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향일기 小鄕日記

모악성지 순례 4 - 믿음이 돌아오는 고결한 자리 귀신사

梅君子 2013. 6. 28. 21:46

 

모악성지 순례 4 - 믿음이 돌아오는 고결한 자리 귀신사

 

 

 

 

일 시 : 2013년 6월 26일

 

장 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81

 

 

 

 

 

- 모악산 금산사에서 전주 가는 길 옆에 위치한 귀신사 -

 

- 연蓮 -

- 깊은 고요가 있다는 대적광전 -

 

- 중앙에 비로자나불, 협시불로 좌우측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시고 있다 -

 

 

 

 

귀신사 [歸信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국신사(國信寺)라 하였으며, 국신사(國神寺)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최치원(崔致遠)은 이곳에서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을 편찬하였다.

 

고려시대 국사 원명(圓明)이 중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의 전화로 폐허가 된 것을 1873년(고종 10)에 춘봉(春峯)이 중창한 뒤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고려 말에는 왜병 300여 기(騎)가 성을 함락한 후 이 절에 주둔하였는데, 병마사 유실(柳實)이 격퇴하였다고 하며, 당시에는 건물과 암자가 즐비했던 대찰이었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826호로 지정된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비롯하여 명부전ㆍ산신각ㆍ요사채 등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2호인 귀신사삼층석탑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인 귀신사부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4호인 귀신사석수(石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삼층석탑은 높이 4.5m의 화강암재 석탑으로, 귀신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선이 정밀하고 옥개석의 곡선이 거의 평행을 이루면서도 신라시대의 미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빼어난 작품이다. 

 

부도는 청도원 마을 입구의 논 가운데 있는데, 전성기에는 이 부도가 있는 곳까지가 절의 경내였음을 알 수 있다. 석탑과 통일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는 이 부도는 정교한 조각의 예술성을 보이고 있으며, 높이 2.5m이다. 또 석수는 딴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앉아 있는 석수의 등 위 중간에 남근(男根) 같은 석주가 꽂혀 있고 도약 하려는 듯한 석수의 모습에는 당당한 위용이 엿보인다. 석수나 남근은 모두 화강석으로 되어 있고, 높이 1.65m, 너비 1.65m이다.

 

참고문헌 :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 상(上)』(권상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귀신사 [歸信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아름다운 만살빗살무늬 창호 -

 

- 석탑으로 오르는 계단 -

 

-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이 되라 -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그가 서있는 곳이 모두 참되다"는 뜻의 불교용어. 임제 의현(臨濟義玄)의 설법으로 《임제록》에 나온다. 서 있는 곳 모두가 바로 진여라는 뜻으로 주체적인 삶을 강조한 말이다. 《임제록》에서는 “불법은 인위적인 조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평상시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옛사람도 말하기를 ‘밖을 향하여 공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짓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흩어지고 떠나게 된다. 오직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진실의 눈이 깨어나야 한다.’고 하였다. 어느 장소에서든지 주체적일 수 있다면(隨處作主), 그 서는 곳은 모두 참된 곳이다(立處皆眞).

전부터 있어온 나쁜 행동이나 지옥에 떨어질 큰죄가 있더라도 삶은 자연히 해탈의 큰바다로 변한다. 수행자들이 진리의 자유로운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코에 닿는 모든 것을 입에 물어넣는 염소의 행동과도 같다. 종과 주인, 손님과 객도 구별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이러한 염소떼들이 불문에 들어와 온갖 이해득실과 웅성거림이 뒤섞이는 곳으로 발길을 향하고 만다. 이것은 진실한 출가인이라 할 수 없고, 이런 자들은 누구보다도 천하고 속된 사람이다.”라고 하여 수행하는 자의 확고한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참조항목: 임제록, 의현

 

[네이버 지식백과] 입처개진 [立處皆眞] (두산백과)

 

 

 

 

- 모악산을 향하고 있는 석수(石獸) -

 

- 백제시대의 양식을 보여주는 석탑 -

 

-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의 뒷모습 -

 

- 시원한 바람과 함께하고 있는 곳 -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연꽃 만나고 온 바람처럼'

 

- 귀신사는 담백미가 가득한 시골사찰이었다 -

 

 

 

 

모악산의 신흥종교들을 일별한 뒤에 찾아간 곳은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귀신사歸信寺였다. 의상대사와 최치원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라 하니 당시에는 대찰이었음이 분명한데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 한다. 저번에 일본에 건너가 굵직굵직한 문화재들을 보면서 느꼈던 생각은, 병화가 끊이지 않았던 조선에 비해 섬나라인 그들은 지금껏 많은 문화재를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으니 마치 선진국인양 크게 뻐기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그 문화의 많은 부분이 한반도를 통해서 흘러들어 갔고, 반도인이 일본에 도래해서 문화를 형성시켰으니 그들은 그렇게 민족우월적인 국수주장을 되풀이해서는 결코 안된다.

 

한반도의 가는 곳곳마다 왜구 무리들이 불사르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니, 그들의 만행은 가히 최상급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요즘 일본의 일부 정신나간 국수주의자들은 독도 문제나 정신대 문제 등등으로 또다시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게 해 주고 있으니 우리는 정말 자각을 해야만 한다.

 

그뿐인가.

한국동란은 또 어떻고?

서양세력은 공산당을 섬멸한다는 명분으로 또한 이 땅의 모든 당우들을 폭격이나 방화로 불태워 버렸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구와 오랑캐, 양이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강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은 그들의 이권다툼으로 생겨난 것이지 우리가 원했던 것이 결코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스스로 지키지 않는 한 이런 수모는 세세생생 계속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금 세계수출경제 8위권의 국부國富를 이용하여 자주국의 지위를 재빨리 획득해야만 한다.

그러나 주체성이 결코 없는 이 나라의 사부私富들은 오직 자신들의 영달만을 위해서 주체확립을 외면하고 있으니 이를 반드시 경계해야만 한다.

반드시,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사안 아니겠는가.

 

믿음이 다시 돌아 온다는 귀신사歸信寺에서,

보물로 지정된 아름다운 한옥의 법당에 들어가 비로자나불에게 빌어 본다.

이 땅에도 자주국의 지위가 빨리 되돌아 오게 해 달라고......

통일신라, 발해, 고려, 조선으로 이어졌던 그 자주권이 다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그가 서있는 곳이 모두 참되다"는 뜻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되새기자.

 

그렇게 비는 마음 속에 자신의 평온! 또한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는 염원도 함께하고 있다.

모태母胎에 들기 전, 우주의 자주의지(Free Will)였던 우리는 정말 얼마나 자유로웠던가?

 

 

 

 

 

 

- 2013년 6월 28일 완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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