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티성지 - 매화향기 가득한 성지순례 2
배티성지 - 매화향기 가득한 성지순례 2
일 시 : 2012년 4월 14일
장 소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471
네비게이션에 의지하니 편하기는 한데,
예전 여행에서는 곳곳에서 지도로 확인하며 또한 주위의 명소에 대한 지리공부도 겸하면서 복습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네비게이션을 차에 장착하는 문화가 발달하면서는 영 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기계가 일러주는대로 끌려 다니다보니...... 이제는 종속된 하수인같은 느낌이 든다.
편하자고 만든 문명의 이기들이......
그럴리야 없겠지만, 감정을 갖게된다면 인간은 바로 노예로 종속될 것은 뻔한 이치이니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다행히 감성은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에 안심은 된다.
영원히 거부할 수 없는 Emotion의 세계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지성 보다 더 높은 곳에 감성이 있다한다면 어불성설이라 반박하는 이들도 물론 있겠지만,
지성은 수양에 의해서 닦아나갈 수도 있는 영역이지만...... 타고난 감성은 우리가 콘트롤하는 영역이 아니다.
신의 섭리가 내재해 있는 까닭에 순종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영원한 테제가 아닐까.
그런저런 생각과 사념이 믹스되는 오후의 충청도 길을 하염없이 달린다.
초봄의 아지랑이가 들판에 가득 피어 오르는 순례길이다.
그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산속의 깊은 골짜기에 배티성지는 자리하고 있었다.
배티는 순수한 우리말로 배고개쯤으로 해석이 될 것이다.
원래 배나무 이와 산우뚝할 치자를 써서 이치梨峙가 배치-배티로 변하지 않았나 추측을 해본다.
그러나 이는 신빙성이 없는 추측이며 아무튼 배티라는 이름이 겉멋은 있어 보인다.
성지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이름도 인연 따라 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법! 아닐까.
배티성지 [梨峙聖地]
배티(梨峙)는 신유박해(1801년)로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이어지는 천주교 박해시대 때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골짜기로, 1830년을 전후로 교우촌(비밀신앙공동체)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1866년 즈음에는 교우촌이 15곳에 이르렀던 곳이다. 또 조선교구 최초의 신학교가 있던 마을이고,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였던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의 사목 중심지로 교리서인 <천주가사>가 탄생되었던 곳이었다. 또 배티와 그 주변으로는 27여 기에 이르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다. 1976년 9월 성지로 개발된 배티성지에는 1996년 6월 완공된 성당(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성당)과 성당에서 야외제대까지 연결된 청동으로 만든 십자가의 길, 야외제대 및 성모상, 최초의 조선교구 신학교와 최양업 신부의 성당 및 사제관으로 사용되던 초가집을 재현한 건물, 양업영성관 및 수련관, 무명순교자 6인 묘역 및 14인 묘역, 최양업 신부 동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배티 [梨峙]
1866년 병인박해 때 인근에서 여러 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곳으로 윤의병(尹義炳, 바오로) 신부의 박해 소설《은화》(隱花)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차령산맥 줄기의 산간 지대로 충북 진천군과 경기도 안성군의 경계가 되는 고개에 자리잡고 있는데 마을 어귀에 꿀배나무가 많아서 ‘배나무 고개’로 불리다가 이치(梨峙)라는 한자로 표기하고 그 훈독인 배티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곳에 천주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20~1830년대 무렵으로 기록상으로는 1839년 기해박해로 성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이 순교한 뒤 그의 아들들이 친척 집에서 양육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당시 최경환의 장남 최양업은 마카오에 유학하고 있었다. 그후 최양업 신부는 1849년 12월 3일에 귀국하여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로부터 임지를 부여받고 배티 이웃의 동골에 거처를 정하고 6개월 동안 전국 5개도에 있는 교우촌들을 순회하였다. 1857년 무렵에는 배티와 절골 주변의 삼박골(양백리), 용진골(용덕리), 정삼이골(용덕리), 발래기(백곡면 명암리), 명심이(명암리), 지구머리(백곡면 사송리), 새울(이월면 신계리), 지장골(진천읍 지암리), 굴티(문백면 구곡리) 등지에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깊은 산촌이었던 까닭에 성직자들의 휴식처로 알맞아 M.A.프티니콜라[朴德老] 신부가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목회(사목)활동의 중심지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1861년 최양업 신부가 사망하고 프티니콜라 신부도 배론의 신학교로 떠나자 한동안 성직자가 없다가 경상도 서부지역을 담당한 칼래(Calais) 신부가 1866년 문경의 한실 교우촌에서 박해 소식을 듣고 인근으로 탈출하였다. 병인박해는 배티 인근의 교우촌에 큰 타격을 주어 1866~1868년 사이에 이 지역 출신이거나 거주자로서 순교한 이는 오반지(바오로), 이 생원 등 모두 27명에 이른다. 1870년 무렵 흩어진 신자들이 다시 모여 교우촌을 재건하여 1888년에는 E.C.두세[丁加彌] 신부에 의해 배티 공소가 설립되었고 이후에 새울과 용진골, 삼박골이 공소로 설정되었다. 이후 이 곳 공소는 여러 명의 성직자를 배출하였고 1901년 안성 본당 소속이 되었다가 1956년 이후에는 모두 진천 본당 관할 공소로 변경되었다. 1970년 청주교구에서는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와 함께 인근의 교우촌과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을 조사하여 현재의 위치에 경당을 지었고, 1993년 4월에 배티 사적지 전담 신부가 된 장봉훈(張奉勳, 가브리엘) 신부가 성당 건립을 추진하여 1997년 4월15일에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서는 최양업 신부의 시복 운동이 전개되었고, 배티 순교자 묘역 조성할 계획도 추진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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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티성지 입구에는 대형성당이 축성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
- 바로 내일 주교님이 축성식을 집전하신다고 단장이 한창이다 -
- 대성당 건너편의 쉼터 -
- 성당입구 성수대 -
- 한복차림이 독특한 스테인드 글라스 -
- 성모상이 아라비아풍을 느끼게 해준다 -
- 본당 내부는 단장이 한창이다 -
개인적으로는 배티성지가 조성된 분위기 보다는 최양업신부가 사목하던 한옥성당이 더 마음에 다가왔다.
천주교건 불교건, 어느 종교건 간에 요즘은 호화경쟁의 대열에 휘말려 들어가서,
정작 돌봐야할 기아선상의 서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위대한 성전 세우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게되는데 보기에 영 안 좋다.
물론 배티성지를 폄하할 생각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혀 둔다.
배티성지의 27분 순교자들께서는 충분히 그럴 예우를 받으실 자격이 있는 분들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주장을 더 깊이 들어가 본다.
서울에 있다는 신자가 수만명한다는 ***교회, 수만의 불자가 치유의 기적을 체험했다는 ***절,
성당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성당 등등......
얼마나 많은 종교 단체가 지금도 망각을 하고서는...... 바벨탑 짓기에 경쟁이라도 하는듯이 혈안이 되어 있는지 모른다.
기도하러 찾아간 산사나 성당에서는 하루종일 그리고 일년내내 중장비 부리는 소리만 요란한 곳이 어디 한두군데던가.
물론 국력이 그만큼 신장되다 보니 신도들의 부가 상상을 초월하게 되어 나오는 현상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좀 더 본연의 자세를 고민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
자, 고민해 보자.
지금 우리 주위에서 배를 곯고 헐벗고 있는 이를 정작 우리가 모른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자동네라 그런 이웃이 곁에 없다고 한다치면 십리만 더 반경을 넓혀 보도록 하자.
정작 종교단체는 그런 곳에 달려가서 건물 지을 돈으로 구호사업을 더 벌여야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천막에서 예배드린들 어떠랴.
원시종교는 비록 들판에서 이루어 졌음에도 더 경건한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았던가 말이다.
오죽하면 호화 신전에 들어갈 수 없는 남루한 차림의 예수님이신지라 당신께서도 밖에서 구경만하고 있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생겨났겠는가.
- 조명을 봉안 위주로 클로즈업한다는 것은 쉬 피로해 보여 좋지 않을 듯 싶다 -
- 꽃의 싱싱함이 대성당을 축복해 주고 있다 -
- 김웅열 신부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
배티성지의 주임은 김웅열 신부님은 어찌나 사목활동에 열심이신지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내신 분이라고 한다.
진즉부터 배티성지 카페에 가입해서 김신부님의 강론을 이메일로 받아보고는 했는데,
다행히 오늘 뵈올 수 있었다.
김신부님을 뵈면서 최양업 신부님 만큼이나 바쁘신 분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고 보니 동상의 얼굴과 너무 닮아 보여서 새삼 연기의 법을 떠 올리게 되었다.
연緣이 없으면 과果가 없는 법.
예전 최양업 신부님의 신앙 말씀이 이곳에서 27분의 순교자를 탄생시켰다 한다면,
김신부님의 혼신을 다한 노력 덕분에 오늘의 배티성지는 크게 흥하게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마침 내일은 주교님을 모시고 대성당 축성식이 열린다하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결례라 싶었다.
- 이곳 스테인드 글라스는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를 회화화 했다는 부연 설명을 신부님으로부터 들었다 -
- 참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였다 -
- 모나리자님도 사진을 담느라 바쁘다 -
- 최양업 신부님은 김대건 신부님에 이어 우리나라가 배출한 두번째 신부님이시다 -
- 이곳 순교현양탑에서 부터 순례가 시작된다 -
- 최양업 신부님의 아버님도 이곳에서 순교하시었다고 한다 -
- 정결한 쉼터들이 참 아름다웠다 -
- 사제관인 듯 -
- 외솔의 자태가 백미다 -
- 산상제대 가는 길이 고요에 깔려있어 아주 좋은 분위기를 연출해 주었다 -
- 원래의 성당 -
- 고즈넉한 분위기로 기도 드리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
- 성모상 앞에는 봉헌초가 항상 타오르고 있었다 -
- 정말 성스러운 수도의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
- 필리핀풍의 성모님 -
- 이 언덕길을 올라와야 한다 -
- 그러면 십자가의 길이 시작된다 -
- 6인무명순교자의 묘는 두시간이 걸린다하여 일찌감치 순례를 포기하였다 -
- 항상 마음 속에서 뵙던 성모님이 바로 여기에 계실 줄이야 -
- 나의 영혼에 나타나시는 성모님의 모습 그대로시다 -
- 무슨 말이 필요하랴...... 기도만 드릴 밖에...... -
- 산상제대를 물러나오는 마음이 평안하였다 -
- 영성의 집 -
- 순례자들이 미리 예약하고 쉬어가는 집 -
- 최양업 신부님은 하도 사목활동에 바빠서 길에서 순직하시고, 베론성지에 묻히시게 되는데 이번에 거기도 순례할 예정이다 -
- 예전에는 이 길로 오르내렸으리라 싶다 -
십자가의 길을 올라가 산상제대에서 만나뵌 성모상을 보고서 깜짝 놀라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필자가 환란 중에 있을 때는 항상 달려 오셔서 어루만져 주시던 성모님의 모습 그대로 여기 계셨기 때문이다.
여느 성모상과도 느낌이 달랐기 때문에 뵙자마자 필자는 바로 알아뵙고 무릅을 꿇어 경배를 드렸다.
존귀하신 분에게 최소의 예의라도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절에 가서도 느낌이 좋은 목불을 친견하게 되면 바로 법당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는 한다.
느낌이 안좋고 마가 좀 끼었다 싶은 목불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는 애써 외면을 해버린다.
작년 여름의 템플 스테이 덕분에 정식으로 삼배를 올리는 법도 다시 터득하게 되어 더욱 능수능란하게 불자 흉내를 내는 것이다.
필자는 자연스럽게 경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당췌 짚어낼 수가 없다.
혹자는 이단적 행위라고 비난한다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 마음이 내재해 있는 까닭은
성자에 대한 예우의 발로가 바로 이 경배의 표시로 필자에게는 자연스레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인간의 몸을 받고서 신의 반열에 오른 분으로 정식 세분을 꼽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경배에 있어서 어느날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며 그를 감사히 여기고 있다.
꼿꼿이 바라보는 마음과 달리,
정성을 다해 무릅을 꿇고 바라보는 하심下心은 역시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된 것은 실로 고귀한 인연이었다.
그분들을 말씀 드리자면 바로 부처님과 예수님과 성모님이시다.
이 세분은 인간이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신 성자들이기 때문에 남은 인간들에게 큰 귀감이 되어 주셨던 분들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나투이셔서 온갖 고난을 겪으시고 나서 신의 반열로 들어가신 분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개신교 친구들은 종종 예수님 어머니니까 마리아라고 불러야지 성모님이라는 호칭은 가당치 않다 하는데,
필자는 그런 생각에 반대한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나투이시어 십자가의 형극에 이르는 최상의 고통을 크나큰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순치馴致시켰다 한다면,
그런 고귀하신 아드님께 순명하시면서,
당신의 몸에서 나투이신 예수님의 육적인 고통을 보면서 어미로서의 애끓는 마음으로 최고의 형극을 당하신 분 또한 성모님이시기 때문이다.
세상에 고통없는 연단鍊鍛이 어디 있으랴.
대장간에서 쇠가 달구어지고 망치질 당하지 않고서야 어찌 무쇠에서 강철같은 보검이 탄생할 수 있으랴.
묘하게도 필자는 성모님을 항상 느끼고 뵙는 경험을 가졌기에 아무런 이유도 추앙도 필요없이 성모님을 순순히 그리고 자연스레 마음에 모시게 되었다.
시련이 오고 아픔이 올 때마다 필자는 성모님의 애간장 타는 그 아픔보다는 못하였기에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또한 기를 수 있었다.
그리고 성모님은 필자의 주위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큰 자비심을 항상 보여 주고 계시니 어찌 무릅이 안 꿇리겠는가.
'성모님, 사랑합니다!'하는 큰 서원으로 배티성지를 물러 나온다.
그리고 수원성지로 나서는 배나무재 고갯길에서 우연히 최양업신부성당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서 순결한 매화를 또한 친견할 수 있었으니 이는 하늘이 주신 또 하나의 선물이라 싶었다.
하늘님! 감사합니다......
- 양지 바른 단아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아름다운 한옥 성당이었다 -
- 여기에도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
- 얼마나 싱그러운 봄색깔인가 -
- 산세를 둘러보니 깊은 산골이라 숨어서 신앙생활하기에는 딱 안성마춤인 곳 같았다 -
- 오랑캐 종교 믿는다고 얼마나 핍박을 당하셨을까요? 최신부님, 존경합니다 -
- 수선화의 노란색마저도 오늘은 순결하게만 보이는구나 -
- 한옥성당은 삼칸 구조였다 -
- 부엌과 예배실인 큰방 하나가 달랑인 조촐한 모습! 그러나 위압감이 드는 정결한 모습! -
- 우리는 이곳에서 정해진 순서에 따라 미사를 드렸다 -
- 이 분이 바로 강직하신 최신부님이시다 -
- 병인박해 때 순교하신 유데레사님의 묘가 이곳에 이장되어 있어 더욱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
생각해 보라!
'제사도 모시지 않고 서양 오랑캐 귀신에게만 홀렸으니 너는 죽는게 마땅하다!'고 천벌을 내려야겠는데,
만일 그 '서양귀신을 절대 믿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살려 주겠다 하는데......
배교를 당할지언정 차라리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순교자의 그 준엄한 각오를 말이다.
유교가 지상최고의 지엄하신 절대윤리였을 때,
모두가 손가락질하며 무당굿으로 서양귀신을 몰아내려 할 때에,
그러나 의연히 죽어가셨던 성인들이 없었다 한다치면 어찌 예수님의 신앙이 이 땅에 발을 들여 놓았겠는가 말이다.
그 선각자들 없이 우리의 발전은 결코 없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지금 한국 고도문명사회의 일등공신은 서양문물과 진리를 일찍 받아들이셨던 순교자의 공로가 컸다 한다치면 지나친 역설이라고 반박할 것인가.
그대는 '너의 부모가 귀신이니, 부모를 부정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할 때에 차라리 주검을 맞이할 의연한 각오가 되어 있는가 말이다.
필자 자신도 솔직히 말해서 의문이 들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분들의 결단에 존경심을 갖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정의의 발로요, 평생 지켜야할 존귀함의 표상이 아니던가 말이다.
그런 마음이 들었기에 숙연한 마음과 수도자의 자세로 우리는 이렇게 성지 순례를 다니는 것이다.
- 마치 축복이나 해 주시는 듯 백매님이 달려나와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
- 백매님! 백매님! 사랑합니다!
백매님 뵙고,
사랑한다는 말씀을 올릴 수 있는 마음을 갖게된 근저에는 오늘 다니던 성지순례의 경건함이 큰 작용을 해 주었다.
그 모진 동장군의 횡포와 동토의 삭풍을 이겨 내고서 꽃중의 꽃으로 제일 먼저 활짝 피어오르던 매화님의 표상이야 말로 과연 수도자의 모습 아니던가!
매화님은 어디에서건 그 맑은 자태와 그 맑은 암향을 잃지 않으신다 할 수 있으니...
바로 그런 인고의 과정이 수도자가 행하는 인내의 수행과 같다 여겨지기 때문에 흠모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 이제 매화 지고나면 또 일년을 기다려야 하니 다만 그 점이 안타깝구나!
꽃 보고 너무 엄살이 심하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 연유가 무엇에 있다고 그대는 진단을 내려줄 것인가.
그 연유는......
바로 코끝을 짧게 어루만지며 달아나는 새악시같은 매향애 있다한다면 이해가 오시는지?
그 매향 속에 우주의 모든 이치가 들어있다 한다면 매화귀신이 필자에게 씌었다 할 것인지......
ㅎㅎㅎ
중증重症! 맞다!
- 2012년 4월 24일 완성하다 -
小鄕 權大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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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은 아래 링크된 블로그에 더 있습니다.
http://blog.daum.net/valer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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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이 있는 자료이오니,무단 사용시 그 출처를 꼭 명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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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글은 배티 카페에서 김신부님이 보내오신 축성식 실황 이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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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최양업 신부님 성전 봉헌 미사가 주님의 은총 속에서 성대히 거행 되었습니다.
집전해 주신 주교님. 함께 해 주신 신부님들 뿐 아니라 드러내지 않고 일해주신
봉사자 여러분의 노고,,,, 느티나무 카페 회원들의 기도가 있었기에,,,,
참으로 주님 보시기에 흡족한 봉헌식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주님을 향해.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위해 끊임없는 마음으로
배티 순교성지를 사랑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죽도록 사랑 합니다.
김웅열 토마스아퀴나스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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