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지 - 매화향기 가득한 성지순례 3
수원성지 - 매화향기 가득한 성지순례 3
일 시 : 2012년 3월 14일
장 소 : 경기도 수원시 화성 일대
배티성지를 빠져나와 달려간 곳은 수원화성 인근의 수원성지였다.
경기도로 들어서면서부터 그 유명한 교통체증의 대열에 자랑스럽게 합류하게 되었으니,
쪽쭉 뚫리는 도로에만 익숙해져 있던 필자에게는 퍽이나 부담스러운 고통이었다.
길에다 쓸데없는 휘발유를 낭비하며, 또한 천금과 같은 귀한 시간을 아무 의미도 없이 낭비하고 있는 이 안타까움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참, 이렇게 심각한 지체현상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는 대도시인들의 고충을 짐작할 수 있겠다.
공상과학 처럼 하늘길이 뚫려야만 이 아우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래서 일찌감치 대도시의 무신경성 소비성향을 탈출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석양이 이슥해져서야 수원성지의 대표성당인 북수동성당(전 수원성당)에 도착하여
저녁 7시 30분 미사에 참예할 수 있었다.
토요일 미사라 신도 수는 적었지만 젊은 신부의 집전이 신선했고,
나이 드신 자매님들의 열성적인 모습들에 많이 감동했다.
원래 토요일밤 미사는 청년미사로 진행된다는데 청년들 보다는 장년이 훨씬 더 많았다.
종교를 멀리하는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모습이기에 적지않은 걱정이 앞선다.
21세기의 첨단과학은 종교를 이론적으로 부정하기에 너무 알맞은 학문으로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문명의 이기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종교적 신선함은 점점 힘을 잃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4G의 스마트폰에서 LTE의 속도를 자랑해 본들 그것은 한낮 기계문명일 뿐이요,
핵폭탄 한방이면 사라질 찰라적인 전기의 편리함임을 젊은이들은 잘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사회는 전기가 없으면 아무런 진보도 없을 그런 무대책, 비환경의 시대인 것이다.
앞으로는 태양에너지나 풍력, 조력의 도움 없이는 미래의 전기사회도 불투명한 것이 현실이다.
원자력이나 유전에 의지하는 시대는 이제 빗나가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심각한 자원 위기에 너무나 무신경한듯한 사회가 정말 걱정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철학도 스피노자의 세계를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맑고 신선한 공기와 따사로운 햇빛을 공짜로 무한정 주시는 하늘님의 그 사랑 앞에서
어찌 스마트폰이 위력을 펼치며 젊은이들의 영혼을 점거하고 있는가.
진리는 항상 순수함의 최정점에서 우리를 대오각성 시켜 주고 있지만,
정작 그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당연한 듯이 망각하고 사는 오늘의 문명사회가 개탄스럽다.
일본이 지진 한방에 향후 200년간의 대책없을 오염에 휩쌓여 버린 이러한 상황을 보고서도 우리 인류는 그저 무신경이요,
무사태평이다.
참 대단한 심장들이다.
젊은이들이여!
아름다운 자연을 감사하며 맑은 사유를 즐길줄 아는 지혜를 가져 보라!
그런 정성으로 수많은 성인들을 배출한 수원성지에서 기도 드리는 마음이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하다.
철학도가 최고의 절망이 오더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천명했던 그 말씀을 우리는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든지 비상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양식 쌓기에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 교통체증 덕분에 피사체들이 이미 어둠에 잠겨 안타까웠다(수원화성) -
- 수원화성은 곳곳이 순교터로 얼룩져 있는 곳이다(빨간 십자가 표시 터를 주목하자) -
- 북수동 성당에 도착했다 -
- 미사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어 다행이다 -
- 북수동성당 -
북수동성당 [北水洞聖堂]
천주교 수원교구에 소속되어 있는 성당으로 1890년 왕림성당(1888년 설립,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의 공소(수원공소)로 출발하였으며, 1923년 11월 23일 본당으로 독립하였다. 설립 당시 성당명은 수원성당이었고, 신자수는 76명이었으며, 초대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였던 르 메르(한국이름 이유사, 세례명 루도비코) 신부였다.
1932년 11월 13일 건축총면적 248㎡ (75평)의 성당을 건립하였는데 이 건물은 수원 최초의 고딕양식 건물이었다. 당시 성당은 공소 28개를 관할하였고, 신자수는 2,600명에 달했다고 한다. 1934년에는 성당 옆에 4년제 사립학교인 소화학술강습회(현 소화초등학교)를 세웠는데 이 학교는 1946년 6년제로 정식 인가를 받으며 소호국민학교가 되었다.
1959년 11월 고등동성당이 분리되어 나가면서 수원성당에서 북수원성당으로 개칭되었다. 1970년 6월 지동성당, 1976년 1월 조원동성당, 1981년 8월 매교동성당, 2000년 1월 동수원성당이 북수동성당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하였다. 1978년 옛 성당을 철거하고, 1979년 4월 현재의 성당을 건립하였으며 대지면적은 1,835㎡ , 건축총면적은 1,494㎡ 이다.
2000년 9월 20일 수원교구는 북수원성당과 그 일대를 순교성지로 선포했다. 천주교 박해기간 때 수원에서의 박해는 특히 혹독했는데 수원성지(수원화성)의 중심에 위치한 북수동성당 일대는 순교자들의 형이 집행되었던 토포청(중영)과 심문을 하던 이아(화청관)이 있던 자리였다. 이로 인해 북수동성당은 악의 무리를 물리칠 수 있도록 주보성인을 ‘성 미카엘 대천사’로 정했다 한다.
성당과 교육관 옆으로는 1954년 건립된 옛 소화국민학교 건물인 석조건물이 있는데 2007년 이 건물 1층에 화랑(뽈리화랑)이 들어섰다. 뽈리화랑은 1932년 옛 성당을 짓고, 현 소화초등학교의 전신인 소화학술강습회를 설립했던 제4대 주임신부인 심 데시데라도 뽈리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곳이다. 2008년 현재 북수동성당은 북수동·남수동·매향동·신풍동·장안동·남창동·팔달로 전지역과 연무동·영화동·지동 일부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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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이 많아 들어차 있어 큰 터에 비해 매우 좁아 보였다 -
- 수원순교자현양비 앞에 초 봉헌을 했다 -
- 마침 피어난 목련이 경건함을 더해 주었다 -
- 밧줄을 꿰어 목을 졸라매던 형구틀(문경새재 성지에서도 똑같은 틀을 본 적이 있다) -
[출처] 경기일보 2008-3-28 |
- 미사가 곧 시작되는 본당 -
- 성모상 앞에도 참배객들의 봉헌초가 많이 꽃피어 있었다 -
- 미사 시간 -
- 십자가상이 없는 예수님의 상징적인 모습 -
- 본당 내부 장식 -
- 북수동성당의 입구 -
- 이미 어두워졌으나 특이한 약사여래상이 있는 곳에 찾아가 보았다 -
- 대장금촬영지로도 유명하다는 수원행궁의 신풍루 앞 -
미사를 끝내고 수원화성에 도착할 때는 이미 한밤 중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의 순례는 포기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새끼성당을 배출한 수원성당의 모체였던 북수동성당에서,
성지순례의 경건함으로 참례했던 미사는 중요한 기억으로 수를 놓아 주었다.
미사시간을 한 컷이나마 기록으로 남기려는 극성에 눈총을 주시는 모나리자님이 귀엽다.
경건한 마음이 훼손될까봐 그러시는 양은 알겠지만,
이 사진 한 장이 온라인으로 성지순례에 함께 동참하던 독자들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될 것이다.
그 분들 중에서 어떤 분들은 필자의 사진 한 장의 인연 때문에 이곳을 찾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그런 분이 한 분만 계시다 해도 필자의 정성은 보답을 받는 일이지 싶다.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서 엄숙한 인상으로 마눌님에게 무언의 대답을 주었으나 또다시 경고만 받았다.ㅎ
그래 주눅이 들어 미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서 다행히 나머지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성당을 나서면서 기둥에 걸린 외국인 신부님의 초상을 보며 할머니 자매님에게 물어 보았더니,
본당 신부님으로 당시에 순교하신 분이라 하시었다.
갑자기 영화 '미션'이 생각났다.
예수님 말씀을 전도하기 위해,
남아메리카 어느 폭포의 무시무시한 절벽을 타고 기어오르던 신부님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온다.
강력한 신념으로 몰두의 의미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수도자들의 모습은 경건함 그 자체이라 싶다.
이곳 수원화성에서 순교하신 수천의 순교자에 비하면 필자의 신앙심은 잘잘한 초개草芥와 같고
사막의 타끌보다도 더 엷다.
그러기 때문에 경배하는 진실된 마음을 배우기 위해 성지순례에 열심인지도 모른다.
강력한 계시를 받아들이기 위해 이번 성지순례를 목표대로 완결하리라는 마음으로 정성만을 다하자꾸나.
일박하러 서울로 떠나는 마음에, 수원에서의 탐매행을 밤이라는 이유로 접은 것만 아쉬움으로 남는다.
교통체증만 없었어도 완결할 수 있었을 터인데...... 참!
- 2012년 4월 23일 완성하다 -
小鄕 權大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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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lf A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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