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순례기

단이와 풍이와 별리하던 날의 소묘

梅君子 2013. 11. 5. 12:26

 

 

 

 

 

단이와 풍이와 별리하던 날의 소묘

 

 

 

 

일 시 : 2013년 11월  4일

 

장 소 :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양사와 천진암 일원

 

 

 

 

가을이 숨가쁘게 흘러가고 있다.

남해바다 완도의 상황봉에서 첫가을을 맞이하며 보냈던 야영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불갑산의 꽃무릇이 손짓하더니, 회문산을 지나 북산 신선대의 억새밭에서 보낸 하룻밤은 매우 감미로웠다. 그리고 깊은 가을로 들어가던 강천산의 단풍에서는 새삼 청량하고 신선한 가을을 느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그것도 잠시......

어느덧 늦가을로 접어드는 요즘의 산하는 핏빛 일색의 성숙함을 노래하고 있어서 새삼 조바심을 나게 해준다.

 

 

 

 

- 백양사의 쌍계루에는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

 

 

 

너무나 바쁜 나날들......

그것은 가을철 단이와 풍이를 별리하려는 내마음의 조급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제고 피고지는 자연의 그 명쾌한 순리 앞에서 너무 조급할 까닭도 정말 없는데...... 요즘은 왜 이리 조바심을 피우며 서두르는지 도통 그 까닭을 모르겠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면, 새삼 산다는 것이, 자연을 바라본다는 것이 별리의 연속인 것만 같아서 마음이 숙연해 지고 있음을 결코 누를 수가 없다.

 

2013년의 가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고,

그래서 모나리자님과 함께 단이와 풍이를 별리하고 말 것 같은 조바심 때문에 서두르고 서두르며 불현듯 장성 백양사의 단풍을 뵈러 길을 떠나 온 것이다.

 

 

 

 

- 상아빛의 백암산 단애가 너무도 신비롭다 -

 

- 애기단풍은 백양사 곳곳에서 찬란함을 뽐내고 있었다 -

 

- 해마다 초봄이면 찾아와서 친견했던 고불매古佛梅도, 목하 이쁜 옷으로 단장 중이시었다 -

 

 

 

 

장성 백양사 고불매 [ 長城白羊寺古佛梅 ]

 

2007년 10월 8일 천연기념물 제486호로 지정되었다. 고불총림이라 불리는 백제시대의 고찰 백양사 우화루(雨花樓) 곁에 서 있는 홍매나무이다. 백제 무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백양사는 원래 현재의 위치에서 북쪽으로 100m 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백양사의 스님들은 1700년 경부터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어 왔다고 한다.

 

1863년 대홍수가 나서 절을 현재의 자리로 이건할 때, 옛 백양사 앞뜰에 있던 홍매와 백매를 한 그루씩 옮겨 심었는데 백매는 죽어 버리고 홍매만 남았다. 1947년 부처님의 원래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백양사 고불총림(古佛)을 결성하면서 고불총림의 기품을 닮았다 하여 이 홍매를 '고불매'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불(古佛)'이란 '인간 본래의 면목'을 뜻한다고 한다.

 

수령은 350년 정도이며, 매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담홍색 꽃을 피운다. 밑둥에서부터 세 줄기로 갈라져 있는 이 홍매나무는 고목의 기품이 있고 꽃 색깔이 아름다우며 향기가 은은하고 모양도 깔끔하여 호남5매(湖南五梅) 중 하나로 꼽힌다. 유구한 역사가 있으며 주변의 경관이 빼어나, 예로부터 정진도량으로 이름 높은 백양사의 홍매는 그 역사성과 함께 학술적인 가치가 큰 나무이다.

 

출처: 네이버

 

 

 

 

- 백학봉의 기운을 듬뿍 받고 있는 대웅전 -

 

- 인자하신 성현의 모습을 결코 벗어나지 않는 고매하신 백양사 부처님 -

 

 

 

 

백양사 [ 白羊寺 ]

 

처음에는 백암사라고 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며 40여 개의 사찰을 관할한다. 631년(무왕 32) 승려 여환(如幻)이 창건하고, 고려시대인 1034년(덕종 3) 중연(中延)이 중창한 후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하였다. 1574년(선조 7) 환양(喚羊)이 백양사라 이름하였다. 당시 환양선사가 절에 머물면서 염불을 하자 흰 양들이 몰려오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이를 보고 사찰이름을 백양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중건을 거쳤다.

 

사찰의 주요 건물로는 환양이 세웠다는 극락전(極樂殿:지방유형문화재 32)이 가장 오래되었고,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43)은 1917년 만암(曼庵)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백양사 중건 때 지은 것으로, 석가모니불 ·보살입상 ·16나한상(羅漢像)이 봉안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건립한 사천왕문(四天王門:지방유형문화재 44)과 1896년경에 세운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이 밖에 백양사 재건에 힘쓴 소요(逍遙)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소요대사 부도(浮屠)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안치되어 있는 9층탑이 있다. 백양사에서는 불교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 대웅전의 뒷뜨락에 가을이 너무도 깊게 걸리었다 -

 

- 대웅전 후원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진신사리 팔정도탑 -

 

 

 

 

[석존사상]

 

수자타의 우유죽으로 기운을 차린 고타마 싯다르타가 깊은 명상에 들어 새벽녘 샛별이 반짝거릴 적에 드디어 모든 미혹의 번뇌를 일순간에 다 끊어버릴 무상보리- '더 이상은 위없는 올바른 깨우침-의 정각(正覺, abhisambodhi)을 얻게 되어 부처님이 되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바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다. 그리하여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진리의 말씀을 전하신다.  이를 '초전법륜'이라 하며, 그 전하신 내용은 바로 연기설과 사성제설 등이다. 이로써 불교는 시작되었다.

 

여기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의 핵심 사상과 불교의 근본 정신 및 특징을 살펴본다.

 

[공(空)]

 

생 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다. (不生亦不滅)
영원한 것도 없고 단절된 것도 없다. (不常亦不斷)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不一亦不異)
오는 것도 없고 나가는 것도 없다. (不來亦不出)
 

[中論] 卷1

 

결국 연기성이라는 것은 존재에 있어서 서로간의 관계성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상의성(相依性)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은 곧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의 마음속에 이미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 내지 깨달음에 대한 강렬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마저도 하나의 연기성이기 때문에 '이것이다'하는 실체로 드러내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공(空)이기 때문이다. 제법(諸法)은 연기의 성품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공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기의 공성(空性)은 연기설의 근본정신인 중도(中道)와 이를 깨우치는 중관(中觀)에 있다. 바로 이러한 연기와 공의 관계를 용수는 팔부중도(八不中道)로 나타내고 있다.

 

공(空)은 자칫 '공허한 것',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상태'를 말하는 듯하여 불교의 근본 정신을 허무주의로 이해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불교의 공(空)은 모든 존재에 실체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공(空)’의 사상은 원시불교에도 있었지만, 특히 《반야경(般若經)》에서 강조된 이후 대승불교의 근간이 되었고, ‘색즉시공(色卽是空)’ 등의 표현으로 널리 알려졌다. 불교에서 모든 존재는 갖가지 조건에 의해 생기(生起)하는 것이지 영원불변한 실체성은 없으며, 인간 존재에 대해서도 ‘오온(五蘊)’의 어느 하나에도 실체적인 자아(自我)는 없다고 하는 '인공(人空)'과, 외적인 모든 존재 영역에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고 하는 '법공(法空)'으로 대별하여 가르친다. 또한 ‘공’은 ‘유(有)’와 대립하는 ‘무(無)’와는 다르다. 존재라는 것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동적(動的)인 모습 또는 단순한 관념적 이해가 아니라, 유와 무를 초월한 ‘중도(中道)’의 실천에 의해 직접 체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기(緣起)]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此無故彼無)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 (此滅故彼滅)
 

[雜阿含] 卷13

 

'이것으로 생하면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너와 나와 만남도 바로 깊은 인연의 까닭이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는 것인 만큼 자타가 불이(不二)함을 깨달아 머무름이 없는 자비를 실천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연기설이다. '연기(緣起)'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인연으로 인하여 생겨난다'는 뜻이다.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사성제와 팔정도는 석가모니가 인도의 녹야원에서 최초로 행한 설법이다.

사성제란 곧 욕심이 없으면 고통이 사라지고 올바른 수행생활로 열반과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치는 불교 핵심의 진리로서 여러 불교교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내용으로 '모든 것은 다 고통'이라는 고(苦)성제, 그 고통은 바로 '탐욕과 진노와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집(集)성제, 그리고 번뇌와 무명을 모두 끊어 버린 '절대평화, 절대자유의  해탈'을 그린 멸(滅)성제, 그 멸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여덟가지의 올바른 수행생활'을 설명하고 있는 도(道)성제이다.

도성제는 팔정도로 설명된다. 즉, 해탈과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실천 수행의 길은 '여덟갈래의 길'이란 것이다. 어느 길로 가던 그 길을 똑바로 가면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8가지 성스러운 길’이라는 뜻으로 팔성도라고도 한다.


그 첫째가 불법의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바르게 인식하는 정견(正見)이며, 둘째는 올바르게 사유하고 그에 따른 실천을 말하는 정사(正思) 그리고 정어(正語, 진실된 말), 정업(正業, 부정한 행위를 삼가는 것), 정명(正命, 올바른 생활방식으로 의식주를 바르게 하는 것), 정정진(正精進, 바른 마음가짐으로 노력하는 것), 정념(正念, 실체와 사고· 감정의 움직임에 대하여 깨어 있는 것)이며, 마지막이 바른 선정으로 심신을 조용히 갖고 무상무아(無常無我)를 깨닫는 정정(正定)이다.

 

[삼법인(三法印)]

 

이 세상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여 변하지 않는것 없어라.
'나'라는 절대적인 실재 없고, 영원한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것.
'내 것이라' 집착하고, '영원하리라'는 망상에 우리 삶은 고통일세.

 

삼법인은 불교의 중심사상으로 일체 존재의 세 가지 특성 -무상(無常), 무아(無我), 고(苦)-을 말하고 있다. 곧, '모든 것이 덧없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따라서 '절대 영원한 자아의 본체란 있을 수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하리라 집착하면 '모든 것이 다 고통이라'는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진리를 말한다. 영원한 것도 없고 내 것 또한 없다는 사실을 분명 깨달으면 바로 '고요하고 절대 자유의 세계인 열반적정(涅槃寂靜)'에 이를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불교의 중심사상이다. 때론 일체개고의 진리 대신에 열반적정을 더하여 삼법인설이라고도 하며, 모두 말하여 사법인설이라고도 한다.

 

[불교 정신의 특징]

 

다른 여러 종교와 비교하여 불교가 지니는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신(神)을 내세우지 않는다. 불타가 후에 이상화(理想化)되고 확대되어 절대(絶對) ·무한(無限) 및 그 밖의 성격이 부여되고, 각성과 구제의 근거가 되고 있으나 창조자 ·정복자와 같은 자세는 취하지 않는다.

 

‘지혜(智慧)’와 ‘자비(慈悲)’로 대표된다.

자비는 무한이며 무상(無償)의 애정이라 할 수 있어, 증오(憎惡)나 원한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일반적으로 광신(狂信)을 배척하고 관용(寬容)인 동시에 일체의 평등을 관철하고자 한다. 지혜의 내용은 여러 가지로 발전하는데, 일체를 종(縱)으로 절단하는 시간적 원리인 ‘무상(無常)’과, 일체를 횡(橫)으로 연결하는 공간적 원리인 ‘연기(緣起)’가 중심에 있어, 이것은 후에 ‘공(空)’으로 표현된다.

 

현실을 직시(直視)하는 경향이 강하다.

모든 일에 집착과 구애를 갖지 않는 실천만이 강조되고 있다. 조용하고 편안하며 흔들리지 않는 각성(覺性:解脫)을 이상의 경지(境地)로 삼아 이를 ‘열반(涅槃)’이라 한다. 그 교의(敎義)는 석가의 정각(正覺)에 기초를 둔다. 그러나 8만 4000의 법문(法門)이라 일컫듯이 오랜 역사 동안에 교의의 내용은 여러 형태로 갈라져 매우 복잡한 다양성을 띠게 되었다. 부처님도 본래는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가리켰으나 그의 입적(入寂) 후 불신(佛身)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 2신(身)·3신 등에 대한 논의와 과거불 ·미래불, 또는 타방세계(他方世界)의 불, 보살(菩薩) 등의 설이 나와 다신교적으로 되었다. 

 

불교를 다음과 같이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기독교와 비교하기도 한다.

서양 세계관의 중심에 있는 기독교는 창조에서 종말로 이어지는 직선적 세계관이라면, 불교는 육도윤회로 대표되며 시작과 끝이 없는 순환론적 세계관으로 구원의 가능성을 항시 열어두고 있다. 또한 기독교는 오직 예수에 의해서만 구원이 가능한 '타력(他力)종교'라면, 불교는 자기 자신의 깨우침에서 구원이라는 해탈을 얻을 수 있는 '자력(自力)종교'이다.

 

출처: http://cafe.naver.com/5hang6gi/130

 

 

 

 

- 잎을 모두 벗어버린 감나무는, 결실 그 자체만 매달고서 많은 것을 암시하게 해 준다 -

 

- 애기단풍의 정열적인 화염을 보아라 -

 

- 그 화염에 불이 붙은 이들의 심연 속에는 과연 무엇이 가득 타고 있을까 -

 

= 세속의 모든 증오를 불태워 버리자는 염원을 간직하자꾸나 -

 

- 세속의 모든 앙금을 날려 보내자는 소망만을 간직하자꾸나 -

 

- 그런 마음만 한가득 안고서 살아 가시기를 축원 드리나이다 -

 

- 홍시와 애기단풍의 대비 속에서 세상진리를 한 수 배운다 -

 

- 그 불타오름은 바로 우리 마음 속에서 끝없이 소망하던 그 염원! 아니던가! -

 

- 산하를 노래함에 있어서 한 점 망설임 없이 깨끗하기만 하면 되리라! -

 

- 그 깨끗한 마음으로 자연과 동화되기만 하면 되리라 -

 

- 그대! 그 마음, 바로 그 평상심만을 오늘은 한 수 배우고 하산하시기를 -

 

- 은행잎의 노란 색감 앞에서 다만 할 말을 잃을 뿐이다 -

 

 

그대는 나에

풍경이 되고,

나는

그대의 풍경이 되어......

 

 

 

 

- 그렇게 우리 서로 풍경이 되자꾸나 -

 

- 그런 깨달음으로 날아오르는 낙엽의 비상이시어! -

 

- 그렇게 천진암에도 가을이 깊이 내려 앉았다 -

 

- 이 불타는 화염의 세계가 바로 그 화엄의 세계 아닐런지 -

 

- 온 산하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

 

- 우리 모두 조금 밑지면서 약간 모자란 듯이 살자 -

 

- 아시겠는가? 홍국이시어! -

 

- 백암선원이 가을에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

 

- 천진암의 고요는 가히 최상급이라 칭할만 하리라 -

 

- 그곳에 저가 사랑하는 부처님이 곱게 좌정하고 계시었다 -

 

 

 


천진암 [ 天眞庵 ]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암산 백양사(白羊寺)의 산내암자로, 비구니 수도도량이자 지장기도 참회도량이다. 백양사 쌍계루(雙溪樓)에서 산길로 약 500m 정도 올라간 지점, 촛대봉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1350년(고려 충정왕 2) 각진국사(覺眞國師) 복구(復丘 1270~1355)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90여 명의 비구니들이 참선정진했던 도량이었다. 한국전쟁으로 불에 탄 후 정공스님이 암자터에 천막을 치고 수도하면서 인법당과 삼성각을 건립하였다. 1971년 정공스님이 입적한 후부터 중창불사를 진행하여 법당·요사·삼성각 등을 중수하였다.

 

법당은 정면 3칸·측면 3칸의 팔작지붕집으로, 내부에 삼존상(아미타불상·관음보살상·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으며, 1991년 조성한 아미타후불탱·천수관음탱·지장탱·제석천룡탱 등의 불화가 있다. 삼성각은 정면 3칸·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으로, 내부에 1991년 조성한 칠성탱·독성탱·산신탱이 있다. 그밖에 ‘ㄴ’자 형태의 요사 2동과 1992년 세운 ‘정공스님공적비’가 있다.

 

출처: 네이버

 

 

 

 

 

- 예불하는 중에 모나리자님이 잡은 빛내림 -

 

- 이 노랑 색감을 빛내기 위해서, 그 타는 8월의 폭염도 견디었다오 -

 

- 그리고 이제 결실이 맺혀 더는 원이 없게 되었다오 -

 

- 500년도 더 되었다는 탱자나무도 곱게 물드시었다 -

 

- 단이와 풍이야! 이제 찬란한 완성을 노래하거라 -

 

- 완성의 끝에 너의 성숙함은 또한 깨달음으로 이어지리라 -

 

- 그 진리를 알기에 푸르름은 환희의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거라오 -

 

- 상흔 가득한 고로쇠 표피도 그 비상을 기억하고 있다우 -

 

- 그러니 숲 속에 가득한 그 철리를 깨닫고서 천천히 내려가도록 하시우 -

 

- 마치 아시는 듯, 모르시는 듯...... 염화시중의 미소만 띠우시는구랴 -

 

- 그렇게 피안으로 나서는 다리가 놓여 있으니 -

 

- 피안으로 나서는 자! 속세에서도 결코 물들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리라 -

 

- 홍록紅綠의 대비가 너무나 맑은 감명을 안겨 주시기에 -

 

- 이 홍록紅綠을 보는 자! 깨달음을 거저 얻으리로다 -

 

- 숲에는 무성한 낙엽들이 적멸의 도道를 노래하는 듯 하다 -

 

- 깨닫지 못하는 자! 혹여 계실까봐 백학봉도 걱정이 가득하시다 -

 

- 그러니 오늘 그대, 이 애기단풍 한 잎만 가져 가도록 하시오 -

 

- 가을을 가슴에 담으려는 자! 그대도 참으로 행운아가 될 것이오 -

 

- 백암산의 쌍계루는 그 진리를 가르쳐 주고 계셨다 -

 

 

 


총림 [ 叢林 ]


승려들의 참선 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 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 교육기관인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이라 이름한다.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등 국내에 5개의 총림이 있다.

한편 승려들의 참선 수행 전문도량인 선원은 원래 의미가, 규모가 큰 총림으로 지정된 사찰 내부나 선방을 가지고 있는 사찰 내에 소속된 전각으로 스님들이 참선을 위주로 수행을 하는 건물들을 말한다. 좀 더 넓은 의미로는 스님들이 참선 수행을 주로 하는 참선 전문도량을 통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최근에는 도시에서 불교의 포교를 목적으로 하는 도심 포교당이나 각 지역의 중소 규모 사찰 중 참선을 중심으로 하는 곳에서 선원이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고불총림 [ 古佛叢林 ]

 

선원, 선림, 승당, 전문도량 등 다수의 승려대중이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칭하여 총림이라고 한다. 그리고 총림이 되기 위해서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을 모두 갖춰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이렇게 5대 총림이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는 1947년에 만암 큰스님께서 고불총림을 개창하신 것이 효시가 되었다.


 

 

 

- 한국의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백암산의 가을은 정녕, 이곳 쌍계루에서 완성되는 듯 싶다 -

 

- 포토존으로 이름난 쌍계루와 백암산 -

 

 

 

 

쌍계루 [雙溪樓]

 

백양사 가는 길, 갈참나무와 단풍나무가 연이은 숲길을 걷다 보면 절보다 물가 정자가 먼저 눈길을 끌고 끝내는 발길마저 잡아당긴다. 쌍계루(雙溪樓)이다. 언제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1370년(공민왕 19)에 청수대사가 정자를 중수하고 목은 이색에게 기문을 부탁하면서 스승과 제자로 전한 것이 5대였다고 말하였다. 그 때로부터 이미 상당히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서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색은 정자에 쌍계루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문을 쓰면서 ‘시내가 합류하는 곳에 누각이 있어 왼쪽 물에 걸터앉아 오른쪽 물을 굽어보고 있으니, 누각의 그림자와 물빛이 서로 위아래로 비치어 참으로 좋은 경치이다’고 극찬하였다. 쌍계루는 오래 전부터 절경으로 이름 높다. 실제로 밖에서 정자를 보아도 절경이요 정자에 올라서도 절경이다. 백학봉 봉우리가 정자 뒤쪽에도 있고 정자 앞 연못에도 있으니 달이라도 휘엉청 올라오면 이태백이라도 만날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쌍계루의 백미는 애기단풍이다. 정자가 형형색색 단풍들과 어우러질 때 연못 안에는 또 하나의 가을이 펼쳐진다.

 

출처: 네이버

 

 

 

 

- 물빛도 감히 가을의 깊은 추색秋色을 거역하지 못하리라 -

 

- 그리고 여인네의 가슴에도 그 추색은 깊이깊이 담겨졌으리라 -

 

- 백암산이 주시던 추색의 선물을 오늘은 기억하리라 -

 

- 선녀의 날개인 양, 태양빛으로 춤추는 저 추색을 보아라 -

 

- 그 추색을 거두고서 이제는 떠나 가리라 -

 

- 노랑색감의 풍이도 역시 기억하리라 -

 

- 그렇게 모두 가을걷이를 끝냈으니 이제는 돌아가자꾸나 -

 

- 불곰의 저 털잔등을 다만 기억하리라 -

 

- 그리고 릴케의 시에 나오는 가을빛으로 채색을 하리라 -

 

- 작년에는 이곳 가인야영장에서 이박삼일을 보냈었다 -

 

 

 


백양사 가인야영장

 

애기단풍으로 유명한 백양사 입구에 있다. 내장산은 조선팔경의 하나로 불리며 ‘호남의 금강’이란 칭송을 받아 왔다. 단풍 하면 ‘내장산’일 만큼 가을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내장산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으로 규모는 작지만 관리가 잘 돼 있다. 특히, 등산객과 차량의 왕래가 잦은 길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있어 소음이 적다. 가인야영장은 차량을 포함해 텐트 70여 동 수용 규모로 야영장 전체에 잔디밭이 깔려 있어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공간을 제공하며 무더위도 식혀 준다. 취사장이나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연중 개방돼 있어 사계절 캠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가인오토캠핑장을 찾는 즐거움은 우선 백양사 산책에 있다. 또한, 야영장을 들머리로 하여 백학봉을 거쳐 상왕봉까지 다녀오는 산행은 3시간 걸린다.
이곳에는 불가에서 말하는 깨달음에이르기 위한 화두의 하나인 ‘이뭣고’ 탑이 있는 백양사, 울창한 숲 사이로 우뚝 솟은 학바위 등이 있으며, 장성호관광지나 또 가까운 곳에 우리나라 인공조림지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축령산과 영화촬영지로 소문난 금곡마을, 홍길동 생가, 전주 한옥마을 등 오가는 길에 볼거리도 풍성해 알찬 가족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또 이웃한 고창군에는 고창온천을 비롯해 고창읍성, 고인돌 공원 등이 자리한다.

 

내장산국립공원은 북동 지역의 내장산지구와 남서부의 백암지구로 나뉜다. 가인야영장은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암산(741.2m)이 정면으로 솟은 백암지구에 있다.


백양사가 있어 백양사지구로도 불리는데 ‘봄 백양, 가을 내장’이라 불릴 만큼 단풍 명소로 꼽히며, 봄에는 지천으로 널린 꽃들과 함께비자나무가 신록을 이뤄 독특한 풍광을 연출한다.

 

[Notice]
주차요금과 문화재 관람료, 캠핑요금을 다 내야 한다. 단풍철과 벚꽃이 필때는 붐비는 인파로 캠핑장까지 진입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 캠핑사이트 구획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캠퍼가 많이 몰릴 경우 무질서해질 수 있다. 대신, 캠퍼가 적으면 여유롭게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캠핑장 가운데는 그늘이 부족하고, 화장실이 캠핑장 오른쪽에만 있어 반대편에서 사용하는 데 불편이 따른다.

 

[베스트 사이트]
캠핑장 오른쪽 구석. 화장실과 취사장이 가깝다. 액티비티 백암산 트레킹, 장성호 낚시

 

[먹을거리]
백양사는 산채정식으로 유명하다. 산채를 사서 직접 해먹을 수도 있고, 한끼쯤은 식당에서 산채정식을 사먹는 것도 괜찮다. 상가에서 파는 동동주도 좋다.

 

출처: 네이버

 

 

 

 

- 그때는 백암산에도 오르고, 저 백학봉에서도 호연지기를 길렀다 -

 

- 문득 생각해 보면, 어제의 내와 오늘의 내가 구별이 안된다 -

 

- 저 물빛의 단이와 물밖의 풍이는 서로 다른가, 한 몸인가? -

 

- 한 몸이라고 웃으시는구랴 -

 

- 그렇다오, 모두가 한 뿌리라오 -

 

- 그 진리만을 가득 안고서 이제 떠나 갈거라오 -

 

 

 

 

 

애기단풍

 

 

가을이 깊게

내려 앉은 날

 

애기단풍

곱게 물드시니

 

탄성으로 칭송하던

연인들만 황홀하다

 

그 연인들 보면서

애기단풍 배시시~

 

열정은, 불타오름이라고

다만 웃으신다

 

 

             - 權 小 鄕

 

 

 

 

- 빛되어 날으소서! -

 

 

 

 

누가 있어 이 찬란한 가을을 폄하하리오?

자연 앞에서... 이 숭고한 대자연 앞에서 경망되이 자연을 빗대는 자, 그 누가 있으리오?

하룻내내 백암산 주변을 맴돌면서, 정말정말 빙빙 돌 것 같은 취함으로 인해 발걸음이 마냥 어지럽기만 하다.

해마다 일년을 기다렸던 단이와 풍이와의 만남은 왜 이리도 환희심으로 가득차오르게 해주는 걸까?

 

마치 수녀원 교육을 마치고 길을 떠나는 애기수녀들 같은 행렬이라서?

마치 승가대학을 나서는 애기비구니들 행렬 같애서?

 

그 이유를 내는 모른다.

단지 졸업장을 손에 들고서 그 영혼은 승천하는 듯 비상을 하고......

잎은 대지의 자양분이 되어서 땅으로 내리시는...... 그 숭고하기만 하신 산화 앞에서 다만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우수수...... 불어오는 바람에, 불쑥 몸을 내던지는 저 단이와 풍이의 거침없는 별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순례행은 큰 깨달음보다도 더 깊은 의미를 간직한 저 추색秋色을 얻었으니 되었으리라.

 

자족自足함은 저가 원하는대로 항상 실망을 주지 않고서, 깊고 깊은 그리고 커다랗고 커다란 행복을 우리에게 소리소문도 없이 선사해 주시리라.

그러므로...... 그로서 족하기만 하면 되었으리라!

 

 

 

 

   

- 2013년 11월  5일 완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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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鄕 權大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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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To Heart / Ernesto Co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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