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순례기

길을 묻다 - 구룡산 안심사 적멸보궁 순례

梅君子 2015. 1. 20. 13:00

 [ Pilgrimage ]


길을 묻다 - 구룡산 안심사 적멸보궁 순례

 

 

 

일 시 : 2015년 1월 20일(화)

 

 

 

 

 

대둔산 안심사를 참배하고 길을 떠나와 당도한 곳은 충북의 구룡산 안심사! 생각보다 평지인 터에 안심사는 자리하고 있었다. 실상사 같이 평야지대에 앉은 절은 아니었지만 그냥 마을 뒤에 있는 절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곳이라 이곳에 정성으로 부처님 진신사리를 왜 모셨을까 조금 허탈해 지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나면 구룡산을 올라 그 풍수의 맥을 일별해 보아야만 결론이 날 수 있는 사안이었으며, 그동안 거의 서른 곳의 진신사리탑을 찾아 다닌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에는 그 풍수의 묘리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도 이곳 진신사리는 이씨조선 시절 다른 곳에서 이운하여 왔으리라 싶다. 터의 풍수가 적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정성으로 모신 진신사리 터는 단연 설악산 봉정암의 삼층탑이다. 그다음이 오대산의 중대에 모셔진 적멸보궁! 그 두 곳은 보통 정성으로는 근접 조차 불허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 더 있다. 지리산 천왕봉 밑의 법계사가 그곳이다. 봉정암과 법계사는 하루에 다녀올 그런 자리에 앉아 있지 않는 정말 성스러운 곳이다. 적어도 하루를 그곳에서 유숙할 계획을 세우지 아니하면 접근 조차 허락되지 않는 곳이니 그렇다는 말씀이다. 세상에 정성없이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마는, 하물며 성스러운 부처님의 법신을 모시는 곳인데 옛 사람들이 어찌 수승한 터를 세심하게 고르지 않았으랴 싶다. 그런 의미에서 구룡산 안심사의 풍수는 의문이 들게 해 준다.

 

사리탑 앞에 세워진 비석은 이곳이 엄연히 세존사리탑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아무렇거나......  

 

 

 

 

   괘불탱 모사품(보물인 진본은 따로 보관)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경내

 

   요사채

 

    대웅전(보물)

 

 

 

 

안심사 [安心寺]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사동길 169-28(사동리 271)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 775년(혜공왕 11)에 진표(眞表)가 절을 지은 뒤 수십 명의 제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에서 안심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1325년(충숙왕 12)에 원명국사(元明國師)가 중창하고, 조선시대에는 1613년(광해군 5)에 비로전을 중건했으며 1626년(인조 4)에 송암(松庵)이 중수했다. 1672년(현종 13) 대웅전을 중수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시 폐사되기도 했으나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꾸준히 법통을 이어왔다. 1980년과 1989년에 대웅전을 중수하고 1984년에 요사를 새로 지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영산전·산신각·충혼각·요사채 2동이 있다. 대웅전(보물 664) 안에는 흙으로 빚은 소조상(塑組像) 형식의 삼신불상과 후불탱화·신중탱화 및 근래에 제작된 동종이 있다. 후불탱화는 1891년(고종 28)에 한봉 창엽이 그렸고, 신중탱화는 1998년에 새롭게 봉안한 것이다.

 

영산전(충북유형문화재 112)은 1613년에 창건하였다가 풍상으로 퇴락해가는 것을 1842년(현종 8)에 중수하였다. 본디 이 건물은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는 비로전이었으나 나한전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영산전이 되었다. 안에는 석가삼존불, 16나한상, 영산후불탱화, 신중탱화, 나한도 4점, 법고, 괘불함 등이 있다.

 

영산전 불단 앞에 마련된 괘불함에는 1652년(효종 3)에 제작한 괘불(국보 297)이 보관되어 있다. 이 괘불은 석가여래상을 주존으로 주위에 불보살과 제자·성중 및 사천왕의 호법신들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 크기는 가로 462cm, 세로 627cm이며 그림의 중앙에 그려진 본존상의 높이는 372cm에 이른다.

 

충혼각은 6·25전쟁 때 죽은 무명용사들을 위해 인근 부대에서 세웠으며 매년 현충일에 위령제를 지낸다. 이밖에 세존사리탑(충북유형문화재 27)과 세존사리비, 신라시대의 석조여래좌상, 목판 다라니경, 석탑 부재 등이 있다.

 

세존사리탑은 진표가 창건 당시 석가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조선 말에 탑의 행방이 묘연하던 차에 구룡산에서 발견되어 1881년(고종 18)에 구천동으로 옮긴 뒤 1900년(광무 4)에 다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심사 [安心寺] (두산백과)

 

 

 

 

 

 

 

 

 

안심사영산회괘불탱 (安心寺靈山會掛佛幀)

 


국보  제297호 - 충북 청원군 남이면 사동길 169-28, 안심사 (사동리)


석가불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안심사에 있는 이 괘불은 길이 7.26m, 폭 4.72m의 크기로, 본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비롯하여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여러 무리들과 석가를 호위하는 사천왕상 등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우견편단을 걸치고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취하고 중앙에 앉아있다. 길어진 팔과 손의 처리 등 세부적인 표현은 세련되지는 못하지만, 각진 얼굴에 이목구비가 큼직해 근엄해 보이며, 전체적인 신체비례는 안정되어 있다. 광배에 있는 화려한 꽃무늬장식은 석가불을 강조하며 돋보이게 한다. 위로 갈수록 석가 주변의 무리들을 점점 작게 묘사해 상승효과를 나타내었다. 채색은 주로 홍색과 녹색을 사용하였는데 두텁게 칠해 밝은 느낌을 주지 못하며 부분적으로 덧칠을 한 흔적도 보인다.


조선 효종 2년(1652)에 만들어진 이 괘불은 청주의 보살사 괘불이 조성된지 3년 후의 작품으로, 구도상 비슷한 점이 있어 17세기 중엽 충청지역의 불화연구에 도움을 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청주안심사세존사리탑 [淸州安心寺世尊舍利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 안심사는 조계종 사찰로서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요사(寮舍), 북서에 비로전(毘盧殿)이 있고 대웅전 옆에 사리탑이 있다.


대웅전의 판목현판(板木懸板)에 적힌 안심사 고적연대표에 의하면 775년(혜공왕 11)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창건하고, 1325년(충숙왕 12)에 원명국사(元明國師)가 중창하고 1626년(인조 4) 송암(松庵)이 거의 허물어진 사찰을 중수하였다 한다.


세존사리탑은 그 구성이 1층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팔각형 하대석(下臺石)을 놓아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원형(圓形) 석종형(石鐘形)의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보주형(寶珠形) 상륜부(相輪部)를 얹은 형태이다.


기단석 높이 50㎝, 1변 길이 38㎝이고, 탑신석의 지름 100㎝, 둘레 297㎝, 높이 113㎝, 상륜부의 둘레 162㎝, 높이 29㎝, 보주지름 4㎝, 조출(彫出)한 높이 2㎝, 수연(水煙: 탑의 보륜 윗부분에 불꽃모양으로 만든 장식) 둘레 16㎝로서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부도(浮屠)이다. 그 옆에는 세존사리비(世尊舍利碑)가 세워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주안심사세존사리탑 [淸州安心寺世尊舍利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청주안심사세존사리탑비 [淸州安心寺世尊舍利塔碑]

 

 

   억불숭유로 인한 피해

 

 

 

 

   대웅전 삼신불

 

 

 

 

 

   영산전

 

 

   풍경

 

 

   경내는 꽤나 단정해 보였다

 

 

 

오늘 순례가 전국의 진신사리 참배의 마지막이 될 듯 하다. 항간에 알려진 충남 태조산 성불사의 적멸보궁(대웅전)은 뒤에 있는 마애불을 주불로 예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부처님 진신사리는 아니다. 암벽에 새겨진 부처상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국 14대 적멸보궁으로 알려진 곳 중에 안 가 본 곳은 북한에 있는 보현사가 유일하다. 평안북도 향산군 신현면 향암리 묘향산에 있는 보현사에는 석가모니의 眞身舍利를 모신 석가여래사리부도비와 휴정의 사리부도 등이 있다고 한다. 그곳 석가여래사리부도비에는 사리봉안의 내력이 적혀 있는데, 1592년 왜구의 침입으로 통도사의 사리가 해를 입게 되자 사명당이 금강산으로 옮겨온 것을 휴정이 금강산도 위험하다고 여겨 1상자는 묘향산의 보현사에, 1상자는 통도사로 돌려보냈다고 한다는데. 필자가 직접 순례해 본 의견으로는 금강산 건봉사와 비슬산 용연사에도 사리를 분산 봉안했던 걸로 내력기에 나온다.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도 있는만큼 조상의 슬기가 돋보이는 부분이라 하겠다.

 

아무튼 이제 적멸보궁과 진시사리탑 참배는 모두 일단락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를 엮어 책으로 묶는 일만 남았다.  

 

 

 

 

 

- 2015년 2월 14일 완성하다 -

 

 

 

 

德  山    權  大  雄 쓰다

 

 

 

++++++++++++++++++++++++++++++++++++++++++++++++++

 

 

상기 본문의 내용 중에서 사진이 안 나올 경우에는 아래 영문 주소를 누르면 바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blog.daum.net/valeriano <--- 여기 영문을 눌러 주세요 (안 눌러지면 복사해서 주소창에 붙여넣기 해 주세요)

 

  

++++++++++++++++++++++++++++++++++++++++++++++++++

 

 

< 무단 사용시, 그 출처를 꼭 명기 바랍니다 >

 

註 : 돋움체-필자 글(녹색), 궁서체-인용 글(검은 회색)

 

 

 

*************************************************************************************************

  

Cezanne - 향기로운 꽃

 

*************************************************************************************************

 

 


[길을 묻다] - 적멸보궁 성지 24처 (기준: 현대에 이르러 인도나 동남아에서 가져온 진신사리는 일부 제외)
 

01, 봉정암,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봉정암, 부처님의 사리를 보실 인연처임을 깨달은 스님은 탑을 세워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하고 조그마한 암자를 건립하였다

 

02, 상원사,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상원사. 월정사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8각 9층석탑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있다. 상원사, 1984녀 7월 21일 경향신문, 문수동자상의 복장에서 큰 것 3과, 적은 것 5과가 조선시대의 사리함에서 나옴.

 

03, 정암사, 강원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함백산, 정암사,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적멸보궁. 정골사리(頂骨舍利)또 하나는 석영의 일종인 수마노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수마노 탑(보 물410호).

 

04, 법흥사, 강원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법흥사, 이 절을 창건하여역시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했으며 흥녕사라고 이름 붙였다. 구문선산(九門禪山) 중의 하나이다.

 

05, 통도사,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영취산, 통도사,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있어 불보(佛寶)사찰이라고도 한다. 전골진신사리와 치아사리와  부처님께서 친착하셨던 가사와 창건주이신 자장율사 스님의 가사가 보관되어 있어 유명하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금강계단에 봉안되어 이의 정면에 자리잡고 있는 대웅전에는 불상이 봉안되지 않았다.

 

06, 건봉사, 강원 고성군 거진읍 내성리 건봉산, 건봉사,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를 보관 하고있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가져다가 통도사에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약탈을해 간것을 사명대사가 다시 찾아 건봉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07, 도리사, 고구려 아도화상 경북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태조산, 도리사, 서기417년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세존 사리탑을 해체 복원하다가 금동육각사리함(국보 208호)과 부처님 사리 1과(顆)가 발견되었다.

 

08, 용연사,

 

19, 안심사, 충북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 구룡산, 안심사, 지방 유형문화재 제27호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09, 안심사, 전북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대둔산, 안심사,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부도와 역사를 말해주는 비문을 통해 옛적의 안심사와 역사의 훈적을 더듬을수 있습니다.

 

10, 금산사

 

11, 금곡사, 고려 초반기 전남 강진군 군동면 파산리 보근산, 금곡사, 1988년 6월 11일 3층탑신 상면의 사리공(舍利孔)에서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영롱한 세존진신(世存眞身) 주색사리(朱色舍利) 1과(顆)와 회백색사리(灰白色舍利) 31과(顆)가 발견되었다. 불국사 석가탑, 월정사 8각 9층 석탑에 이어 세번째임.

 

12, 화엄사 1995년 8월 진신사리 22과와 다라니경을 비롯한 유물 72점이 서5층석탑에서 나옴.  백제성왕 22년(서기 544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으며, 자장율사, 의상대서, 도선국사, 대각국사 의천 등이 수행했던 곳.

 

13, 다솔사 1978년 주지 한솔 스님이 탱화를 손질하다 108과를 발견

 

14, 동화사 승주군 별량면 대룡라 3층석탑에서 진신사리 3과와 청자사리함, 청동사리탑구슬구슬 등이 발견됨. 고려 초기로 추정. 1989년 6월 22일 경향신문

 

15, 감은사 동탑과 나원리 5층 석탑에서 사리 69과 발견, 서울 조계사서 친견 법회(재 봉안 됨)

 

16, 법계사

 

 


 

 

17, 백련사


18, 大邱 동화사의 金堂禪院은 부처님 진신사리 7과가 봉안된 3 층석탑 2기(보물 제248호)가 좌우에 자리잡고 있는 유서깊은 곳으로 일제시대에도 폐쇄된 일이 없으며 해방 이후 문경 봉암사와 더불어 한국불교 정화를 결의한 역사적 의미가 깃든 도량이다.


19, 부산 범어사 7층 석탑에서 발견된 석가모니 진신사리 2과. < 범어사 제공 > 이번에 발견된 진신사리는 인도 달라파라 스님이 간직했던 것으로 1938년 범어사 주지 운호스님이 7층 석탑을 건립해 봉안한 것이다. 범어사 7층 석탑은 범어사 문화광장 조성을 위해 이전 해체하는 중이었다. 범어사는 이달 중에 박물관 앞으로 이전하는 석탑에 사리를 다시 봉안할 계획이다. 범어사에는 7층 석탑과 함께 3층 석탑에도 석가모니 진신사리 10여 과가 봉안돼 있다. 범어사 1938년 범어사 주지 운호스님이 인도의 달라파라 스님에게서 건네받아 7층 석탑을 건립하면서 봉안한 것

 

20, 송광사 광원암
           대웅보전(대좌 밑에 놓인 사리탑은 어던 절에서도 볼 수 없는 양식으로 김동현 문화재관리국보존실장이 설계한 8각석탑이며 산승 시절 현호 스님이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석가모니 사리를 봉안했다. 1986년 5월 2일 경향신문)

 

21, 쌍계사,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지리산, 쌍계사, 구층석탑 고산스님이 인도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眞身舍利 3顆와 산내 국사암 후불 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眞身舍利 2顆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셨다.

 

22, 용화사, 경남 통영시 봉평동 미륵산, 용화사, 목조건물과 불사리 4사자법륜탑(佛舍利四獅子法輪塔)은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 양식의 원주석탑(圓柱石塔)으로 眞身舍利 7顆가 봉안되어 있다.

 

23, 성불사, 전남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백운산, 성불사, 신라말기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부처님 眞身舍利를 모신 오층석탑 등이 있다.


24, 백양사

 

 



25, 봉갑사

 

26, 관음사 대구 도동 삼층석탑

 

27, 성륜사

 

28, 감은사 동탑과 나원리 5층 석탑에서 사리 69과 발견, 서울 조계사서 친견 법회(재 봉안 됨)

 


29, 갑사는 아도화상이 420년(백제 구이신왕 원년) 창건했다. 아도화상이 신라 최초 사찰인 선산의 도리사를 세우고 고구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백제 땅에 들어 계룡산에 이르자 산중에서 서기가 뻗어 올랐다. 스님이 찾아가보니 자연석탑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도화상은 그 속에 진신사리가 있음을 알고 탑 아래서 예배를 드리고 갑사를 창건했다.
그렇다면 계룡산 자연석탑에 웬 진신사리가 들어 있었을까. 부처님이 입적하고 400년이 지나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은 부처님의 법을 널리 펼치고 싶었다. 왕은 사리보탑에 있던 부처님의 사리를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사천왕들을 시켜 마흔여덟 방향에 봉안토록 했다. 이때 다문천왕이 동방 남섬부주 가운데서도 명산인 계룡산의 자연 석벽에 사리를 봉안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갑사 신흥암 천진보탑이라고 한다.

 

30, 미륵사지 익산

 

31, 오어사 자장암(현대에 태국서 가져온 사리)

 

32, 보현사, 평안북도 향산군 신현면 향암리 묘향산, 보현사, 석가모니의 眞身舍利를 모신절, 석가여래사리부도비와 휴정의 사리부도 등이 있다. 석가여래사리부도비에는 사리봉안의 내력이 적혀 있는데, 1592년 왜구의 침입으로 통도사의 사리가 해를 입게 되자 사명당이 금강산으로 옮겨온 것을 휴정이 금강산도 위험하다고 여겨 1상자는 묘향산의 보현사에, 1상자는 통도사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33. 백담사, 1989년 잠실 보리정사 주지 석가산 스님이 달라이라마로 부터 받은 진신라리를 당시 백담사에 은거중이던 전두환에게 기증하여 봉헌 법회를 열었다.

 

34. 만불사 경북 만불산 만불회 1993년 스리랑카 세곳의 진신사리 1과씩을 회주인 학성 스님에게 기증한 것.

 

35. 보광사 경기 양주 에서 1978년 9월 5일 진신사리 20과가 문서(산스크리트  범어가 주서된 종이 포함)가 발견됨. 임란 때 승병 집결지였던 대가람.

 

36, 서울 수송동 각황사 1923년 10월 19일 인도 달마바라 대사가 기증하여 참배식을 함

 

37. 봉원사 김성월 주지가 1991년 스리랑카 불치사의 진신사리를 스리랑카 정부로 기증 받아 가져온 것.

 

38,

 

39, 광덕사 법주사9시멘트불 사리 1과 + 스리랑카 3과를 청동미륵불에 봉안: 1989년 11월 11일 동아일보)

 

40, 일붕선원 서경보 박사가 62년 스리랑카 총무원장이 나한사리와 함게 희사한 것. 일붕선원 호국평화기원7층탑에 봉안됨. 1978년 11월 인도정부로 부터 2과 기증 받아 사리탑에 봉안

 

41, 신흥암 계룡산 갑사에서 하사암지를 지나 2.5km 오르면 인도에서 가지고 온 사리를 봉안한 천진보탑이 있어 유명하다. 탑주이를 돌 수 있도록 계단식길이 나있고 탑이 있는 앞쪽자리에 앉아서 계룡산 정상을 바라보면 그 경치는 정말 빼어 나다.

 

42, 흑석사 경북 영주 조선 초기 왕실에서 시주한 목조불상과 부처님의 정골사리가 발견 1992년 4월에 발견되었다. 법당내 목조아미타불에서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낙관이 찍힌 복장기와 함게 부처님 정골사리, 법화경, 다라니, 다섯가지 곡식등이 발견되었다.

 

43, 봉덕사 벽제역 조선 태종의 4남 성녕대군을 기려 만든 절로 중인도에서 기증한 석가모니 진신사리와 1,000년전 천신불상 등 불, 법보를 보관하고 있다.

 

44, 화계사 서울 삼각산 1989년 7월 21일 동아일보 지난 13일 지장보살보존불 개ㅔ금작업중 부처상에서 600여년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박의 묘법연화경과 부처님 진신사리 6과, 다라니경 2백여졈 등 3백여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45, 마곡사 개산조 보조선사가 당으로부터 귀국시에 기증 받은 석가여래의 진신사리와 금관을 원내 중앙에 옹립한 사리탑이다. 동아일보 1938년 5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