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거자의 쉼터로 돋보이는 노안성당
일 시 : 2013년 2월 28일
장 소 :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계량리 일원
- 노안성당은 생각보다 외진 곳에 있었다 -
- 이곳이 입구이다 -
- 나주에 최초로 설립된 노안성당 -
- 그 당시 광주에는 천주교가 전래되지 않있던 무렵이다 -
- 폐교를 잘 활용하고 있었다 -
- 산책길 -
- 노안성당 올라가는 길의 마을회관 -
- 가장 못생긴 마리아상이 정감을 불러 일으킨다 -
- 노안성당이 벚나무와 함께 모습을 드러 낸다 -
- 참으로 고결한 건축미를 보여 준다 -
노안성당
[ 老安聖堂 ]-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780번지에 있는 광주대교구 소속의 가톨릭 천주교회이다. 성당 건물이 2002년 9월 13일 등록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다.
1894년 천주교 신자 정락 요한이 박해를 피해 서울을 떠나 함평군 나산면에 정착하였다. 그는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약봉지에 천주경과 성모경을 써주며 신자들을 모아나갔다. 당시 양천리에서 한약방을 하던 이진서가 교리를 공부하여 세례를 받게 되면서 계량 공소가 설립되었다. 1908년 계량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신부로 투르뇌 빅톨 신부가 부임하였다. 1910년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그 부지에 일자형 초가 성당을 건립하였다. 직접 벽돌을 만들어 사제관을 건립하던 중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건립이 미루어지다가, 1927년 벽돌조 사제관을 서구식 성당으로 확장하여 준공하였다. 1935년 5월 계량 본당에서 노안 본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84년 3월 까리따스수녀회의 분원이 개설되었다.
노안천주교회의 성당 건물은 붉은색 벽돌로 마감한 외관에 아스팔트 맞배지붕을 얹은 단층의 서구식 성당 건물이다. 1926년에 박재수 신부가 부임하여, 1908년 프랑스의 카다르 신부가 지은 一자형 벽제 사제관을 1927년에 十자형 건물로 증축한 것이다. 정면의 탑신부 1층은 화강석으로 표면을 거칠게 마감하였다. 지금까지 원형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나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회이며, 이 지역의 대표적 근대 성당 건축물로 꼽힌다. 2002년 9월 13일 등록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다.
- 청나라 사람 복장을 한 김대건 신부의 흉상이 특이하다 -
-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노안성당 -
- 성당 내부 -
- 루르드 성모 마리아상 -
- 한국적인 스테인드 글라스 -
- 성당 입구 -
- 오래도록 보존되기를 -
- 고해성사실의 외부 모습 -
- 오래된 벽돌의 색감 -
- 대주교관 -
- 정감 가는 시골집 -
- 솔방울 -
- 세월이 묻어있는 벚나무군락지 -
- 내려가는 길 -
- 폐교에 설치된 무대 -
- 살고 싶고, 가고 싶은 농촌마을 -
- 공동 창고 -
- 그네를 타는 모나리자님 -
- 반찬 사려고 지갑이 들려 있다 -
- 즐겁기도 하시겠다 -
- 쉼터의 상량문 -
- 반찬가게는 잠겨 있었다 -
- 전망대에서 바라본 폐교 -
- 다리가 보이는 저 능선을 넘어 교우들이 미사 참례를 왔다고 한다 -
- 봄은 이미 깊게 들어와 있었다 -
- 전체적인 마을 모습 -
- 크리스마스 점등으로 유명한 곳이 노안성당이다 -
노안성당은 나주 최초의 본당이며, 광주교구의 산파 역할을 하여 광주 최초의 성당인 북동천주교회를 설립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역사가 오래된 곳이니, 호남에서는 목포에 이어 두번째의 천주교 전래지가 되는 성스러운 곳이다.
유서 깊은 성당임에는 틀림 없어 이곳 뒷편에 최창무 대주교의 사제관이 있다.
봄날에 좋은 곳을 순례하여 마음이 상쾌함을 더했다.
- 2013년 3월 9일 완성하다 -
小鄕 權大雄 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