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순례기

봄의 길목을 섬진강에서 관조하다 - [자연에서 즐기는 소피 무터 축제]

梅君子 2013. 2. 3. 23:20

 

 

 

 

 

봄의 길목을 섬진강에서 관조하다 - [자연에서 즐기는 소피 무터 축제]

 

 

 

 

일 시 : 2013년 1월 30일 ~ 31일

 

장 소 : 용골산 장구목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1-1

 

 

 

 

덕유산을 다녀온 이후로 설국에 고요히 갇힌 백설과도 같이 마음이 잠잠해져 있다가 보름쯤 지나니까 또 병이 도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필자가 작업하고 있는 환경이 사방 팔방으로 산과 계곡에 둘러 쌓인 숲속이다 보니까, 한 보름쯤은 칩거해도 참을만 하나 그 시효가 완성되면 또다시 병이 도져 갑갑증을 해소하러 너른 대천세계를 자꾸만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궁리를 해 보는 것이 새로운 메뉴의 개발이다. 덕유산은 이미 보았으니 다음에는 설악산을 가볼까나 하는 생각을 해 보다가도 지금 설악은 폭설에 덮여서 등산로가 럿셀도 되지 않은 상황이라 통제 구간도 많다고 하니 그 마음을 잠재우기로 한다.

 

그리고 생각해 내는 것이 태백산 순례행인데, 이도 지금은 눈축제 기간이라 모두들 선행자의 엉덩이만 보고서 천제단에 올랐다가, 다시 엉덩이만 보고서 하산한다는 답사기가 올라 오는 것을 보니 그 방귀(?) 냄새를 어찌 참을까 싶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 생각해 낸 것이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전혀 때묻지 않은 섬진강의 원류인 적성강을 이번에 꼭 답사해 보자는 차선책이었다. 생각이 떠오르니 이를 구체화할 준비는 바로 시작이 된다. 박배낭이야 항상 준비가 되어서 비상대기 중이니 등짐을 따로 매고갈 준비를 할 필요는 없겠고 장소만 구체적으로 검토해서 확정하면 끝인 것이다. 지난 여름에는 섬진강의 중류 정도인 압록에서 3일을 보내다가 왔으니, 이번에는 상류를 찾아가 섬진강 원류의 청정함을 꼭 즐기고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속세에 어울리는 일도 싫고 홀로라도 좋으니 자연과만 벗하면서 살고 싶다.

 

맞아!

이번에는 하늘이 점지해 주신 섬진강 상류에 들어가 밤의 별빛을 관조하면서 자연이 주는 스프링 소나타를 실컷 관음하다가 오는 거야!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다. 누구는 박배낭 매고 산에 들라하면 세팅부터 철수까지의 과정이 지겨워 손사레를 치며 사양한다고 하는데, 누구는 그 일이 좋아서 생각만 해 두어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고 있으니 천상 산꾼임에는 틀림이 없다.

 

자, 출발하자꾸나!

 

 

 

 

- 순창군 적성면의 산들은 치솟은 산세는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깊은 골격미를 자랑하고 있다 -

 

- 그 촌부의 골격 사이로 맑고 섬세한 섬진강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

 

‘순창은 호남의 승지로 산수의 아름다움과 논밭의 풍요로움, 금어의 넉넉함이 있어’(在淳昌郡 淳湖南之勝地 有山水之樂 土田之饒 禽魚之富) 서거정(1422~1488)은 순창을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칭했다. 또 풍수학자인 전 서울대 최창조 교수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장이 순창”이라고 말했다. 순창 땅에서 발원하는 물은 한 방울의 물도 다른 고을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한다. 순창 땅을 돌고 돌아 유등면 외이리 앞으로 모여 섬진강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물 따라 바람 따라 순창의 생기(生氣)는 굽이굽이 돌아 흘러 연평균 13도의 기온을 보인다. 안개일수 77일의 기후조건으로 발효식품인 순창고추장을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었다. 할머니 솜씨 그대로 고추장, 간장, 된장 등 대한민국의 장맛을 이어가는 것은 순창만이 갖는 최적의 조건이다. 이런 지역적 특성이 복분자, 블루베리, 더덕, 매실, 밤 등 특화상품과 특화사업으로 주민소득을 증대시키고 전국 최고 장수고을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

 

장군목은 순창군의 수호신 역할을 해주고 있다.

 

 

또한 순창군은 예로부터 옥천골이라 불릴 정도로 맑은 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 1982년 군립공원으로 최초로 지정된 강천산이 있다. 6.25 한국전쟁의 뼈아픔을 간직한 회문산도 이 곳이다. 천혜의 수석공원이라 불리는 장군목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가 농사를 짓고 있는 향가리까지 80리 섬진강 물길따라 볼거리가 풍부하다.

농촌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깨끗한 환경, 전통문화가 살아숨쉬고 시골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고장, 순창군은 도청인 전주와 60.5㎞, 광주와는 40㎞ 거리에 있으며 생활권은 광주와 정읍이고 행정권은 전주와 남원이다. 호남정맥 줄기의 산간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군 임야가 67%를 차지한다.

 

[출처] 인터넷 上

 

 

 

 

- 물과 수석이 함께 아름다운 섬진강! -

 

- 강건너 고목나무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 너무나 고요롭다 -

 

- 한참 섬진강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서야 오늘의 야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섬진강마실휴양숙박시설단지 -

 

 

 

 

인터넷을 서치해 보다가 낙점해 둔 곳이 바로 지난 늦가을에 보았던 이곳 [섬진강마실휴양숙박시설단지]였다. 이름이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것은 그 이름 속에 욕심이 가득 담겨있기 때문이라는 첫 인상이 든다. 휴양숙박시설단지가 무엔가. 그냥 [마실리조트]라고 하던지 [마실야영장!] 하면 얼마나 심플하고 외우기 좋은가. 모든 것을 함축하려다가 되레 모든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 필자는 처음에 순창군에서 한다는 행정이 다 그렇지 뭐... 하다가 관계자와 통화를 해 보고 나서야 이곳이 사설야양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책임자의 인품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겨울 동안에는 주말만 운영을 하고 주중에는 문을 닫고 있어요. 화장실과 탕비실 온수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그렇답니다."

 

"그래도 이왕 마음 먹고 오늘 하루 꼭 그곳에서 유숙하고 싶은데, 좀 배려를 해 주시지요? 전기는 자체 파워뱅크로 해결하고 온수도 자체 해결할 테니까요."

 

"사실 주중에는 아무도 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저도 지금 나가야 하는데, 저녁에나 들어 올려고 예정 중에 있거든요. 그렇지만 꼭 야영을 하시고 싶다면 시설을 오픈해 둘 터이니 오시도록 하세요."

 

이런 것이 배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해름녘에 뵌 주인장은 인품이 넉넉한 중년신사였고, 오토 캠핑도 벌써 십이삼년 전부터 해 왔다는 관록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단 한 명의 캠퍼를 위해서 시설을 오픈해 둔 그 배려에 대해서 지금도 고마운 마음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곳 시설 또한 얼마나 배려가 되어 있을 것인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원인이 될 것이다.

 

사실 시설은 훌륭했다.

화장실은 타일 부터 고급의 품격을 풍겼고, 청결한 개수대하며 온수가 콸콸 쏟아지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팬션용으로 지어진 벽돌식 슬라브 건물도 현대적이어서 다음에 꼭 한번 묵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가족 모임이나 동호회 친목 모임에서 회포를 풀 수 있는 시설로서 그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딱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곳에 오고 싶은 분들을 위하여 마실리조트?의 모든 정보를 아래에다 오픈해 둔다. 겨울 비수기지만 오로지 한사람의 캠퍼를 위한 배려로 시설을 오픈해 주셨던 넉넉한 주인장의 마음을 고맙게 여기기 때문에 일류 홍보맨을 자처하고서 그렇게 해 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실휴향숙박시설


마실휴양숙박시설

명칭

  • 순창군 섬진강 마실휴양숙박시설단지

위치

  • 전북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1-1번지

시설

  • 펜션 3동(49㎡형 2동, 61㎡형 1동)
    49㎡형 : 방2/거실1, 61㎡형 : 방2/거실1
  • 야영장 18개(16㎡형 6개, 24㎡형 12개)
  • 관리·휴게동 1동, 화장실 및 취사장 1동

예약문의

  • 전화 653-9688

숙박건물 이용요금

숙박건물 이용요금
면적 기준인원 숙박요금(원)
주중 주말·성수기
49㎡ 8명 80,000 100,000
61㎡ 10명 100,000 120,000

    ※특이사항

  • 추가요금 : 1인 1박당 5,000원
  • 주중 : 일요일~목요일, 주말 : 금·토·공휴일 전(前)일, 성수기 : 7월1일~8월31일
  • 비성수기 주중 연휴기간은 주말·성수기요금 적용
  • 입/퇴실 시간안내
    * 입실시간 [성수기/주말/연휴 : 15:00~22:00, 주중 : 12:00~22:00]
    * 퇴실시간 [성수기/주말/연휴 : 11:00, 주중 : 12:00]

야영장 이용요금(1인 1일 기준)

숙박건물 이용요금
면적 구분 숙박요금(원)
어른 중·고등학생 어린이
16㎡ 주중 1,600 1,200 800
주말·성수기 2,000 1,500 1,000
24㎡ 주중 2,400 2,000 1,600
주말·성수기 3,000 2,500 2,000

    ※특이사항

  • 전기사용료 1일 2,000원(1코드 기준)
  • 주중 : 일요일~목요일, 주말 : 금·토·공휴일 전(前)일, 성수기 : 7월1일~8월31일
  • 비성수기 주중 연휴기간은 주말·성수기요금 적용
  • “어린이”라 함은 5세~13세 또는 초등학생
  • 군인은 중·고등학생요금 적용
  • 입/퇴실 시간안내
    * 입실시간 [성수기/주말/연휴 : 15:00~22:00, 주중 : 12:00~22:00]
    * 퇴실시간 [성수기/주말/연휴 : 11:00, 주중 : 12:00]

 

출처 : http://tour.sunchang.go.kr/index.sko?menuCd=NB02001006000

- 우 하단이 바로 오늘 묵을 마실휴양단지이고 좌상단이 내일 가야할 장구목이다 -

 

- 마실리조트의 주변 풍광은 환상적이었다 -

 

- 깨끗한 개수대에서 바라본 용골산 들머리 -

 

- 현대적인 팬션들도 꼭 묵어 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였다 -

 

- 필자는 이노캠 모드를 지향하기 때문에 오늘은 그렇게 세팅을 해 본다 -

 

- 설치가 간편하면서도 디자인적 미적 요소도 겸비한 이노캠의 세팅 모습 -

 

 

 

 

요즘은 미니멀 모드(Minimal Mode), 솔캠 모드(Solo Camping Mode)라는 말을 자주 쓴다.

미니멀 모드란 화려한 오토 캠핑에 진저리가 난 사람들이 설치가 간편한 필수장비만 선택해서 그것을 초경량화 시켜서 세팅해 보는 야영 스타일을 지칭하는 말이다. 멕시멈(Maximum)으로 대형 천막에 대형 취사 도구들과 난방장비에다가 화려한 군더더기 장비들을 총동원해서 서로 간에 별장을 자랑하는 것 같은 양상으로 내심 뻐기고 으시대던 허세를 배제하고서, 모든 장비를 최소한의 필수 장비로만 구성을 해서 설치와 해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지겨움에서 탈출해 보자는 생각들이 요즘은 지배적으로 팽배해 있는 까닭에 미니멀 모드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솔캠 모드는 혼자 야영을 다니자면 외부의 도움 없이 모든 시설을 홀로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야영장비의 간소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왕이면 간지나는 폼생폼사로 시설을 구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을 필자는 이노캠이라고 새로운 신조어로 만들어 주장하는 것이다, 이노캠은 이노베이션 캠핑의 준 말이다. 이노베이션innovation 캠핑은 실용적인 디자인 요소가 훌륭하게 가미된 기술혁신적技術革新的 캠핑 모드를 지칭하는 필자만의 신조어이다. 이노캠은 미니멀 모드나 솔로 캠핑에서 한 걸음 더 진화하여 기왕이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멋있는 디자인적 요소를 한껏 가미하고서 보다 더 실용적인 장비를 선택적으로 시도해 보자는 것이다. 요즘은 텐트들도 유행이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고급스런 면텐트들로 많이들 갈아 타려고 하는데, 면텐트는 가격이 만만치가 않은 것이 흠이라면 흠일 것이다. 그러나 대형 보다는 경비를 줄여서 중형을, 중형 보다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소형으로 한 체급 더 내려가는 것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이는 이노 캠핑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런데 디자인이 좋은 것은 어김없이 고급스런 외제들로 가격 부담 또한 만만치가 않으니 이는 과소비를 부추기는 결과 밖에는 아니 온다.

그러나 100만원 대의 대형 텐트 보다는 같은 가격 대로 중형 텐트 중에 디자인과 실용적인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모델을 선택한다면, 이는 이노베이션 캠핑에 한걸음 더 가까히 다가 가는 길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실 필자의 캠핑 장비들은 대부분 중하위권의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래 과소비적이지 않으면서도 제일 중요한 디자인적 요소 또한 함께 아우르며 구성해 보려고 고심한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나 있음을 살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이노베이션 캠핑 즉 이노캠의 새로운 출발인 것이다.

 

 

 

 

- 상기 옵티머스 주전자나 콜맨 버너 그리고 옵티머스 버너는 단종되었으나 중고가 많아, 타 장비보다 더 저렴하면서도 디자인은 매우 휼륭한 세팅을 할 수 있다 -

 

 

 

 

커피나 차를 즐기는 찻잔은 비싼 티타늄컵만 고집하지 말고 도자기로 만들어 그 디자인이 훌륭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백자 같은 세트로 갈아타 볼 수만 있다면 이것이 이노캠의 출발인 것이다. 도자기 티 세트는 출정할 때에 타월 한 장으로 둘둘 감싸 보호를 해주면, 사진에서 보이는 2인 다기 세트는 어디든지 가져갈 수 있으며, 보는 맛 또한 빼어 나니 바로 이것이 이노베이션 캠핑의 출발인 것이다.

 

필자는 데크 위에 가볍게 이노캠 구성의 손쉬운 야영장비를 세팅하고서 남은 시간은 자연과 또한 음악과 함께 힐링 모드로 들어 가기로 했다. 오토 캠핑에 비해서 이노캠핑은 설치 시간을 현저하게 줄이면서도 미니멀 모드 보다는 보는 멋 또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다.

 

 

 

 

- 상기 목제 의자 세트도 저렴하면서 디자인적으로 이노베이션을 이룬 감각이 탁월한 제품군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패드로 베토벤 음악을 틀어 본다 -

 

 

 

그렇게 설치를 쉽게 끝내고 오늘의 힐링 주제로 삼은 독일이 낳은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인 안네 소피 무터가 연주하는 곡들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이틀에 걸쳐서 감상하기로 했다. 물론 소피 무터의 방대한 곡들은 이미 PC Fi를 위해서 모두 FLAC(Free Looseless Audio Codec : 무손실 오디오 코덱) File로 미리 변환을 해서 컴퓨터에 저장해 둔 자료가 있기 때문에, 이 파일들을 아이패드에다 옮겨 담으면 끝이다

 

그래 [자연에서 즐기는 소피 무터 축제]가 1박2일로 가능해진 것이다. 2월에서 3월에 이르는 날,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피어나는 이 시기에 어울리는 음악으로서 필자는 소피 무터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스프링을 적극 추천해 본다. 모두들 잘 알고 있는 위대한 악성 베토벤 선생은 자신이 누누히 말했듯이, 자신은 오로지 신의 대필자로서 신의 메시지를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줄 뿐이라고 하였는데, 필자는 그분의 말을 매우 존중한다. 그래서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신성을 느끼면서 혹은 울거나 웃으며 그 아름다운 음향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음악이 소피 무터(Sophie Mutter)가 연주하는 Beethoven, Violin Sonata No.5 일명 '봄Spring' 중에서 제2악장의 부분이다. 이 글을 읽다가 소피 무터가 연주하는 동영상 보기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로 내려 가면 동영상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거론할 독일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인 소피 무터의 이야기는 잠시 뒤로 밀쳐 두고 이 곡을 작곡한 악성樂聖 베토벤의 이야기를 잠시 거론해 보기로 한다.

 

'봄'이라는 부제로 잘 알려진 제5번은 베토벤이 남긴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 제9번(일명 : 크로이체르 소나타)와 함께 세간에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바이올린 소나타라고 할 수 있다. Violin Sonata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서 두 악기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이 연주하는 형식을 말한다.

 

베토벤이 청각을 잃을 무렵에 작곡한 작품이라고 하지만, 이 곡은 희망과 행복감에 충만해 있으면서 또한 풍부한 느낌이 작품에 잘 녹아 있는 매우 감성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전체적인 기법이나 형식은 기존의 소나타 형태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토벤의 소나타 중에서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3번은 대체로 모짜르트의 영향을 받아서 습작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4번과 5번에 이르러서 베토벤은 모짜르트를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 또 제1번~4번 소나타까지는 3악장의 구성이었는데, 제5번에서는 바이올린 소나타로서는 처음으로 4악장의 구성을 사용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후로 7번과 10번 소나타가 4악장 구성으로 작곡되었고 그 외는 3악장 구성이다.)

 

1801년 10월에 '빈(Wien)'의 '모로社(Mollo)'에서 출판되었으며 ‘모리츠 폰 프리스 백작(Moritz von Fries)’에게 헌정되었다. 원래 op.23번에 제4번 소나타와 함께 출판되었던 것이나, 나중에 제4번이 op.23, 제5번이 op.24로 작품번호가 다시 고쳐졌다고 한다. '봄'이라는 부제도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며, 작품에서 나타나는 밝은 뉘앙스와 화사한 분위기를 읽고서는 누군가가 ‘봄’이라는 부제를 붙였다고 전해진다. 더러는 출판사에서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무튼 곡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는 제목으로서 아주 적절했던 것 같다.

 

필자는 베토벤이 귀가 멀어서 작곡했던 말년의 작품들을 근래에 들어 특히 사랑하면서 애청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말년의 현악사중주곡을 특히나 사랑하는데, 이 곡들에는 베토벤의 위대한 사상이 모두 함축되어서 위대한 결미를 장식하고 있는 까닭이 있어서임을 오늘에야 고백해 본다. 암울한 듯 하면서도 밝은 실천적인 생각들이 깊게 함축된 곡들이 바로 베토벤 말년의 음악들이라 할 수 있다. 아래는 베토벤 말년의 음악에 대한 좋은 자료가 있어서 인용해 본다.

 

고고한 말년을 보내던 베토벤은 대작을 만들겠다는 의욕을 야심차게 가지고 있었지만, 러시아에서 돌아온 옛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슈판치히(Ignaz Schuppanzigh, 1776~1830)의 4중주단 결성이 그를 크게 자극했다. 마침 러시아의 갈리친 후작으로부터의 의뢰도 있어서, 그의 창작은 신품(神品)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마지막 5곡의 현악 4중주곡(실내악곡)을 완성하는 데 집중되었다. 이미 13년간이나 4중주곡을 쓰지 않았지만, 만년의 고독한 체념을 토로하는 데는 극도로 치밀한 이 형식이 가장 어울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Op.127(1825)에서 Op.135(1826)에 이르는 5곡의 현악 4중주곡(실내악곡)은 어느 것이나 자유로운 구성과 무심한 유희성을 가진 점에서 공통되어 있다. 작곡가 베토벤이 세상에 줄 수 있는 마지막 정신은 이미 이것으로 끝이 나고 있었다. 1826년 12월 그나이젠도르프(Gneixendorf)에 사는 동생 요한의 집에서 돌아온 베토벤은 복부의 격통과 폐렴을 앓고 있었다. 청년 시대부터의 지병인 장 질환은 고치기 어렵게 악화되어 네 번 수술을 했지만 어느 것이나 효과가 없었으며, 이듬해 1827년 3월 26일 56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쇼트 출판사로부터 마인츠 산 포도주가 도착했을 때 “섭섭하구나, 섭섭해. 너무 늦었어!" 라고 중얼거린 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고 한다.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999&docId=351954&mobile&categoryId=3016

 

 

 

Beethoven String Quartet No. 12 in E flat, Op. 127

베토벤 현악 4중주 12번 내림 마장조 작품 127

Performed by Quartetto Italiano

 

1. Maestoso - Allegro

-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곡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악사중주 Op.127번 1악장은 상기 화살표를 누르면 곡이 흐른다 -

 

 

위대한 베토벤!

필자는 베토벤의 곡을 모두 좋아하지만, 특히 요즘은 임종 직전의 마지막 곡인 현악사중주곡 135번을 자주 듣는다. '섭섭하구나, 섭섭해. 너무 늦었어!'라는 그의 유언은 136번의 새로운 창작에 대한 마지막 욕심이었을 것이다. 한 곡을 더 써서 신의 음성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전달할 수 있겠다는 자심감이 들었는데, 베토벤 선생은 그를 실천할 수 있는 기력까지도 현악사중주곡 135번에 모두 소모시켜 버렸기 때문에 끝내 작곡을 더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필자가 가장 사랑하는 곡은 소피 무터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Op.61 (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in D major, Op.61)번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2악장을 가장 사랑한다는 점을 오늘에서야 비로소 고백해 본다. 오죽하면 마눌님에게 '만일 내가 죽거든 저 2악장을 나의 장송곡으로 삼고서 마지막에 들려 주도록 하시오'라고까지 했겠는가. 악성 베토벤이 남긴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 곡 하나뿐이라고 하는데 차이콥스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현재까지도 전무후무한 최고봉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곡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도전하여 레코딩을 할 정도로 에센샬이 되어 버렸지만, 그중에서도 필자는 예후디 메뉴힌, 데이비드 오이스트라흐, 알프레도 캄폴리의 연주 음반을 즐겨 들으면서 최고로 쳐 주고 있으며, 소피 무터의 여성스런 연주곡은 가히 신기神技에 가까운 영역을 넘나들기에 또한 매우 사랑하며 아끼고 있는 음반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곡중에서도 제2악장을 묘사하고 있는 일반 사전적 의미를 한번 여기에 옮겨 본다.

< 제2악장 라르게토 G장조 4/4박자 - 변주곡 형식의 악장. 아름다운 주제가 먼저 아주 여리게 약음기를 붙인 현악기군만으로 제시된다. 안식에 넘치는 아름다운 선율이다. 곡은 주제와 세 개의 변주로 되어 있는데 제1변주는 클라리넷이 주제를 연주하며, 독주 바이올린이 장식적으로 그 사이를 누빈다. 제2변주는 주제의 멜로디가 파곳으로 연주되며 독주 바이올린이 장식적으로 역시 그 사이를 누빈다. 제3변주는 관현악만의 센 연주로 시작되어 바이올린이 카덴짜풍으로 높고 낮게 춤추듯이 새로운 멜로디를 칸타빌레로써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화려한 변주가 있은 뒤, 지금의 새로운 멜로디로 또 새로이 단장을 하여 화려하게 나와서 이윽고 여려지면서 꺼질 듯이 사라진다. 카덴짜를 거쳐 곧 다음 3악장으로 이어진다.>


이 해설에 대해 필자는 불만을 가진다. 베토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 왜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았던 것일까?

필자는 여기 제2악장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제2악장은 G장조로 이루어져 있다. 즉, 사장조라는 장조곡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장조는 밝음과 기쁨을 노래하는데 알맞으며, 단조곡은 어둠이나 슬픔을 노래하는데 아주 알맞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제2악장을 들어 보면 장엄미사곡은 저리가라할 정도로 신성한 종교의식의 분위기를 넘나 들면서 우리 인생의 슬픔과 비탄을 가장 극명하게 애절하고도 구슬픈 멜로디로써 표현해 내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즉, 베토벤은 장조곡을 가지고서 단조곡 중에서도 최고봉의 슬픈 음악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음악이론에 관해서 깊은 경지를 필자는 잘 모르지만 직감적으로 들어도 이 곡은 틀림 없는 단조풍의 애절한 곡이다. 세상에 그렇게도 생의 슬픔을 은은하게 묘사한 곡은 어디에서도 들어 보지 못했으니, 과연 어떤 레퀴엠이 이를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니 G장조라는 말이 어디 믿어나 지겠는가? G단조라면 몰라도 말이다.

여기에서 베토벤의 위대한 신품神品의 재능이 발견되는 까닭에 필자는 무릅을 꿇고서 그 분의 신적 경지를 칭송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 이 정도로 이론 공부는 그만하고서 다음은 소피 무터의 위대함에 대해서 거론해 보기로 한다.

 

 

 

 

- 베토벤의 음악을 벗삼아 석양 후의 섬진강을 산책하며 소요유를 즐겨 본다 -

 

 

 

 

지금 듣고 있는 곡이 바로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Anne-Sophie Mutter)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봄' 소나타라는 설명은 이미 앞에서 하였다. 소피 무터는 우리나라에도 몇번 다녀갈 정도로 전 세계 연주 여행을 하면서 독일의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그래서 독일 정부는 300년된 이태리산 명품 바이올린을 평생 임대로 소피 무터에게 제공해 주었다. 아마 싯가로는 70억원이 넘는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소피 무터! 그녀는 누구인가?

 

안네 소피 무터(Anne-Sophie Mutter, 1963년생) - 1970년 후반 세계는 젊은 천재의 출현에 깜짝 놀랐다. 상큼한 미모의 소녀가 까다로운 황제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협연하여 악평으로 이름 높은 독일의 음악평론가들까지도 넉아웃을 시켰기 때문이다.
카라얀은 그녀에 대해 단연코 세계 3대 여류 바이올리니스트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바 있다. 그녀는 베를린 필, 빈 필,뉴욕 필 등 세계 3대 교향악단은 물론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들과도 협연하였으며, 카라얀,다니엘 바렌보임, 클라우디오 아바도, 주빈 메타, 볼프강 자발리쉬 등 최정상의 지휘자들과 함께 공연하여 20대가 채 되기도 전에 전세계의 음악가가 우러러보는 명인의 반열에 올라버렸다.
로 안네 소피 무터가 그녀다.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안네 소피 무터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 울고 있는 소피 무터의 느낌이 그대로 스트라디바리우스에 감정 이입 되면서 점점 애절한 선율로 변하고 있는 모습 -

- 그녀는 독일정부가 무상임대해 준 1703년 제작 에밀리아니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세계적 명품 바이올린을 들고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

 

- 그렇게 음악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어느새 밤은 진중하게 깊어만 가고 있었다 -

 

- 자작한 파워 뱅크인데 12볼트 전기장판에 이틀간 따스함을 제공해 줄 수 있으며, 아이패드, 핸드폰 등을 수시로 충전해 줄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장비 -

 

- 고요한 야밤에 아이패드로 소피 무터를 들으면서 평생 사숙했던 법정 스님의 책을 읽는 즐거움 또한 그 어디에 비하랴! -

 

 

 

 

소피 무터는 2008년 4월 24일 여성으로는 최초로 국제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수상했다. 20만 유로의 상금이 주어지는 지멘스 음악상은 음악가들이 가장 욕심내는 상 가운데 하나이다. 무터를 '세계를 위한 선물'이라 칭송한 음악비평가 요아힘 카이저(Joachim Kaiser)가 축사를 맡았다. 안네 소피 무터는 지휘자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 13세의 그녀를 발굴하면서부터 세계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44세의 안네-소피 무터는 그 이후로 30년이 넘게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고 있다. 심사위원들에 따르면 무터는 예술성과 자연스러움, 뛰어난 기교와 감성을 하나로 어우를 수 있는 몇 안되는 음악인이라고 한다.


그녀의 연주 특색은 따뜻하고 깊이있는 음색과 솔직한 감정표현을 열정적으로 연주하는데 있다. 무터는 언제나 열정과 충실한 작품해석 사이에서 예술적 기교를 발휘한다. 무터는 전통적인 대작들 외에도 관객들에게 언제나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인다.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연주자 중에 그녀만큼 동시대 음악에 열정을 쏟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평가였다.


바이올린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는 1963년 6월 29일 독일의 라인펠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5살 때에 피아노를 시작했으나 곧바로 바이올린으로 바꾸었다. 6살 때 Jugend Musiczier에서 처음으로 입상했고 칼 플레쉬(Carl Flesch,1873-1944)의 제자인 호니히베르거(Erna Honigberger)와 스위스의 Winterhur 음악학교 교수인 Aida Stucki로부터 사사받았다.
1976년에 있었던 루체른 페스티발(Lucerne Festival)에서 카라얀은 무터에게 깊은 음악적 애정을 갖게되었고, 1977년 13세의 나이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발(Salzburg Easter Festival)에서 카라얀과 함께 데뷔공연을 가졌다. 그 다음해인 1978년에는 카라얀의 베를린필과 함께 그녀의 첫 레코딩을 했고 그 레코드는 Grand Prix Disque와 Deutsch Schallplatten Preis를 수상했다.


안네 소피 무터의 국제적 경력은 1977년 찰츠부르크 페스티발(Salzburg Whitsun Festival)에서 부터 시작 되었다. 솔리스트 또는 챔버 뮤지션으로서 유럽, 미국, 카나다, 일본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연주회를 가졌다. 그녀는 루토슬라브스키(Witold Lutoslawski,1913-1994), 노르베르트 모레트(Norbert Moret,1921-1998), 크시슈토프 펜데르츠키(Krzysztof Penderecki,1933- ), 볼프강 림(Wolfgang Rihm,1952- )의 작품들을 주 레퍼토리로 연주하였고, 많은 작곡가들은 특별히 그녀를 위한 곡들을 썼다. 뒤티외(Henri Dutilleux,1916- ), 구바이둘리나(Sofia Gubaidulina,1931- ), 그리고 전 남편 앙드레 프레빈(Andre Previn,1929) 등의 작곡가들은 특별히 무터를 위해 곡을 쓰기도 했다.

 

무터는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많은 상을 받았다. 그리고 1985-1986년에는 런던에 있는 왕립음악학교는 그녀를 명예 회원(honorary fellow)으로 지명했다. 1979년에는 그해의 아티스트로 불려졌고 Prestigious Deutscher Schallplattenpreis 를 받았다. 1983에는 옥스포드대학의 모짜르트협회 명예회장이 되었고, 1987년에는 독일공화국의 일등훈장을 받았다. 1996년에는 본에 있는 베토벤협회의 명예회원이 되었다.


카라얀 덕분에 그녀는 베를린 필과 베토벤, 모짜르트, 브라암스, 멘델스존, 브루흐 등의 협주곡을 출반하고 솔로앨범도 녹음하였는데, 세계 최정상의 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의 주요 베스트셀러들중의 하나로서 인기를 얻었다. 그 이면에는 20세기 들어 세계에 내놓을 만한 바이올리니스트를 갖지 못했던 독일 국민들의 소망- 독일인의 손으로 연주되는 베토벤을 위시한 독일 작곡가의 곡을 듣고 싶다는 소망 - 이 강도 높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그녀는 독일정부가 종신토록 대여해준 1703년 제작 에밀리아니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연주에 임하면 완전히 거기에 몰입하며 그 어떤 것도 들어갈 틈을 보여주지 않는 꽉찬 모습은 그녀의 놀랄만한 집중력을 보여준다. 그녀의 유연성과 순발력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나가며,음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표현해 내는 능력의 기초가 되어 완벽한 음악을 바라는 청중들의 기대를 만족시켜 준다.


무터는 세계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 결과, 에이즈 퇴치와 암으로 고생하는 어린이를 위한 자선 콘서트를 많이 가졌다. 그녀는 현재 뮌헨에서 살고 있으며, 음악 후진 양성 외에도 자선연주회 등을 통해 사회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출 처 : http://blog.naver.com/chaos719kr?Redirect=Log&logNo=60051247761

 

 

 

 

- 그렇게 계사년 정월을 송별하는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

 

- 하늘에는 별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면서 음악으로 명상삼매에 든 순례자와 함께 기뻐하고 있었다 -

 

- 필자가 귀중하게 소장하고 있는 이 LP 디스크가 바로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발매된 소피 무터의 14세 때 데뷔작으로서, 베를린 필의 카라얀과 협연하였다 -

 

 

 

14살 소녀, 소피 무터의 당당하고 자존심 강한 입매와 그 다부진 턱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천재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맞다. 카라얀이 당시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니까...... 소피 무터는 천재다!

지금도 LP를 걸어 보면 모짜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14살의 나이에 어찌 그리도 아름답게 해석을 하였는지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그녀가 연주하는 모짜르트 5번도 너무나 명연주다. 필자는 소피 무터의 음반을 그래서 거의 다 컬렉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르게 된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알프레도 캄폴리를 필자는 쳐 주는데, 캄폴리에 대한 컬렉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한번 글로 엮어 보겠다.

생각해 보면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있는 용돈 아껴 가며 사 모으던 음반들이었다. 남들은 그 당시에(1960년대) 손에 만지기 어려운 아매사탕 사먹느라 돈만 쥐면 정신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그 귀한 용돈으로 덜컥덜컥 음반을 사던 필자의 용기는 지금 생각해도 대견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목에 넘기면 사라지던 아매사탕보다 한번 구입해 놓으면 평생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는 음반들이었으니, 중학생이 어찌 그런 생각에 현혹 되었을까. 인연도 대단한 인연! 아닐까?

그런데 지금은 조바심이 난다. 아무도 필자가 사랑했던 음반들을 거들떠도 안 본다는 것을 통찰하게 되었다는 것은 정녕! 아픔이기 때문이다......

 

 

 

 

- 필자의 저술생활을 동무해 주는 청음실의 LP와 CD 음반 컬렉션 (우상단에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더 그루미오와 소피 무터의 사진이 보인다) -

 

- 독서와 음악감상으로 늦은 밤을 보냈으나, 의외로 새벽은 빨리 찾아 왔다 -

 

- 텐트를 열고 나서니 용골산과 섬진강에 새벽안개가 어슴프레 찾아와 계셨다 -

 

- 동쪽 산에 아침 해가 삐쭉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

 

 

 

 

계사년 정월

 

 

 

 

새해 맞이하더니

어언 정월이 흘렀다

 

모두 맘 먹은 일들

후회없이

경영하시는지?

 

회한은 강아지 주고

자신감이여

와라!

 

너나 없이 살지라도

후횔랑 필요 없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나만의 삶은

스스로 경영할 거다

 

 

 

- 小鄕 權大雄

 

 

 

 

 

< Beethoven, Violin Sonata No.5 `Spring` 2nd Mov by Sophie Mutter& Lambert Orkis >

 

 

 

지금 흐르고 있는 느린 곡 '봄'의 제2악장은 특히 슬러라는 바이올린 주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슬러(slur)라는 음악적 용어는 2개 또는 그 이상의 음표 위나 아래에 붙이는 호선을 말한다. 슬러는 레가토와 함께 악곡의 흐름을 구분하는데 사용된다. 즉 2개의 슬러가 이어지는 부분에서 활의 방향을 바꾸거나, 음을 일단 끊고 연주하는 것을 말하는데, 수학적으로 계산된 정박에 가까운 슬러를 연주하는 기법으로는 활의 움직임과 흐름에 선율을 스무스하게 실어내는 슬러의 진정한 표현법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베토벤의 스프링 소나타는 어려운 곡은 아니지만, 이 슬러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는 좀처럼 흉내내기 난해한 테크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베토벤의 스프링 소나타가 불멸의 곡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상기 소피 무터의 연주를 들어 보면 그녀가 얼마나 베토벤의 의도를 잘 해석하고서 마치, 잠자는 아기를 젖 먹이기 위해서 부드럽게 깨우는 방식의 터치감으로서, 또한 잠자는 봄을 조심스레 깨우는 실루엣을 살펴볼 수가 있기 때문에 소피 무터 연주의 위대함이 유독 돋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소피 무터와 명콤비를 이루는 렘버트 오르키스Lambert Orkis는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피아니스트이다. 그래미상을 수상할 정도로 저명한 피아니스트이자 대학교수인 렘버트 오르키스는 1988년도부터 소피 무터의 피아노 반주를 담당하면서 마치 듀엣 연주가들 같은 둘만의 연주 실력은 그 호흡에서 심오하리만치 완벽하게 매치하는 특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튀지 않는 그의 피아노 반주는 무터의 애절한 하소연의 음색을 따뜻하게 감싸 주면서 조화를 이루게 해주기 때문에 명반주자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렘버트 오르키스를 소피 무터 또한 매우 예우해 주면서 둘만의 고유 앙상블을 이루어 내는데 한 점 부족함이 없으니, 이는 바로 신이 내리시는 축복이 아닌가 여겨진다. 연주자와 애청자들 모두에게 내려 주시는 하늘의 동시 축복인 셈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하모니인가! 둘의 사이는 마치 도반의 사이 같이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클래식에 목말라 하는 영혼들에게 단비와 같은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해 주면서 전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마치 꽃을 뿌리고 다니는 천사들 같은 그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인연의 고귀함을 보는 것만 같다.

 

 

 

 

- 상기 그림들을 누르면 세부 확대 사진을 슬라이드로 볼 수 있다 -

 

 

 

 

 

 

 

 

용골산

 

 

 

 

힘찬 골격

감추지 아니하고

장군바위

흩뿌려 놓으니

 

너는 좋겠다

갈증나면 섬진강 마시고

심심하면 푸른 하늘

치어다 보고

 

무심한 갈대 춤추고

숲에선 배부른

산새들 노래하니

 

그만하면 되겠다

옥심없는 이유

알겠다

 

 

 

- 小鄕 權大雄

 

 

 

 

- 모닝 커피 한잔으로 섬진강의 새날을 맞이한다 -

 

- 유유자적 한가롭게 섬진강과 놀던 그 오전의 기억이 지금도 감미롭게 남아 있다 -

 

- 이제 싱그러운 봄은 곧 올 거라고 청둥오리들은 뒤뚱거리면서 말해 주었다 -

 

 

 

 

이만하면 소피 무터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으로 나름 만족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했다고 자체 평가해 본다. 필자가 처음 들었던 레이저 디스크의 소피 무터는 거의 30여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으니, 이제는 그녀와 함께 생을 늙혀간다고 할 수 있겠다. 젊은 소피 무터가 소화해 내던 필자의 애장곡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Op.61번은 그 당시 전율할만한 충격으로 필자에게 다가 왔던 기억이 있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 전라도 최초로 고등학생 오케스트라가 필자의 학교에서 창립되었다. 열정적인 김경양 선생님의 수고로움으로 필자를 위시해서 몇몇 친구들이 바이올린을 그때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그 악기가 왜 그리도 고운 음색을 내는데 있어서 까다로운지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 소년시절에 이미 바이올린을 배웠던 선배들은 연주자의 심성이 삐뚫어져 있으면 당연히 그런 소리가 나온다고 지들끼리 낄낄 거리면서 웃고 있던 모습에서 어찌나 부아가 났던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만큼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제 음색을 내어 주는데 있어서 매우 인색한 악기인 것이다. 그러나 한번 터득하면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 또한 어디에서도 얻을 수가 없는 악기이기도 하다.

 

그런 난해하고도 괴팍스런 악기를 그것도 300년 전의 명품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서 자유자재로 애절하고도 황홀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여류 천재 앞에서 필자는 가히 경악을 금치 못함이 당연하였다. LP 디스크로만 대하던 음의 세계가 레이저와 VTR로 넘어 오면서 외국 연주가들의 실황을 그대로 연주해 주던 그런 신천지의 동영상 속에서 필자는 당시 첨단세상의 위대함을 또한 느끼고 있었다. 지금같이 셀룰라 폰에 영상 카메라가 내장되어 있는 세상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던 시절이었고, Sony사와 National사가 Video Tape Recorder의 세계적인 기술 표준을 놓고서 Betamax냐 VHS냐를 놓고 치열한 사투를 치루던 그런 시기였다.

 

지금 삼성의 갤럭시 핸드폰 안드로이드 체제와 애플사의 아이폰 iOS 체제를 놓고 서로 사활을 건 첨단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그때도 대동소이하게 비슷한 전쟁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삼성의 기술 특허들에 대해서 미국법원이 자꾸 손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서는 참으로 다행이라는 일말의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사족을 달자면, 삼성이라는 세계적 일류 기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우후죽순 격으로 많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교훈 처럼, 핸드폰 시장 부동의 세계 1위라는 자리를 삼성에게 점점 내어주고 있던 핀란드 피르칸마의 노키아는 수천 개의 실험적 벤쳐기업을 그당시 심혈을 기울여 육성하고 있었으며, 그 기업들이 지금은 성장하여 노키아의 쇠퇴로 흔들리던 핀란드의 경제를 다시 부흥시켜 주고 있다 하니, 정부와 삼성家는 이러한 교훈을 잘 새겨 들어야만 할 것이다. 부동의 1위 자리는 수시로 변하는 첨단 기술 시장 앞에서 아무도 장담을 못하기 때문이다. 어디 워크맨으로 전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소니가 지금에 와서 그렇게 밀리게 될지 누가 예측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 소피 무터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함께 싱그러운 자연을 관조하는 이 즐거움을 과연 어디에다 비하랴 -

 

- 용골산도 기뻐하면서 함께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계시는 듯 하다 -

 

- 점심시간 지나도록 내내 음악만 들으며 자연을 관조하다가 이내 철수 준비를 한다 -

 

- 헤스티아 1P 텐트를 따뜻한 햇볕에 내어 놓고 말리는 중이다 -

 

- 이제 이곳 주인장과도 작별을 해야만 한다 -

 

- 1층의 매점에 들러 아쉬운 정으로 소피 무터의 CD를 주인장에게 한 장 선물했다 -

 

- 이제 이곳의 살림을 거두고 길을 떠나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

 

- 산림청 헬기가 용골산 주위를 배회했다 -

 

- 수승한 암벽군이 일품인 용골산 -

 

 

 

 

용골산 [ 龍骨山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 645m이다.

금남정맥의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가 장수군 팔공산(1,151m)에서 원통산(603m)까지 뻗은 뒤 북쪽의 갈담천에 막혀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섬진강 기슭 어치리에 솟은 산이다. 3면이 섬진강에 에워싸여 있고 기암괴석이 많아 경관이 빼어나다. 산행은 어치리 장구목에 있는 요강바위에서 시작하여 장구목재와 삼형제바위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남릉을 지나 북서쪽 도로를 타고 내룡리로 내려선다. 산행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린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 정상에는 바둑판이 새겨진 너럭바위가 있다. 주민들이 신선바둑판이라 부르는 이 바위에는, 옛날 이 산에서 수도하던 스님이 바둑을 두자는 내용의 서신을 호랑이 입에 물려 무량산에 있는 스님에게 보낸 뒤 이 바위에서 만나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정상에 오르면 동남쪽으로 지리산의 제2봉인 반야봉(1,751m)이 아스라히 보이고 북쪽으로는 원통산과 섬진강의 지류인 갈담천 너머 백련산(759m)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무량산(586m)과 섬진강 상류가 내려다보이며, 남서쪽으로는 멀리 강천산(584m)과 내장산국립공원의 연봉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주변 마을에 전하는 바로는, 내룡마을에서 장구목재 못 미처 오른쪽에 옹씨들이 살던 집터가 3백여 호 있었는데 섬진강의 '두무쏘'에서 잉어를 잡아먹고 모두 죽었다고 한다.

 

[출처] 용골산 | 두산백과

 

 

 

 

- 용궐산과 무량산을 함께 오르면 하루 코스가 될 것 같다 -

 

 

 

 

- 장구목을 가기 위해 우회하여 다리를 건너면 만날 수 있는 당산나무 -

 

- 거기서 조금 올라가면 마실야영지에서 강 건너로 보이던 육로정에 이를 수 있다 -

 

- 육로정에서 바라보던 섬진강의 물빛은 너무나 영롱하게 반짝였다 -

 

- 봄은 바로 요 앞에까지 왔노라고 새들은 일러 주신다 -

 

- 그러니 어여 빨리 묵은 마음을 훨훨 털고서 너희들도 비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종용하신다 -

 

- 소피 무터도 그 진실을 알고 있다며 활짝 웃는다 (필자 보다 11살 연하인 그녀이지만 천재이기 때문에 이미 다 깨쳤다) -

 

- 너만 모른다시며, 얼른 가자고 날아 오르시는 부러운 새들의 비상! -

 

- 육로정은 여섯명의 신선들이 앞쪽의 종호암과 육로암을 완상하면서 시를 짓던 지명에서 따 왔다고 한다 -

 

- 육로정을 지나면 이내 장구목에 이를 수 있다 -

 

- 옥정호를 출발한 섬진강이 역ㄷ자를 틀며 휘돌아 들어 오는 길목에 장구목이 자리하고 있다 -

 

 

- 장구목 트레킹 코스 -

 

 

 

장군목유원지 [ 將軍-遊園地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내룡마을에 있는 자연발생유원지이다.

 

섬진강 최상류에 해당하는 장군목유원지는 길이 212.3km의 섬진강 구간 중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소재지에서 약 7km 떨어진 어치리 내룡마을에 있다. 장군목 서북쪽으로는 용골산(645m)이, 남쪽으로는 무량산(586.4m)이 우뚝 서 있는데 장군목이라는 이름은 그곳이 풍수지리상 두 개의 험준한 봉우리가 마주 서 있는 형세 즉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 명당이라 하여 붙여졌으며, 장구목이라 불리기도 한다.

 

장군목유원지에는 맑고 깨끗한 강물 위로 수만 년 동안 거센 물살이 다듬어 놓은 기묘한 바위들이 약 3km에 걸쳐 드러나 있는데 마치 용틀임을 하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그중 강물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요강바위’라는 바위가 아주 유명하다. 바위 가운데가 요강처럼 움푹 파였다 하여 요강바위라 불리는 이 바위는 높이 2m, 폭 3m, 무게 15t에 이른다.

 

한국전쟁 때 빨치산 다섯 명이 토벌대를 피해 요강바위 속에 몸을 숨겨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가 있으며,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이 요강바위에 들어가 지성을 들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는 이 바위는 한때 수억 원을 호가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1993년에는 실제 중장비까지 동원한 도석꾼들에 의해 도난을 당하기도 했으나 도난 후 1년 6개월 만에 마을주민들이 노력으로 되찾아 왔다고 한다.

 

장군목유원지는 주변의 회문산 등지에서 계곡물이 흘러 내려와 늘 수량이 풍부하고, 소와 여울이 많아 물놀이는 물론 낚시를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장군목으로부터 순창군 적성면 일대에 있는 섬진강은 적성강이라고 불린다.


[출처] 장군목유원지 | 두산백과

 

 

 

 

- 국악기인 장구의 좁은 목 같이 휘돌아 흐르는 물길이라 해서 장구목이라 부른다 -

 

- 자세히 보면 물살이 회절하면서 진도의 울돌목 같이 거센 물길을 이룬다 -

 

- 그래 그 거센 물길에 수만년을 시달린 바위들이 이렇게 유선형을 이루게 된 것이리라 -

 

- 추상적인 자연의 예술품이시다 -

 

- 이 바위가 바로 일본으로 밀반출되려다 되돌아온 요강바위시다 -

 

-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들이 이곳에 숨어 들어 목슴을 부지하기도 했단다 -

 

- 참으로 특이한 명품바위이자 순창의 자랑이다. 어찌 값으로 따지겠는가 -

 

 

 

 

 

섬진강 장구목

 

 

 

 

문득

섬진강이 보고 싶어

장구목에 달려 왔다네

 

타프 치고 텐트 치니

매서운 한겨울

서릴랑 피하겠는데

 

새벽안개 고운

섬진강아

 

나는 필요한 게

더는 없는데......

 

너는 무엇이 더 필요해

밤내 흘러 가며

시끄럽게 하는 거니?

 

 

 

- 小鄕 權大雄

 

 

 

- 물결 또한 순수하고 곱지 않은가 -

 

- 현수교 주위를 산책하며 수려한 자연에 취해 본다 -

 

- 오른쪽 길이 마실리조트 가는 길이다 -

 

- 마치 그랜드 캐년의 암벽미를 보는 듯 하다 (실제 보았던 그랜드 캐년이 생각 나서 줌으로 당겨 보았다) -

 

 

 

 

이제 머지 않아 입춘지절이 돌아 오니 기어코 겨울은 물러갈 것이다.

벌써 봄의 입김이 물씬 풍기는 양이, 올 해 같이 심한 한파를 겪기는 정말 오랫만이어서 유독 겨울이 빨리 물러가기를 모두가 바랬던 결과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구정도 남았고 대보름도 아직 멀었으니 쉽게 동장군이 백기를 들지는 않을 게다. 그래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 올 것이다. 가는 젊음 막지 못하듯이, 오는 봄 또한 막지 못하는 것이 우주의 섭리요 계절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질서는 냉혹하리만큼 정확하게 맛물려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상 한파가 왔다고 다들 호들갑을 떨고 있는 오늘이지만 백년을 열시간쯤으로 여기며 바라보는 우주의 눈으로 보자면 이상한파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현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우주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 그저께 화산의 대폭발이 있었고 어저께 빙하기를 겨우 거쳤는데 지구의 열기가 1도 오른다고 해서 어디 그 질서가 꿈쩍이나 하겠는가 말이다.

 

그렇듯 순환의 법리를 모르고서 마치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올 듯이 모두가 떠들고들 있지만, 우주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것은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우주는 지금도 블랙홀 이후로 계속 팽창을 해 나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지구의 온난화가 자체적인 화석연료의 소비로 인해서 비록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우주의 물질 중에서 거의 모두를 차지하는 93%의 물질이 아직 규명이 안되고 베일에 가려져 있으니 과연, 우주라는 존재는 언제 지구상의 내부에서 대지진으로 육지를 가르며, 화산이 분출하여 거침없는 용암이 5대양 6대주를 유린할지 아무도 정확한 예측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지구의 내부에 잠재해 있을지도 모르는 뇌관은 블랙홀 이후의 어떤 파장의 명령에 따라 그 작동이 시작될지 어떨지는 우리가 쉽게 접근하여 계산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인 것이다. 잘난 우리가 겨우 7%의 우주물질만을 규명하였다 한다면, 이는 거의 백지 상태나 다름 없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겠다. 즉, 우주의 나이로 볼 때에 인간의 진화가 이루어졌던 고작 수십만년의 세월은 아주 미미한 촌음으로 밖에는 안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수백만년 전에 일어난 빙하기가 우주의 잣대로 보자면 금방이겠지만 우리의 눈으로 보자면 셈으로 어림잡을 수 없는 머나먼 과거의 일이듯이 미래의 재앙 또한 우리 인류가 모두 가고 난 이후에나 가능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오로지 현재의 자신에만 충실하라는 말씀이 교훈으로 남아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교훈은 직설적으로 참 진리를 매우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진리가 무엇인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가불해서 걱정을 하는 것을 삼가라는 말씀이니 그것이 진리라는 이야기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도 않았고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걱정할 일도 아니고, 오로지 현재라는 명제만을 귀중하게 여기고 촌음을 아끼지 않으면서 현재를 살아 낸다면 자연스레 미래도 밝아질 것은 자명한 일일진대, 사람들은 미래를 미리 가불해다가 거기에 걱정을 보태서 좌불안석 어쩌지 못하면서 현재 자신이 해야할 일을 정작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며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선병질적인 생각은 현재도 우리 곁에서 과거로 지나쳐 가고 있는 세월의 주머니에 선물로 주어 버리고, 오로지 현재라는 명제에 충실한 삶을 촌음을 다투면서 살아내 보자는 말이다.

그리 살면 얼마나 신나고 보람된 삶의 자서전이 엮어질 것인가.

 

 

 

 

- 장구목을 지나 상류로 올라가면 고요히 머무를 수 있는 비박지가 또 있다 -

 

- 바이커 홀로 섬진강 순례를 하고 있는 듯 -

 

- 강변 주위의 아름다운 전원 주택과 육송의 멋드러진 모습 -

 

 

 

 

■순창군 기타 여행정보

 

■주변 볼거리:구림면 금창리 회문산 자락에 터를 잡은 만일사는 ‘고추장 시원지’다. 백제 무왕(673년) 때 건립된 만일사는 무학대사가 만일 동안 불공을 드려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한 절집으로 유명하다. 법당 우측에는 순창고추장 시원지 전시관이 들어섰고 그 옆으로 태조 이성계가 순창의 어느 농가에서 먹었던 장 맛을 잊지 못해 왕이 된 후 진상케 했다는 내용이 적힌 만일사비(萬日寺碑)가 남아 있다.

고추장 민속마을(063-650-5411)은 전통고추장을 제조하는 농가에서 각종 장류와 장아찌 등을 제조, 판매하고 장류체험관(063-650-5432)에서는 고추장 담그기, 농촌체험, 숙박이 가능하다. 이외에 강천산군립공원(적극 추천), 산림박물관, 장류박물관, 추령장승촌, 구암사, 김병로 생가, 향가유원지 등

 

 

 

 

- 떠나기가 아쉬워 섬진강을 사랑했던 선비가 지었다는 구암정을 둘러 보았다 -

 

 

 

 

구암정 (龜岩亭)


순창군 동계면 귀미리 1028번지, 만수탄 위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로, 언제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귀암 양배는 남원 사람으로 일찍부터 학문을 닦아 그 지식이 높았으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어진 사람들이 되려 화 당하는 것을 보고 자연 속에 묻혀 아우 돈(墩)과 함께 세상을 잊고 살았다. 조정에서는 그의 학문과 덕행이 높음을 듣고 사헌부 장령의 벼슬을 내렸으나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았다.

 

지금도 적성강 상류 만수탄에는 형제가 고기를 낚던 바위가 남아 있어 배암·돈암이라 부르거나 합쳐서 형제암이라 부르고 있다.

그가 죽은 뒤에 사림에서는 ‘지계사’를 지어 제사를 모시고 있으며, 후손들은 그의 덕망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귀암정’이라 이름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구암정의 배롱나무 역시 명옥헌 못지 않은 수령을 자랑하고 있어서 꽃 필 때 꼭 다시 한번 찾아 봐야 겠다 -

 

 

 

 

- 장구목과 마실리조트는 1.5Km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다 -

 

- 이틀 간 자연이 선물해 준 스프링 소나타의 향연에 너무나 행복했던 필자 -

 

 

 

 

지구의 종말론에 대해서는 다행스럽게도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100년 주기의 사이클로 우주를 바라보자면 지구 멸망의 시대는 아직도 멀고 먼 미래에나 도래할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일 게다. 지구의 종말이 곧 닥친다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일부 말세론의 자극적인 소형 종교단체의 이야기에 결코 현혹되어서는 아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단으로 몰리는 종교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마약을 우리 사회가 금기시 하는 것은 일부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단점이 우리를 해롭게 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도불교라는 종파가 석가모니 이후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인도에서 사라지고 다시 흰두교가 만연하게된 배경에는, 바로 인도불교의 정통성이 신격神格을 믿고 내세 구원을 바라면서 억지 신앙심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구제하겠다는 소승적인 진리가 함축되면서 지켜져 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그만큼 원시의 근본불교는 순수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물론 대승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고, 다만 석가모니가 설했던 핵심 내용인, <오로지 자신의 섬과 진리의 섬에만 의지하면서 이를 수행의 등불로 삼으라 - 아래 自燈明法燈明 참조>는 요지에서 석가모니 자신은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내 비쳤던 것이며 이를 실천하였던 종교였으니 운영 채산이 안맞아 근본불교가 쇠퇴하게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본다.

 

 

자등명법등명 [自燈明法燈明]

석가가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을 이르는 말. 석가가 노년에 아난다의 청을 받아들여 설한 가르침이다. 석가가 죽림촌(竹林村)에 안거할 때 병에 걸려 심한 고통을 겪자 아난이 마지막 설법을 청하였다. 이에 석가는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라고 설하였다. 이것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 ‘자등명법등명’이다. 원래는 등(燈)이 아니라 섬[島]이었다고 한다. 즉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라고 하였는데 한역하면서 섬을 등불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 가르침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즉 석가 스스로 자신이 지도자임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석가가 만일 자신을 강조하였다면 ‘나는 세상을 구제하는 자이므로 나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 그렇지 않다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라고 설법하였을지도 모른다.

 

[출처] 자등명법등명 | 두산백과

 

 

그러므로 도격道格이 약한 기층민들, 즉 서민들에게는 그게 실망의 감점요인으로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시주만 잘하면 내세 극락에 죽어서 갈 줄 알고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시주라는 명목으로 쌈지돈을 바쳤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란다. 돈으로 극락을 사려는 발상 자체가 진리의 법도에 크게 어긋나는데도 불구하고 종교가 살아 남으려면 이를 적용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데서 종교의 모순은 이미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금으로 내세를 사는 행위를 허용하지 않았던 인도의 근본불교는 그래서 쇠퇴일로를 걸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때의 인도 근본불교야말로 석가모니의 설법에 가장 충실했던 참 가르침의 수행방법이었다고 필자는 해석하고 있다. 그렇게 참 가르침을 이루었던 그분들은 너희들도 필요하면 그렇게 따라와 보라시면서, 종단의 안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체 진리의 법만을 오롯이 남겨 두고서 우리의 곁을 떠나 가 버리셨다. 그 진리의 법은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크게 퇴색되고 말았으니 이를 경계의 지표로 삼아 다시 부흥을 시켜야만 할 것이다

 

그런 순수성이 있었기 때문에 인도불교는 정작 원산지에서 멸망되고 말았고,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와 전파했던 중국불교와 티벳불교, 그리고 동남아의 소승불교만이 지금 살아 남아 세계인의 불교로서 그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맹점이 있다. 자립이 가능한 종교단체의 이면에는 필히 내세복락의 약속이 깃들어 있어야만 하고, 불행을 가져다 주는 귀신이 존재해 주면서 서민들을 공포감에 휩쌓이게 해야만 자신의 자립이 가능하게 된다는 그 이중성의 논리가 바로 그 맹점이란 말이다. 거기에 종교의 맹신이 병적으로 존재하게 되며, 거기에 자기 배신의 딜레마가 숨어 있게 된다. 그러므로 현대불교는 원시불교가 비록 쇠퇴의 길을 예감하면서도 청정볍계를 계속해서 지켜 나갔던 기왕의 사실을 존중하면서, 또한 크게 유념해야할 경계의 책으로 삼아야 됨을 필자는 주장해 본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그렇게 종단의 자립성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진리에만 의지하겠다는 움직임의 [진리결사眞理結社]가 필요한 싯점이 바로 오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즉, 근본불교의 원형을 되새김질해 보면서 혹시나 타락과 변형이라는 탈을 쓰고서 그 진리의 이름 안에 거짓되게 숨어있는 가짜 법리가 혹여 없는 것인지 두 눈 부릅 뜨고서 살펴 보자는 이야기인 것이다.

 

요즘 절들의 살림살이는 나라의 부국과 정비례하면서 너무나도 화려 일색으로만 치닫고 있다. 화려한 살림살이라는 외형에 치우치지 말고 자비의 실천이라는 내형의 빈민구제를 한번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비록 인도불교가 역사의 장에서 사라졌다고는 하나 그 진리만큼은 고결하게 항상 인류의 가슴에 살아 남아 있듯이 그런 대동세상이 도래하기를 한번 꿈꾸어 보자는 말이다. 이는 비단 불교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해당되는 사안이라고 말한다면 필자의 지나친 억측이 될 것인가. 분명히 일부 광신도들은 그러면 무얼 먹고 자립하며 사느냐고 필자를 힐난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는 일어서서 욕먹을 각오로 이런 세상의 도래를 외쳐야만 한다.

 

아이고, 쓰다 보니 아무도 읽지 않을 소리를 필자도 미리 가불해다 여기에 풀어 헤치고 있으니, 딱하기는 우매한 그들이나 필자나 가불해서 쓰는 양상이 모두가 똑 같구나.

딱하고 딱할진저!

미래를 가불해서 전전긍긍 고뇌하고 아파하며 살고 있는 당신이여!

그 외상값을 미래에 어찌 다 갚으려고 그렇게도 열심히 가불들을 해 대시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 가불을 중지하고서 현재로 다시 돌아와 열심히 한번 살아 보자꾸나. 그러면 미래의 가불 빚은 금방 탕감이 될 것이다. 장담한다.

오로지 현재만을 중시하고서 오로지 현재만을 행복한 세계로 만들 줄 아는 긍정적 노력파인 당신은, 필경 미래 세계에서도 행복한 섬에 머무르고 있을 고귀한 존재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현재의 매일매일이 행복한데, 어찌 미래의 매일매일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안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고 말겠다.ㅎ

 

이 모두가 한마음 달리 먹으면 되는 쉬운 일이니...... 어서 실천에 옮기자꾸나.

그렇지 않은가?

 

 

 

 

 

- 2013년 2월 3일 완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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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鄕 權大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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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 돋움체-필자 글(녹색), 궁서체-인용 글(검은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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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ring Sonata 2nd Mo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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