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봄빛에 완성의 하산을 결심하다 - 추월산과 담양호
일 시 : 2013년 2월 28일 ~ 29일
장 소 : 전남 담양군 용면 추월산 일원
때는 바야흐로 신록의 시즌이니 봄소식이 곳곳에서 빠르게 올라 온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순창 강천사 계곡의 연녹색 잎이 솟아오르는 매우 아름다운 풍경은 이제 곧 그 황홀한 미모를 뽐내게 될 것이다. 애기닢이 수줍은 연녹색으로 봄의 성찬을 즐기는 4월 중순이 되면 꼭 강천사를 다시 찾아 가리라 다짐해 본다. 그만큼 강천사의 수목과 그 빛깔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름다운 식물원의 보고라 여기기 때문이다. 타는 가을의 단풍도 아주 뛰어 나지만, 그에 견주어 봄의 신록 또한 그 운치가 결코 빠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 강천사가 있는 강천산과 담양의 추월산은 금성산성을 매개체로 해서 함께 아우러지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데, 추월산은 강천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봄꽃의 전령사들이 먼저 도착하는 곳이 된다. 그래서 오늘 떠나오게된 계사탐매의 여정은 미암일기로 유명한 연계정을 보고 나서, 추월산 기슭 담양호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유혹을 하고 있었다. 그래, 그 유혹에 넘어가는 척 즐거운 상상으로 떠나온 필자의 마음은 오로지 설레임만 가득하였다. 봄빛이 싱그럽게 머무는 곳, 담양호에서의 오늘 하루는 그 비경에 취하면서 또한 환희의 늪에 흠뻑 빠져 보리라 다짐해 본다. 빠져서 질식해도 좋으니 한껏 봄을 껴안으며 신록과의 일대 사랑잔치를 벌여 보리라......
- 무월리 달빛마을은 온통 개나리로 흐드러져 있었다 -
- 미암일기의 유희춘 선생 종가댁에도 수선화가 활짝 피어 올랐다 -
봄빛 오른 수선화
- 小鄕 權 大 雄
봄빛이 서성거리더니
잉잉거리는 꿀벌 다리고
수선화에 물을 들였다
애기닢에는 연록을 주고
꽃에는 연노랑 주니
병아리 행진 시작되었다
너희들은 알아라
봄은 그냥 오는 법 없단다
생동감 다리고 찾아오신단다
그러니 찬란한 봄노래 부르거라
아지랑이 함께 동무하면서
못다 한 맹세, 다시금 추스리거라
- 이곳 모현관에 미암일기가 보존되어 있다 -
유희춘 미암일기 및 미암집목판 (柳希春 眉巖日記 및 眉巖集木板)
유희춘 미암일기 및 미암집목판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인 유희춘(1513∼1577) 선생이 직접 손으로 쓴 일기이다.
유희춘은 1538년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 정언 등의 벼슬을 거쳤으나, 1547년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 다시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1575년 이조참판을 지내다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글쓰기로 보냈다.『미암일기』외에도『속몽구』,『역대요록』등을 남겼다.
지금 남아있는 일기는 선조 즉위년(1567) 10월부터 선조 10년(1577)까지 11년간에 걸친 내용이다. 내용 가운데 일부 중간은 몇 군데 빠진 곳이 있으나, 여기에는 조정의 공적인 사무로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매일 일어난 일과 보고들은 바를 빠짐없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일지는 임진왜란 때 선조 25년 이전의 기록이 다 타고 없어져,『선조실록』을 편찬할 때 이이의 『경연일기』와 더불어『선조실록』의 기본사료가 되었다. 본래는 14책이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11책뿐이며, 부록으로 그의 부인 송씨의 시문과 잡록이 실려있다. 이 책은 판본을 포함하여 일괄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이 중 3매를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임시 보관했다가 현재는 작자의 후손들이 보존각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개인의 일기 중 가장 방대한 것이며, 동시에 사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조선시대의 각 관서의 기능과 관리들의 내면생활, 사회, 경제, 문화, 풍속 등을 여실히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종가댁에 피어 있는 백매향에 흠뻑 취해 본다 -
- 종부 어르신 말씀이 이곳 고매古梅들은 아직 일주일도 더 있어야 활짝 필 것 같다니, 필자는 지난 해 보다 서둘러 떠나온 셈이 되어 무척 아쉬웠다 -
- 연계정은 곧 쓰러질듯해서 보수가 시급해 보였다 -
연계정(漣溪亭)
소재 : 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유희춘의 『미암일기((眉巖日記)』는 『선조실록』을 편찬할 때 이이의 『경연일기(經筵日記)』․ 『석담일기(石潭日記)』와 더불어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는 것은 세상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일기는 1567년(선조 즉위) 10월 1일에서 1577년(선조 10) 5월 13일까지 약 10년 동안 조정의 크고 작은 사건, 중앙·지방의 각 아문의 기능, 관리들의 일상생활, 저자가 홍문관원·전라도감사·사헌부관원 등을 역임하면서 겪은 내용 등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보고 들은 바를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다.
보물 제260호로 지정될 만큼 그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미암일기』의 저자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1513~1577). 그의 숨결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정자가 있다.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의 연계정(漣溪亭)이 바로 그곳이다. 연계정은 효와 실천도덕, 윤리적 인간본성 등을 중요시했던 미암의 성리학 정신이 스며있는 곳이다.「연계정 중건추기(漣溪亭 重建追記)」를 보면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미암의 자취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미암은 1513년 해남에서 태어났다. 신재 최산두와 모재 김안국에게 사사한 미암은 중종 32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 해 병과에 급제할 정도로 학문이 출중했던 인물이다. 벼슬은 춘추관 기사관과 세자 시강원 설서를 지냈다. 이 과정에서 미암은 인종으로 하여금 학문을 좋아하게 만들었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명종 때 사간원 정언 등을 지낸 미암은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어지러웠던 당쟁에서 의연한 입장을 취했던 미암은 곤궁에 처해 함경도 종성에서 1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유배에서 풀려나 선조 초에 성균관 직강과 홍문관 교리, 성균관 대사성 등 언관의 길을 걸었다. 그 뒤 미암은 담양군 창평면 등갈 마을에 정자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배움을 행동으로 옮겼다.
현재 『미암일기』 10권과 미암의 부인 송씨(宋氏)의 시문과 잡록(雜錄)이 실린 부록 1권을 포함, 모두 11권의 책이 연계정에서 내려다보이는 모현관에 소장돼 있다. 모현관 뒤편으로는 미암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다. 아주 오래된 이 사당에는 벽화와 미암이 탔다는 가마 등이 보관돼 있다. 비바람에 시달려 다소 쇠락했다. 그러나 초승달 모양의 나무판으로 멋을 낸 사당의 출입문과 서까래 아래 정교하게 조각된 받침대 등은 미암이 생전에 추구했던 절제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결코 화려하지 않고 단아한 기품이 흘러넘치는 연계정과 모현관, 그리고 연못 주변의 아름드리 한 노거수들이 이기심에 가득 찬 세인들의 마음을 숙연케 만든다.
출처 : http://www.honamculture.or.kr/sub06/sub03_detail.php?SuperPosition=1&pagemode=1&seq=68
주: 연계정連溪亭의 연連자는 물놀이 연漣자이므로 필자가 다시 바로 잡음
- 매화향을 따라서 오다 보니 어느덧 추월산에 이르렀다 -
- 추월산은 노령산맥의 빼어난 지맥의 하나로 알려진 명산이다 -
- 맑은 달이 떠 오른다는 추월산에서 오늘은 하룻밤을 유숙하리라 -
- 매화 쫓아 다니다 보니 어느덧 석양 무렵이 되어 막영준비에 바빴다 -
- 담양호에 어리는 물빛이 석양을 재촉한다 -
- 저 맑은 호수에 검은 어둠의 물빛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였다 -
- 추월산에 어둠이 찾아 오면 그 달빛을 동무하며 유유자적하리라 -
- 보름달님이 늦게 찾아 오시는데도 불구하고 그 영향으로 밤하늘의 별빛들이 쇠했다 -
- 자정이 못되어 해시쯤 찾아 오신 보름달님의 빛 퍼레이드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
- 달빛에 오로라가 겹치면서 황홀한 자태를 뽐내신다 -
명경헌에서 안식년을 보낸 지난 2년간 수많은 명상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많이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지난 반년 동안 시도했던 산천초목과 더불어 풍찬노숙하는 야영 생활에서 얻은 바도 또한 많았다.
많은 이들이 필자의 비박기행을 보면서 물어오는 질문이 공통적으로 하나 있었다.
'그렇게 산꼭대기에서 혼자 텐트치고 야영하면 안 무서우냐?'
'깊은 산, 깊은 숲 속에서 어떻게 홀로 밤을 지새울 수가 있느냐?'고 말이다.
그래 이번 기회에 한 말씀 드리고자 한다.
"귀신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영계靈界에 속하기 때문에 인간의 일에는 결코 간섭을 하면 안됩니다.
어제 지나왔던 일상의 일들을 현재의 내가 다시 돌아가 간섭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간섭할 수 있는 흥미도 부질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차원次元이 다른 새로운 경지라는 맥락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일생이라는 일기를 써왔습니다.
그 일기를 다시 읽어 보면,
마치 한 시간 전의 일인 듯, 본인에게는 그렇게 애틋하고 생생한 현장감으로 과거의 일들이 다가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일기를 누군가 태워 버렸습니다.
태워 버린 일기 속에 적혀 있던 지난 일생의 기록들을 이제 다시는 회상으로도 재현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이라는 또 다른 탄생의 순간을 지칭하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망자에게는 '돌아 가셨다'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원론의 근본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기록들이 없어졌다고 해서 영계의 세계가 사라져 버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영계靈界라는 미래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하면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영계를 준비하였던 자들에게는 가장 값진 열매로 보상받는 길이 찾아올 것이지만,
준비하지 않고서 무신론無神論에 젖어 오늘만을 향유하듯 타락에 젖었던 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고통스런 꿈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계마저도 뛰어 넘는 수행자 또한 분명히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저는 얻는 바가 있어서 감사한 마음을 안고 그동안의 안식년을 끝내고 봉사하는 삶을 시도하기 위해 하산을 준비할까 합니다.
그렇게 세속의 인생에 다시 들어가 함께 부둥켜 안고 부대끼면서 슬피 울기도 할 것이며,
때로는 기쁨에 겨워 행복의 파안대소도 터뜨릴 것입니다.
왜 그렇게 신이 나는 삶의 경지를 터득하게 되었느냐고요?
우리는 영계로 돌아갈 수 있으며 거기에서 또다시 살아갈 수 있는 거룩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귀신이 있듯이, 신 또한 존재하며 내세 또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속세의 과보를 좋게 받기 위해서는 선善하게 살아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믿을 수 없다고요?
제가 심산유곡에 들어가 2년간 명상을 수행하며 얻은 결론을 당신이 믿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의지이기 때문에 제가 무어라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는 당신을 위하여......
그리고 무신론無神論의 대다수 사람을 위하여......
저는 기도를 바칠 것입니다.
내생來生에서 또다시 만나 즐거운 일들을 함께 엮어 나가자는 서원을 세우고서 말입니다.
그렇게 믿는 자는 스스로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
- 담양호의 밤빛은 보름달과 함께하며 점점 깊어만 갔다 -
- 맑은 명상으로 일관하던 중에, 밤의 어둠은 물빛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
- 기러기들도 날아오르기 시작하였다 -
- 여객기도 또 다른 삶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었다 -
- 그렇게 새로운 일출이 찾아 왔다 -
- 과거의 망자들에게도 균등하게 새로운 빛이 비치고 있었다 -
- 그렇게 추월산은 아침빛을 받으며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
추월산 [秋月山]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과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731m. 전라남도 5대명산의 하나로 노령산맥의 동분지맥인 밀재와 백암산 사이에 서서 주위에 불갑산·방장산·금성산을 거느리는 노령의 중추이다.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석벽이 많고 춘하추동 4계절에 걸친 산모습의 변화가 뚜렷하다. 각종 약초가 많아 예로부터 명산으로 불렸으며, 진귀종인 추월산 난초가 자생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산강의 원천지로서 샘이 많기로 유명하며, 특히 용연 제1.2폭포가 있다. 또한, 이산은 광주와 전라북도의 주민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상봉 추월봉 아래에 있는, 고려 때 보조국사(普照國師)가 건축하였다는 보리암(菩提庵)과 산 동쪽의 담양호에는 여러 지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587&docId=529622&mobile&categoryId=1587
- 적송赤松들도 일출에 찬란히 빛나기 시작하였다 -
- 또다시 온 산하가 싱그러운 봄날을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
- 한동안 여명을 조우하던 마음에도 고요로운 평화가 함께하기 시작하였다 -
- 그것은 자연에 바치는 커다란 경외심이었다 -
- 무릇 살아있는 생명들은 모두 평안하시라 -
- 그대 홀로 있다 외로워 하지 마시라 -
- 생명의 비약을 믿으시고 솔로를 즐기시라 -
- 그렇게 믿는 자에게는 축복이 따를진저 -
- 저 하늘 가득 비상하며 그 축복을 향유하시라 -
비상
- 小鄕 權 大 雄
하늘을 날고 싶다면
그 마음만 존중하며
날면 된다
마음이 날고서
천하를 내려다 보는데
못 나른다, 체념할 것 없다
날자꾸나
날개야 다시 돋자꾸나
이상이 꿈꾸었던 하늘을
한번, 날아 보자꾸나
찬란한 하늘을 날면서
이승에 아름다움만 있기를
간절히 서원해 보자꾸나
- 날아오른 인간, 그리고 뭍의 인간들에게도 축복 있으시라 -
- 무리를 지어 모두모두 축복 받으시라 -
- 담양호의 아침은 축복과 함께 시작하는 듯하였다 -
- 지극히 평화로운 마음을 얻은 자는 복되다 할 것이다 -
- 스스로를 낮추고 겸허한 삶을 수용하니 어찌 고요롭지 않으랴 -
-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지향하겠다 -
- 맑은 천하가 봄빛에 어우러지며 환희심을 노래하고 있었다 -
- 산중턱에 올라 밝은 담양호의 경관을 한껏 즐겨 본다 -
- 강하게 뻗어오른 육송의 기운과 함께하는 동행이 너무나 좋았다 -
- 금성산성 일대의 경관도 향유할 수 있는 좋은 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 멀리로 담양의 들판과 불태산이 함께하고 있는 추월산이었다 -
- 밀재에도 서서히 석양의 빛이 드리울 무렵이 되어서야 귀로를 재촉하였다 -
- 오늘 추월산과 담양호와 함께하면서 나누었던 명상의 결론을 안식년 하산의 변辯으로 삼으리라 -
떠나 오기를 참 잘했다 싶다. 문득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일어날 때에는 망설임 없이 떠나야 한다. 움직이고 싶은 마음의 동인動因을 존중하면서 떠나 오는 자! 그를 용기있는 자!라 부른다. 떠나오지 못하고 움추리면서 갖은 변명을 늘어 놓으며 현상에 안주하는 자를 필자는 겁 많은 자라고 부르리라.
떠나고 싶으면 떠나면 된다.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하면 된다.
그렇게 단순한 마음으로 념念을 결행으로 옮기는 자는 복되도다! 할 것이라고 필자는 혼자 우겨 본다. 아무도 필자의 삶을 대신해 주지 않는데...... 그 누구의 눈치를 볼 것인가 말이다. 누워있는 자신의 시신을 보고서 그때에야 후회를 할 것인가?
어느 고승께서는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라 하셨다. 실로 맑은 법어라 아니할 수 없겠다. 하고 싶은데 이러저러한 장애물과 걸림돌이 많아 실행할 수가 없다고 온갖 변명을 늘어놓기만 한다면, 그는 참 수행자가 아니다. 무늬만 좌선을 틀고 앉아 있는 수행자인 셈이다. 평범한 생활이 곧 좌선수행일진데, 어디에 가서 따로 도道를 구하랴.
생활 속에 참 도道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 떠나거라.
떠나는 자! 용기있다 할 것이다.
천하의 대장부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 2013년 4월 1일 완성하다 -
小鄕 權大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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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은 아래 링크된 블로그에 더 있습니다.
http://blog.daum.net/valer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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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이 있는 자료이오니,무단 사용시 그 출처를 꼭 명기 바랍니다>
註 : 돋움체-필자 글, 궁서체-인용 글
- 격려하는 의미에서 추천 버튼을 눌러 주시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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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Chyi Yu)는 1958년 대만 태생으로.
대만의 존바에즈라고 불리우고 있고 풍부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반월운과 함께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 Chyi Yu 노래 모음 -
1. Sad Lisa
2. C'est La Vie
3. Turning
4. Geordie
5. Songs And Silhouttes
6. Cry
(내용 중에 오자誤字를 발견하시거든, 필히 댓글로 그 경망스러움을 꾸짖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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