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다 - 경북 고운사 순례기
[ Pilgrimage ]
길을 묻다 - 경북 고운사 순례기
일 시 : 2015년 1월 22일(목)
단양팔경의 비경에 젖어 이틀밤을 지내고 귀로에 오르면서 25교구 본사 순례를 마감짓기 위한 행진을 계속했다.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는 경북 의성의 고운사! 송이버섯 산지로 유명한 고운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16교구 본사로서 60여곳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는 대사찰이다.
새로 짓고 있는 한옥군의 위용이 빼어 나다
절의 입구인 일주문에 이르렀다
의상이 창건하고, 지리산 신선 최치원이 중창했단다
고운사 [孤雲寺]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415(구계리 116)
681년(신문왕 1) 신라시대 고승인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이름을 고운사(高雲寺)라고 하였는데, 그후 최치원(崔致遠)이 여지(如智)·여사(如事) 두 승려와 함께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羽化樓)를 짓고 고운사(孤雲寺)로 개칭하였다. 헌강왕 때에 도선(道詵)이 약사여래불과 석탑을 건립하였다.
고려시대인 948년(정종 3) 고려의 운주조통(雲住照通)이 사찰을 중창하였고, 1018년(현종 9)에 천우(天祐)가 다시 중창하였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1695년(숙종 21)에 행옥(幸玉)과 태운(泰運)이 중수하였다. 그후 1835년(헌종 1)에 불탄 것을 만송(晩松)·호암(虎巖)·수열(守悅) 등이 재건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이며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 등지의 사찰을 관할하고 있다. 사찰내 약사전과 석가여래좌상이 보물급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운사 [孤雲寺] (두산백과)
천왕문
언제나 봐도 위엄스럽다
고불전
오래된 석불의 친근미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고운사 [孤雲寺]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116
681년(신문왕 1)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고운사(高雲寺)라 하였다. 그 후 최치원(崔致遠)이 승려 여지(如智)·여사(如事)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하고 이를 기념하여 최치원의 자(字)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헌강왕 때는 도선(道詵)이 약사여래석불과 석탑을 안치하였고, 948년 운주(雲住)가 중창하였다.
1018년(현종 9) 천우(天祐)가 대웅전·약사전·극락전·적묵당(寂默堂)·설선당(說禪堂)·동별실(東別室)·서별실(西別室)·관음전·금당(金堂)·백련당(白蓮堂)·회운당(會雲堂)·청풍당(淸風堂)·문수전(文殊殿)·양로당(養老堂)·백련암(白蓮庵) 등을 중창하였다. 극락전에 봉안한 관음상은 천해(天海)가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불상을 송도 대흥산(大興山)에서 찾아내어 고운사로 옮겨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1482년(성종 13) 석가여래불상을 안동 갈라산(葛羅山) 낙타사(駱駝寺)에서 옮겨 와 대웅전에 봉안하였으며, 1646년(인조 24) 소영(昭影)의 사리탑을 건립하였다. 1668년 극성(克成)·승묵(勝默)·덕종(德宗) 등이 가운루를 중수하였고, 처순(處淳)이 천왕문(天王門)을, 설행(雪行)이 봉황문을 신축하였다.
1670년(현종 11) 숭해(崇海)·묘선(妙善)·성준(性峻)·인준(印峻) 등이 명부전을 신축하고 시왕상(十王像)을 조성하였으며, 종헌(宗憲)과 설휘(雪輝)는 영각(影閣)을 짓고 영정을 만들어서 봉안하였다. 1681년(숙종 7) 천왕문을 중수하였고, 1683년 관헌(灌憲)·인잠(印岑)·선초(善初)가 팔상전(八相殿)을 신축하였으며, 1686년 4월 명부전을 중창하였다.
1695년 도청(道淸)과 선조(禪照)가 극락전에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상을 봉안하여 이전의 관음상과 함께 삼존불상을 구비하였다. 행옥(幸玉)은 설선당을, 태운(泰運)은 적묵당을 중건하였고, 선특(禪特)과 성담(性談)은 동별실을, 성관(性觀)은 서별실을 중수하였다. 또, 태눌(泰訥)은 청풍당을 중건하였고, 승하(勝下)는 응향각(凝香閣)을, 의율(義律)과 의잠(義岑)은 백련당을 중수하였다.
1724년(영조 즉위년) 법존(法存)·지훈(智勳) 등이 운수암(雲水庵)을 창건하였고, 1729년 신유한(申維翰)이 사적비를 세웠다. 1744년 어첩봉안각(御帖奉安閣)을 건립하였으며, 1797년 의암(義巖)이 백련암을 중창하였다. 1803년(순조 3) 4월 적묵당과 서별실이 화재로 불타 없어지자 1804년 2월 문찰(文察)이 중건하였고, 1812년 의암이 운수암을 중건하였다.
1835년(헌종 1) 2월 백련당·금당·관음전·군포고(軍布庫)·직사고(直舍庫)·영전 등이 화재로 모두 불타 없어지자, 나라에서 홍종호(洪鍾浩)에게 명하여 만송(晩松)·호암(虎巖)·수열(守悅) 등과 함께 대웅전과 금당을 중건하게 하였다. 같은 해 12월 운수암이 불타 없어지자 1838년 함홍(涵弘)이 중건하였고, 1868년 눌암(訥庵) 등이 만성제(晩惺齊)를, 해송(海松)이 우의당(禹儀堂)을 건립하였다.
1899년 포운(抱雲)·혜은(惠隱) 등이 가운루·우화루·동별실·적묵당·연지암(蓮池庵)·천왕문을 중수하였고, 1901년 만선(滿船)과 추산(悉山)이 운수암의 해운루(海雲樓)를, 1902년 연수전(延壽殿)을 건립하였으며, 1904년 포운 등은 금당을 중수하였다.
1906년 안동·예안·의성·지례·선산·금산·용궁·비안·군위·의흥·청송·진보·순흥·봉화·영천군 등에 있는 사찰에 대한 관리를 종무원(宗務院)에서 부여받았다. 1912년 30본산(本山)의 하나가 되었으며, 1913년 2월 사찰령(寺刹令)에 의하여 고운사 본말사법(本末寺法)이 시행되면서 경상북도 내의 46개 사찰을 말사로 관장하였다.
1924년 주지 만우(萬愚)가 약사전을 중수하고 대정암(大定庵)을 창건하였으며, 1935년 주지 영호(泳鎬)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가운교(駕雲橋)를 만들었다. 1936년 명부전과 선열암을 중수하고 천왕문을 옮겨지었다. 또한, 1934년에는 불교전문강원을 개설하였고, 안동 포교당·와룡 포교당·의흥 포교당 등을 두었다.
내용
30본산 당시 논 6만 3,664평, 밭 17만 9,634평, 대지 942평, 사사지(社寺地) 4,189평, 산림 260정(町) 3반(反)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의성·안동·영주·봉화의 4개 시·군, 54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극락전·관음전·명부전·금강문·가운루·적묵당·우화루·동별실·서별실·금당·회운당·고운대암(孤雲大庵)·고금당(古今堂) 등 총 25동이 있다.
소장된 중요 문화재로는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6호)과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 가운루(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호), 연수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444호), 사적비, 사보(寺寶)로 전해지고 있는 오동학촉대(烏銅鶴燭臺)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여러 차례 화재로 불타 없어진 후 중수된 가운루나 각각 18세기, 20세기에 세워진 사적비나 연수전과는 달리 석조석가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은 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층석탑은 현재 나한전 앞에 자리 잡고 있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으며, 아래층 기단에는 희미한 안상(眼象) 무늬가 보이고, 위층 기단에는 기둥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각 층의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약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치켜 올림이 크지 않고, 밑면에 1층은 4단, 2·3층은 3단의 받침을 각각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 머리장식받침돌), 복발(覆鉢: 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뒤집혀진 앙화(仰花: 활짝 핀 연꽃모양 장식) 등을 올린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석재가 많이 닳아 있고, 아래층 기단이 특히 심하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줄어든 규모나 지붕돌의 조각양식 등에서 시대가 조금 내려간 모습들이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
『명산고찰(名山古刹)을 따라』(이고운·박설산, 우진관광문화사, 1982)
『한국의 명산대찰(名山大刹)』(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권상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경북오본산고금기요(慶北五本山古今記要)』(강유문, 경북불교협회, 1937)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네이버 지식백과] 고운사 [孤雲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웅보전
보전이라면 삼신불이 계셔야 하는데...
신도들은 신발 정리에서도 단정해야만 수행자의 모범이 되리라... 생각한다
송이버섯 산지라 왼산이 입산금지구역이란다
경내가 참으로 단아해 보였다
요사채
명부전
드물게도 삼성각의 규모가 있어 보였다
삼층석탑
모나리자님
연수전은 왕실의 안녕을 빌던 곳이리라(왕실어첩을 보관하던 곳)
연수전 전체 모습
고운사 연수전 孤雲寺 延壽殿
위치: 경상북도 의성읍 단촌면 구계리 고운사에 있는 전각.
고운사는 신라 681년(신문왕 원년)에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사찰로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전통 사찰이다. 연수전은 고운사의 부속 전각이다. 고운사 연수전은 2003년 8월 14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44호로 지정, 보호되어 오다가 2013년 4월 8일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470호로 승격되었다.
고운사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415[구계리 116]에 있다. 선운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 위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전각인 연수전은 일주문을 지나 계곡을 건너 우화루를 지나 직선거리로 약 50m 정도 올라가면 좌측에 자리하고 있다. 연수전 좌우측에는 고운대암과 연지암이 있다.
고운사 연수전은 1774년(영조 20)에 영조가 내린 어첩(御帖)을 봉안하던 건물로, 현재의 건물은 1887년 극락전 등 다른 전각들과 함께 중수되었다.
연수전은 전면에 세워진 만세문(萬歲門)이라 편액한 3칸 규모의 산형대문(山形大門)을 들어서면 위치하고 있으며, 그 주위에는 토석 담장을 둘러 별도의 공간을 이루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으며, 가구식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연수전의 평면 형태는 가운데에 방 1칸을 두고 사방(四方)으로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른 특이한 형태이다. 퇴칸의 주위에는 계자각(鷄子脚)을 세운 헌함(軒檻)을 둘렀다.
현재 연수전에 어첩은 봉안되어 있지 않으며, 전각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고운사이다.
고운사 연수전은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御牒)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숭유억불 시기인 조선 시대에 왕실과 관련된 건물이 사찰 내에 존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고운사 연수전 孤雲寺 延壽殿
그당시에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있었던 듯...
고운대암
극락전
종무소
무설전
계곡에 위치한 구조다
경북 의성은 예로부터 소고기가 유명했던 곳이다. 그리고 의성의 고운사는 송이버섯이 유명한 곳이다. 고운사 경내의 등산로 입구에는 곳곳마다 [입산금지]라는 표찰이 걸려 있었다. 몇달 전엔가 고운사로 부터 보내온 송이버섯 선물을 받아든 우리 스승님은 바로 천관산으로 전화를 거셨다. 지행 스님을 불러내, 당장 차를 몰고 찾아와 송이버섯을 수령해 가라는 전갈이 계셨다. 그 속 뜻은 이렇다. [장흥 천관사]는 현재 여러 동의 전각을 다시 복원하는 불사를 진행 중인 곳인데, 그 불사에 조금이라도 은혜를 입은 곳이 있다면 송이버섯이 싱싱할 때 바로 가져가서 답례를 하라는 준엄한 뜻이시다. 당신께서 드시라고 보내온 귀한 산삼도 그렇게 물리시는 분이다. 법흥 큰스님은 일본에서 가져온 향초도 그렇게 아낌없이 나누신다. 스님께 그 귀한 향초를 왜 당신께서 쓰지 않고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느냐고 물으면 되려 나를 이상한 놈(?) 취급을 하며 바라 보신다. 바빠 죽겠는데 귀찮은 질문을 하면 보이는 그런 표정이 나오신 것이다.
"대저 귀한 공양물을 나누는 것은, 그 귀한 공덕이 나에게 이롭게 되는 일이 반드시 될진데, 무얼 그리 아깝게 생각하고 자시고 하느냐?"는 요지시다.
그러면 한 방 얻어 맞은 듯 정신이 몽롱해 진다.
아직...... 내 수행이 부족하고, 많이 어리석은 까닭이다!
- 2015년 3월 1일 완성하다 -
德 山 權 大 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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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 돋움체-필자 글(녹색), 궁서체-인용 글(검은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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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zanne - 향기로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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