 연하여 수죽水竹 사이에 노닐 뿐이냐. 시아侍兒들은 다시 귀래사歸來辭를 불러주었다’ 라는 것이다. 주인은 능히 대대로 이 정을 지키리라.
<정축丁丑 맹추삼일 흑자산인黑子散人 진산晋山 유성운柳成運 삼가 기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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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산柳晋山은 물염정의 2대째 주인이었던 나창주羅滄洲의 요청으로 상기 물염정기勿染亭記를 지으면서 네 가지의 물듦에 대해서
‘주배로 가무한 즉 성색聲色(소리와 여색)에 물들인 것이요. 유연에 빠져버린 즉 유람에 물들임이요,
산수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 즉 공명에 물들임이요, 복식이 화려하니 전성專城(고을을 다스림)에 물들임이다.’라고 설파하였다.
즉, 성색聲色, 유람遊覽, 공명功名, 전성專城 이 네 가지에 물들려고 함이 인간의 본성일 것이나,
이곳 물염정에서는 이 사성四性을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니, 자연을 닮아가는 주인장의 맑은 성품이 어찌 물염정과 다르겠느냐 하였던 것이다.
역시 선현들의 이야기대로 물염정은 속세에 물듦이 없이 항상 맑음을 고유하게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사성四性에 물들지 않음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마는, 옛 선현들은 스스로 마음의 등불을 삼고서,
그 등불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마음자리의 수양을 닦는데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오호라! 그 누가 있어 옛 선비들의 청렴근검함을 칭송하며 노래해 줄 것인가.
비단 현 세대가 물질만능주의, 과학만능주의로 흐르면서 사람이 사람을 가볍게 보고, 인간이 인간을 대함에 있어 삿됨이 끊이지 않으며,
도덕은 오히려 퇴보하는 양이 선명하게 바라 보여 참으로 걱정이다.
이는 나라의 교육입책敎育立策이 근간부터 잘못됨이 크다 하겠으니 차제에 많은 반성이 뒤 따라야 할 것이다.
- 물염정 주위에는 화순적벽을 세번이나 찾았고, 마침내는 이곳에서 임종했던 김삿갓의 시비가 서 있다 -
자등명自燈明의 화두는 항상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진대,
방랑시인 김삿갓은 어찌하여 자등명의 테제These를 조상 욕되게 했던 ‘자책自責’에다 두었던 것일까.
만고에 견줄 수 없는 시재詩才를 타고 태어났으면서, 결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던 세익스피어의 문재文才와 능히 견줄 수 있었던 김병연 선생이
어찌 그리 옹졸한 마음을 내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만 들뿐이다.
둘째 아들 익균이 3번이나 그를 뒤쫓아와 고향으로 갈 것을 간청하였을 때, 차남을 따 돌리던 그의 심정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어찌 범부의 눈으로 그 큰 혜안의 길을 짐작하리오만,
난고 김병연 선생의 간난신고 방랑생활이 안타깝고 안타까울 뿐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겠고,
그런 아릿한 회상에 젖어 들면서 물염정 옆의 김삿갓시비공원을 산책하였다.
- 물염적벽은 가을의 단풍철에 더욱 물이 들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
이제는 이분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필자는 명경헌에 돌아가 불당골을 수만년 지켜온 주인장들과 함께 초봄을 단장해야할 일이 남아있고,
이분들은 무등산 가사문학의 원류를 찾아, 선비문화의 궁극을 찾아 명상을 해야할 의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만남은 이별이요, 이별은 만남이던가.
그래 회자정리요 이자정회離者定會라 하였던가.
그렇게 헤어지는 순간에 필자가 물염정을 위하여 적어 놓았던 시문을 또한 읽어 드렸다.
'물들지 말라 하시는데, 석양빛은 어찌할꼬?"하면서 말이다.
아름다운 님들이시어,
처처불處處佛과
처처신處處神에
모두 처처통處處通이니
부디 처처각處處覺 하소서!
......
물염을 노래함
노을 지는 물염정에 객이 홀로 찾아 드니
물염적벽 석양 빛이 화려하게 물들었네
옛 시절의 신선들은 물들지 말라 하셨는데
세상풍파 털어 낸들 황혼 빛은 어찌 할꼬
- 소향小鄕 권대웅權大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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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앵음山櫻吟의 날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벚꽃 보러 한양에서 오신 님들은......
마음 속에 저마다 게송 한 수씩 이고 지고서 그렇게 떠나 갔다.
떠나감이나 주저앉음이나 모두 다 똑같이 여여如如하다는 진리 하나만을 깨달은체 말이다.
아마,
여여如如도 마침내 여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 2011년 4월 23일 다녀 가시다 -
小 鄕 權 大 雄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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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은 이곳 카페에 더 있습니다.
http://cafe.daum.net/valeriano
- 2011년 4월 30일 완성하다 -
P.S: 배경음악은 " 물 소 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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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심경心耕 카페에서 명경헌 방문평만 발췌해서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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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삶이 끝난다면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활은 무슨 의미일까? 재생의 모티브는?
죽음은 끝도 아니고 문제의 종식처도 아니다. 빚도 여전히 상속되듯이 풀리지 않은 숙제는 자고 나도 여전히 남는다. 삶과 죽음은 낮과 밤처럼 연이어 펼쳐지는 삶의 다른 모습이다.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는 게 아니라 시작없는 곳으로부터 끝없는 곳으로 흐르는 흐름일진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견디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마음이 소중하다. 암흑 가운데 빛이 있으니 아무리 캄캄한 밤도 마침내 아침을 맞기 떄문이다.
죽었다가 되사는 건 육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죽음의 고통을 겪어야만 새로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버려야만 과거의 고통스런 삶에서 벗어나 보다 성숙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 올해 첫 매화 소식을 좋은 선현의 시와 함께 전해준 벗을 무등산 자락 깊숙한 곳에서 40년만에 만났다. 물론 중간에 스쳐 만나고 소식을 듣곤 하였지만 그의 진정한 면모를 본 건 그렇게 수십년만이다. 학창시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벗은 과거의 그의 삶을 탈각하여 거목이 되어 있었다. 음악의 달인이자 훌륭한 시조시인이며 사진 작가에 인생의 길을 제대로 살아가는 길벗으로 자연과 하나되어가는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죽음의 고통을 겪고 일어선 사람은 아름답고 정결하고 향기가 있고 빛난다. 껍질에서 깨어난 병아리처럼. 칼집에서 뽑힌 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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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월례명상을 다녀와서...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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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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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훌륭한 문화 명상을 체험하셨군요. 감상하듯이 음미하듯이 감정의 격류도 그렇게 바라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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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상함은 눈밭에 핀 청매화같고 선비의 향기로움은 그윽한 난초와 같고 선비의 소박함은 노오란 국화와 같으며 선비의 기개는 굿굿한 녹죽과 같구나.
선비의 얼과 자취를 만끽하게 해준 무등산 둘레길 정자며 나무며 시들. 이를 온 몸으로 사랑하고 알리는 계산 선생 소향 선생같은 선비들이 있어 호남은 여전히 예향이요 지조의 고장이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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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소요당에 계산선생님이 계시다.
그분은 말씀이 없으시다. 그리 큰 웃음도 없으시고 그리 작은 날끗도 없으시다.
그분이 힘을 다 하실 때는
언어보다 아름다운 글에 낙관을 점 하실 때이다
그리곤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신다.
글을 바람에 날리시는 것처럼,,
그렇게 홀연하시다.
중표선생님,
어디서나 우리 곁 이시다.
남자 보다 여자 같으시다.
자꾸자꾸 퍼 먹이신다.
나의 빈 머리에 그득 그득 먹여 주신다.
그분은 현자이시다.
한쪽 눈은 감고 한쪽 눈은 뜨신
언덕너머 자유로우신 현자이시다.
소향선생님
꿈에도 그런곳이 있을 줄 이야.
앞은 산길, 뒤는 계곡.
앞은 옆집 같고 뒤는 먼 집 같은
그런 곳에 선생님은 오감으로 사신다.
세상사 그분께는 잡음이다.
잡음아닌것은 자연과 음악 뿐이다.
묻혀 사신다.
자랑도 안하신다.
단지 깨워 주려고만 하신다.
그릇에 수북하게 넘치게 준비된 과자 처럼
넘쳐 흘러 내릴 만큼 부어주려고 만 하신다.
넘치면 저 분 만큼 맑고 깨끗해질수 있을까 싶다.
보림사, 운주사, 쌍봉사, 소쇄원,,,
모두 더없는 곳 이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분들에 가려
돌아오는 머리 속엔 사람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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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에서 도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향선생의 글 사진 그리고 배경의 명상 음악
예전의 선비들도 그랬고 미래의 선비들도 그럴 것이지만 오늘의 선비도 역시 부드럽고 의롭고 예스럽고 지혜롭고 믿음직하다.
산벗꽃이 아름답게 노래하며 춤추던 날 세속의 때를 여읜 선비 있어 황혼에 물드니 물염 적벽의 백로가 환희하며 날아오르더라. 먼길 온 나그네들 반가이 맞고 보내는 꽃비는 명경헌의 주인 닮아 성스럽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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