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순례기

설경에 취하고 순결에 취하고 - 무주 덕유산 등정기

梅君子 2013. 1. 29. 15:25

 

설경에 취하고 순결에 취하고 - 무주 덕유산 등정기

 

 

 

 

 

 

                                                                                          일 시 : 2013년 1월 15일 ~ 17일

 

                                                                                                              장 소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덕유산 향적봉

 

 

 

 

 

설원의 나라 장수와 무주에서 온통 흐리디 흐린 하늘과 하얗디 하얀 산천에 마음을 빼앗기며 정신을 팔다가 돌아 왔다.

3일 간의 이 여정이 마치 3년을 설원에서 헤매이다 온 듯이 기나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감미로운 설원의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으로 남겨보려는 마음에 자꾸만 아쉬움이 깃든다.

이게 어디 글과 그림으로 남긴다고 해서 눈발을 시원스레 내려준 하늘의 감동을, 눈이 덮인 대지의 감동을 감히 적절하게 표현했다 할 수 있으랴!

 

심경헌心耕軒에서 하룻밤 유숙하고 아침 일찍 장수를 출발하여 무주리조트에 이르렀다.

장수에서 무주리조트 가는 길도 만만치 않은 거리인지라 거의 한시간을 소비한 것 같다.

오늘의 산행지는 무주 리조트 곤돌라를 이용하여 설천봉(1,500m)에 도착해서,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1,614m)를 오른 후에 하산 기에 백련사를 참배하고 나서

그 유명한 무주구천동 계곡의 설경을 감상하면서 덕유산야영장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잡았다.

산행 거리가 만만치 않아 서둘러 온다고 왔으나 벌써 열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의 조바심은 어쩔 수가 없었으나 곤돌라를 타려고 넘치는 인파 앞에서는 그저 유구무언일 밖에......

 

 

 

 

- 무주에 도착하여 바라본 설원의 무주리조트 스키장 -

 

- 무주 리조트는 곤돌라와 리프트 카, 두 종류를 동시에 운행하고 있었다 -

 

- 가족으로 보이는 스키어들의 모습이 멋지다 -

 

- 남녀노소가 모두 어우러지는 스키어들의 모습은 또다른 매니어의 경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

 

- 설국에서의 스키 활강은 매력적임에 틀림 없겠다 -

 

- 곤돌라 편도(8,000원)를 끊고 대기줄로 들어 선다 -

 

- 스키어들의 약동하는 모습에서 활력있는 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

 

- 오전이라 그런지 쉽게 곤돌라를 탈 수 있었는데, 정상까지는 10여분 정도 소요되었다 -

 

- 설천봉에는 스키어와 등산객들로 초만원이었다 -

 

- 향적봉 오르는 길 왼편으로는 리프트 카 도착장이 있다 -

 

- 곤돌라를 이용해 쉽게 오르는 등로인지라 향적봉 진입로는 줄을 서야할 정도다 -

 

- 1,500미터의 고산지대에 있는 암릉은 죄다 꽁꽁 얼어 붙었다 -

 

- 눈보라가 몰아쳐서 얼굴까지 바라클라바로 칭칭 동여싼 모습으로 이곳의 한기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

 

- 상고대를 찍는 진사님 -

 

- 구상나무의 새잎 -

 

- 그렇게 한참을 오르막길과 씨름한다 -

 

- 생을 마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주목들도 곳곳에 보인다 -

 

- 드디어 향적봉이 보였다(설천봉에서 500미터 거리이며 약 20분 걸린다) -

 

- 덕유산 정상 향적봉(1,614m 인증사진) -

 

-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른다 -

 

- 이곳의 시야가 맑은 날은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 노고단이 모두 보이는 조망을 자랑하는데 너무나 아쉽다 -

 

 - 이런 모습이 나와야하는데 눈보라치는 오늘의 날씨가 안타깝다 -

 

 -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운해 위에 떠있는 모습 -

 

 - 줌업한 사진으로 보면 오른쪽 맨끝의 노고단 송신탑까지 구별할 수 있다 -

 

- 위 아래의 몇몇 사진들은 너무나 안타까워 인터넷에서 빌려온 사진들이다(덕유산 종주 코스 능선들) -

 

- 덕유산 종주는 남덕유산까지를 말한다 -

 

 

 

- 설천하우스 앞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 향적봉 - 백련사 - 무주구천동 33계곡 - 탐방지원센터까지가 오늘의 산행 경로다 -

 

- 덕유산 상고대의 아름다움이 수정처럼 반짝이고 있는 모습 -

 

- 향적봉에서 100m 하산지점에 있는 향적봉대피소에 이르렀다 -

 

- 등산객들이 너무나 많아 혼자 요리하는 쓸쓸함을 보이기 싫어, 그냥 하산하면서 행동식을 대신하기로 마음 먹었다 -

 

- 내가 사랑하는 구상나무는 해발 천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만 자생한다니, 그 고고함이 남다르다 -

 

- 상고대의 설원을 원없이 만끽했던 하루였다 -

 

- 하산길 중간지점에 있던 용틀임? 나무-

 

- 산죽은 얼어붙을지언정 푸르름을 포기하지 않는다 -

 

- 하산 중간지점부터 조금씩 경계가 트이기 시작하였다 -

 

- 산죽의 절개를 본 받으련다 -

 

- 백련사 상단의 안부에 있는 미완의 금강계단을 발견하고서 어떤 계시가 찾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바로 금강계단 미완의 흔적들이다(원 둘레의 패인 곳은 방위를 나타낸다고)  -

 

- 삼국시절 부처진신사리를 봉안하려던 흔적이리라 -

 

 

 

 

 

  백련사 계단(戒壇)

                                                                   

                                                                              - 가로 14m, 세로 3m

 


덕유산 향적봉 백련사 뒷산에 있는 금강계단(金剛戒壇)으로서, 불교의 계(戒)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백련사 삼성각 옆 등산로를 따라 약 20여분 오르면 능선의 정상 부분에 바닥이 화강암으로 깔려 있는 이 계단은

바닥을 고르게 정비하여 자연석을 깔고 그 중앙에 대석(臺石)을 설치한 후

높이 2m, 둘레 3.92m의 석종형의 무문탑(無紋塔)을 세운 형태이다.
무문탑 꼭대기에는 25개의 여의주문(如意珠紋) 보륜과 높이 40㎝의 유두형 보주를 조각하였다.


무문탑의 서쪽 지점에는 동서남북의 홈이 조각되어 있는 높이 42cm, 지름 110cm,  안테지름 82cm의 원형좌대 1기가 있다.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전해온다.


이 계단(戒壇)에는 누구든지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주변을

일곱 번 이상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출처 : 인터넷 上

 

 

 

 

 

-  작년 2월에 순례하였던 금강산 건봉사의 적멸보궁과 부처님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 -

 

- 작년 7월에 순례하였던 양산 통도사 적멸보궁과 금강계단 -

 

- 어느 석공과 스님의 염원이 이곳에 베어 들었을까 -

 

 

 

 

 

덕유산 백련사 계단(德裕山 白蓮寺 戒壇)

 

 

                                                        -  전북기념물 제42호.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금강계단(金剛戒壇)

 

 

불사리(佛舍利)를 모시고 수계의식(授戒儀式)을 집행하는 장소로써,

수계자를 중앙에 앉히고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둘러 앉아 계법을 전수하는 곳이다.

금강은 금속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뜻으로 불교의 경론 속에서 굳고 단단한 것을 비유 한다.

대당서역구법고승전 (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 나란타 사원의 금강계단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계단은 인도에서 유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 때 도선(道宣)이 정업사(淨業寺)에 이 계단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불사리를 얻어 귀국한 후,

통도사를 창건하면서 이 계단을 만든 것이 최초이다.

그는 계단을 세워 가사(袈裟)와 사리를 모시고 대중을 교화하였다.

당시의 계단 형태는 인도·중국의 것과 유사했으리라 추정되나,

현재 남아 있는 통도사의 계단은 고려·조선 시대에 여러 차례 중수(重修)된 것으로서

우리나라 전통적 양식으로 정착한 형태이다.

 

★양산 영축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국보 제290호

★달성 비슬산 용연사 석조계단 보물 제 539호

★김제 모악산 금산사 방등계단 보물 제26호

★무주 덕유산 백련사 계단 전북기념물 제42호

★완주 안심사 계단 보물 제1434호 운주면 완창리 26 안심사 等

 

 

 

 

 

- 귀부의 여의주문(如意珠紋) 문양이 바로 금강계단을 상징하는 모습이다(일반 승려들의 부도는 보주만 있고 이와같은 주문의 보륜이 없는 구조라고 알고 있다) -

 

 

 

 

 

필자는 몇년에 걸쳐서 13대 적멸보궁과 부처님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 또는 금강계단을 순례해 왔었다.

이제 그 기록을 이번 동안거 기간에 [성지순례]라는 제하의 인문서적으로 엮을 요량에 있는데,

그 완성의 초입에 결미를 장식할 수 있는 미완의 금강계단이 바로 오늘 현시하셨으니 이 아니 기쁘겠는가!

 

이는 필자에게 책을 완성하라는 뜻의 계시로서 다가 왔으니까 말이다.

삼국이 불교문화를 꽃 피우던 시절에 조국의 산하 곳곳에 안치하였던 겨레의 보물들을 이제는 정리하는 싯점에 이르렀으니,

불국토의 현신이신가? 이렇듯 결미의 계단을 대하게 되다니... 정말 할 말을 잊는다.

 

필자는 무심코 그 계단을 뜨겁게 오래도록 포옹하였다.

모두가 불가침의 영역에서 고고하게 필자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으면서 건방 떨며 계시더니 이 미완의 석물에서는 모든 것을 허용하였으니

이 아니 좋을쏘랴?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모두 부처인데 어디서 부처를 구하며,

밤과 낮이 모두 진리일진대, 어찌하여 밝은 낮만 옳다 하시는가.

분별의 잣대로 들여다 보면 모든 상이 진상과 허상으로 나누이지만

무심의 잣대로 들여다 보면 모두가 그냥 상像일 뿐 아니겠는가!

그러니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이르시지 아니하였는가! 말이다.

 

 

 

 

무심한 계단

 

 

계단戒壇이시어,

그저 돌덩어리의

지위로라도 좋으니

가르침을 주시소서

 

돌은 돌로

바람은 바람으로

 

되어지는대로

사는 이치를

주시소서

 

너도 남이고

나도 남이니

모두가 나라는

궤변을 허하소서

 

제행무상이면

행은 무엇이고

상은 무엇인가요?

 

되어지는대로

모든 행과 상들이

살아 나가라

말씀 하시소서

 

 

                       - 小 鄕

 

 

 

 

 

- 미완의 금강계단을 뒤로하고 백련사로 내려 선다 -

 

- 설국의 기도터는 장엄함으로 다가 왔다 -

 

- 삼성각은 새로 중창한 모습을 보여 준다 -

 

 

- 서너번은 참배했을 백련사다 -

 

 

 

 

백련사白蓮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이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중 그곳에서 흰 연꽃이 솟아 나와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뒤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쳤다.

1900년(광무 4)에 당시 무주부사였던 이하섭이 중수하였고 6·25전쟁 때 불타버린 뒤 1961년에 대웅전을 건립하였으며, 1968년에 요사를 건립하였다.

그 무렵 백련암으로 불리던 절 이름을 백련사로 바꾸고 30여 년 동안 중창 불사에 힘썼다.

주요 건물로 대웅전, 원통전, 선수당, 문향헌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매월당 부도(梅月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43),

백련사 계단(전북지방기념물 42), 정관당 부도(靜觀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102)가 있다.

 

[출처] 백련사 | 두산백과

 

 

 

 

- 설국의 핵심에 자리잡은 백련사 -

 

- 한석봉의 글씨를 현판으로 내세운 대웅전 -

 

- 대웅전의 삼불께서는 너무나도 온화하신 모습으로 필자를 어서 오라 반기시었다 -

 

- 거꾸로 내려가는 산행길이 되었다 -

 

- 백련사 입구 왼쪽이 오수자굴 방향 등산로이다 -

 

- 오수자굴 2.2Km -

 

- 드디어 구천동의 맑은 샘물들이 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

 

- 부도전도 눈밭에 가득 안긴 모습을 보여 준다 -

 

- 흐르는 물은 고드름이 되고 샘이 되었다 -

 

- 설국은 바로 여기를 이름이다 -

 

- 맑은 물의 모습은 청청한 선비의 기상으로 계시었다 -

 

 

- 그 속에 안긴 조약돌의 각오는 바로 선비의 마음, 아닐런지 -

 

- 장엄한 무주구천동의 33경이 겨울 속에서 또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며 필자를 어루만져 주었다 -

 

- 물 마시러 내려오던 동물의 발자국들이 너무나 외로워 보였다 (그들도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임은 진 배 없겠기에) -

 

- 물은 계시라 하면 계시고 가시라 하면 가신다 -

 

- 설국의 산수화를 보는 마음이 선경에 취한 듯, 꿈결에 취한 듯, 한결 시원한 마음으로 다가 오신다 -

 

- 인월암을 그냥 지나쳐서 아쉬웠다 -

 

 

 

 

 

 

- 인월암印月庵 -

 

인월암은 설천면 삼공리 소재 덕유산 칠봉 기슭에 위치한 태고종 사찰이다.

이 사찰은 구천동 33경중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구천동계곡 16경인 인월담에서 칠봉 약수터로 약 400m를 오르면 송림(松林)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 때 인월화상이 절을 짓고 수도하던 곳이라 하여 인월담이라 부르는 전설이 전해오는 옛 터에다,

월곡(月谷) 이창섭(李昌燮)스님이 1960년대 초반, 3간 규모의 인법당을 중창했던 것을 후에 요사로 세웠으며,

아들 혜공 스님이 대를 이어 계속하고 있다.

구천동 계곡의 아름다운 산수가 소문나기 시작하면서 전국의 불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영험하다는 칠봉약수가 알려지게 되면서

신병을 치유하겠다는 신도들이 기도처로 삼아왔다.

이에 월곡 스님은 법당에다. 약사여래보살을 본존불로 모시고 중생을 제도하다가 1986년 열반에 들었다.

그 후 그의 아들 혜공(慧空) 이규호(李圭浩)스님이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사찰을 운영하고 있다.

 

 

 

 

 

- 거의 모든 33경을 섭렵하고 나오는데, 설경에 취해 그만 마음이 온통 하얄뿐이다 -

 

- 이제 거의 등로의 끝무렵으로 다가 온다 -

 

- 측백나무 조림군이 사열병을 보는 듯 도열해 있다 -

 

- 삼공리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였다(거의 12km의 산행길이다) -

 

- 다시 택시를 불러 타고(만원) 차량회수를 위해 무주리조트로 갔다 -

 

- 차량을 끌고 다시 귀환한 곳은 덕유산국립공원야영장이다 -

 

- 입장료 일인당 2천원, 주차비 5천원, 전기사용료는 2천원씩 받는단다 -

 

- 전기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

 

- 그렇게 덕유의 설원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마음이 또한 온통 하얄 뿐이다 -

 

  - 하얗고 하야니 모든 것이 하얬으면 좋겠구나 -

 

- 그렇게 또 다시 세쨋날의 아침을 맞이했다 -

 

- 굿모닝 스노우 칸츄리(雪國)! -

 

   - 캠핑카도 보인다 -

 

- 화장실과 실내 개수대까지 청결하고 편리해 보였던 덕유산야영장이다 -

 

- 이제는 하얀 마음을 이내 거두고 떠나야만 한다 -

 

- 무주리조트에서 설천봉으로 오르면서 곤돌라에 남겼던 필자의 모습 -

 

- 총 15Km 산행이 이번 덕유산의 등정행로다 -

 

- 아듀! 덕유산! -

 

 

 

 

덕유산야영장을 빠져 나오는 마음이 참으로 착잡하다.

이번 3일 동안의 장수, 무주 여행의 기억은 온통 설국의 느낌 밖에는 남는게 없다.

그렇게 맑고 고우면서도 수정처럼 투명한 마음을 간직한 체 살아 나갈 수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여러가지 상념에 사로 잡히며 안국사와 적상산 사고를 둘러보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났으나,

힘들게 눈길을 드라이브하면서 올랐던 적상산은 그 입구에서 그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출입통제로 마지막 여정을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어제 저녁의 숙영지에서 너무나 추워 난방하랴, 요리하랴 가스 난로와 버너를 잠자기 전까지 작동시켰더니

그만 가스 중독에 몰린 것 같아 온 몸이 파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가스불이 잘 안붙고 꺼지기를 자주하더니 그래서 아마 산소 부족 사태를 초래한 모양이다.

고산 설원에서의 야영에도 살아남았던 이 몸뚱이가 그만 어젯밤의 부주의로 인해, 그리고 장거리 산행과 모진 추위로 인해 녹초가 되고 만 모양이다.

무주IC에 진입해서 귀로에 오른 내내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머리는 납덩이처럼 너무나 무거워졌다.

 

그러나 마음만은......

오랜 겨울방학 숙제를 한꺼번에 마친 악동처럼 그렇게 상쾌하였다.

 

육신이야 버리고 갈 것인데,

조금 아프면 어떠랴.

너는 이겨낼 때까지 이겨내면서 나의 마음을 잘 보좌해 주거라.

언젠가 너! 사대육신은 우주에 바람처럼 뿔뿔히 흝어질테고......

마음은?

 

마음만은 정녕 자유의지로 저 푸른 하늘과 저 하얀 구름 속에서 전혀 걸림이 없이 노닐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 또 모른다!

어느 날, 내 육신에 깃들었던 원소와 내 마음의 원소가 서로 우주의 밤하늘에서 반갑게 조우할지 말이다

그런 일은 필연코 있을 것이다.

내의 몸과 마음이 서로 어디 보통 인연이었던가 말이다.

그러니 필연코 조우하게 되겠지.

그때의 감회는 과연 어떨까......

 

우리가 밝혀내고 규명했다는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의 모든 세계는 고작 7% 정도!라고 이론물리학은 말하고 있다.

나머지 23%는 파악 조차 안된 어두운 물질(Darkness Matter)이라 한다.

그리고 나머지 70%는 전혀 성분을 알 수 없는 블랙홀의 파생물이며,

그렇게 우주는 지금도 블랙홀 이래의 팽창을 멈추지 않고 거듭하면서 새로운 물질 또한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다 하니,

이 광대무변한 우주 앞에서 우리가 무어라 우리의 삶을 노래할 수 있겠으며,

우리의 정의가 바로 우주의 진리라고 강하게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만년살이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같은 백년살이가 얼마나 가소로울까.

우리가 내렸던 진리라는 면면은 백년살이의 사고들이 세대를 거치면서 차츰 확립되어 왔을진데,

만년살이의 인연들이 거듭되며 이룩했던 그 장쾌한 진리 앞에 섰을 때 과연 우리의 모든 진리가 감히 빛을 발휘할 수나 있을까?

 

수백광년 떨어진 곳에 사는 억년살이의 눈으로 볼 때에 그러면 만년살이의 진리는 과연 통할 것인가.

그러니 하루살이가 억년살이 무서운 줄 모르고 무식하게 달려 드는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그래서 무식했던 육조 혜능 또한  그렇게 우주의 철리를 단박에 깨쳤던 것이리라.

 

하나였던 사대 육신이 소멸하면서 흝어져 나가 일억一億의 우주세계로 귀의하니,

정녕, 우주의 정법正法 또한 너무나 삼엄할 정도로 질서를 지키고 있구나......

 

 

 

 

귀법歸法

 

 

억법이 하나로 돌아 갔으니

일법이 억으로 돌아 옴이다

어디에 돌아갈 숫자 있는가

목마른 부처만 법을 구할뿐

 

억법귀일 億法歸一

일법귀억 一法歸億

하처귀수 何處歸數

갈불구법 渴佛求法

 

 

                     - 小 鄕

 

 

 

 

 

- 2013년 1월 29일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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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鄕 權大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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