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春海印 3 - 해인사 장경각
尋春海印 3 - 해인사 장경각
일 시: 2016년 3월 16일 (수)
장 소: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응석사를 나와 쏜살 같이 달려간 곳은 오늘 스승님을 초대하신 해인사 방장스님께서 거처하시는 해인사 원당암!
방장이신 원각 큰스님은 꼬박 2년만에 해후하게 되었는데 정말 반갑게 맞아 주신다. 따뜻하신 미소도 변함이 없으시다. 전임 조계종 종정이시자 방장을 지내셨던 법전대종사님 가신 후의 해인총림을 총괄하시면서도 온정 만큼은 옛날이나 변함이 없으시다.
정다운 다담 속에 차 한 잔을 나눈 후에 방장 스님께 청을 하나 넣었다. 사실은 스승님께서 먼저 말을 꺼내시어 나의 청을 부드럽게 이끌어 내시어 허락을 받아 내기는 했지만...... 그 허락은 바로 금단 구역이 되어 버린 국보 해인사 장경각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잇게 해 달라는 청원이었다. 스승님께서 젊은 시절 장경각의 장주를 맡으셨고 그곳 법보전에서 무려 17만 매를 올리신 그 정성을 필자도 체험해 보고 싶아서였다. 정작 허락을 받고 찾아간 장경각에는 세분의 경비가 따라 다니면서 에스코트를 해 주었기 때문에 미안해서 법보전에 들어가 참배도 못하고 사진만 담고 나올 수 밖에 없엇다. 기다리고 서 계시는 그분들의 노고가 미안했기 때문이었는데 좀 더 오래 머무를 걸!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장경각 [藏經閣]
향교·서원에서는 존경각(尊經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은 이미 삼국시대 불교사찰 내에 지었던 경루(經樓)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큰 절에는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을 지은 예가 많다.
그러나 장경각과 같은 건물이 널리 확산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나라에서 유교를 크게 숭상한 때이다. 이때에는 전국의 군현(郡縣)마다 향교가 세워지고, 또한 지방에 서원이 많이 세워졌으며 이들 향교나 서원 중 규모가 큰 곳은 대개 장경각을 갖추었다.
장경각은 책이나 목판을 보관하는 곳인 만큼 건물구성에 약간의 특징이 있다. 즉, 바닥은 마루로 하여 지면에서 어느 정도 띄우며, 벽체는 판자를 댄 이른바 판벽(板壁)으로 하고 여기에 수직의 가는 창살만 댄 간단한 창을 단다. 이것은 모두 실내에 습기가 남지 않도록 하고 통풍이 잘 되도록 배려한 결과이다.
합천의 해인사 대장경판고는 불교사찰 내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대장경 목판을 보관하기 위하여 1488년(성종 19)에 지어진 이 건물은 정면 15칸, 측면 2칸인 건물 둘로 구성되었으며, 습기를 막고 통풍이 잘 되도록 건물의 향(向)이나 창문 구성을 세심하게 배려한 점이 특색이다.
서울 문묘(文廟)의 존경각은 건물의 특색은 없지만 향교 내의 이런 유의 건물을 대표하는 것이며, 서원으로는 경주군 옥산서원의 문집판각과 어서각, 안동군 도산서원의 경장각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건물은 건물 자체의 구조도 경전을 보관하는 데 적절하도록 고안되었지만, 건물이 놓이는 위치나 지세(地勢)도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을 택하는 등 건축적으로 매우 뛰어난 면을 지니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경각 [藏經閣]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