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성지 순례 5 - 한국종교의 모태신앙지인 엄마뫼 모악산
일 시 : 2013년 6월 26일
장 소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 주변의 유명한 성지를 순례하고서 찾아든 곳은 완주군의 전북도립미술관이었다. 그곳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서 모악산을 올라 정상의 남릉에서 하룻밤 야영하고 서진하여 금산사로 내려섰다가, 다시 이곳에 들러 차를 회수하려고 마음 먹었다. 전주에서 가까워 그런지 평일인데도 꽤나 많은 인파들이 몰려 들어 한여름의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망중한의 대열에 끼어들기는 했으나 마음만은 무지 바빴다. 오전의 순례로 인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악산 남봉에서 하룻밤 텐트를 치고 숙영할 계획이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그러나 심적으로 오후에 산에 든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게 서둘렀던 모양이다.
- 모악산 정상은 중계소가 산재해 있는 모습이다 -
- 유명한 한우집이 보여서 설렁탕을 중식으로 들었다 -
- 숙명같은 짐덩어리 박배낭을 한번 담아 보고 -
- 시인 고은의 모악산 시비 -
모악산
내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
저혼자 떨쳐 높지 않고
험하지 않은
먼데 사람들마저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내자식으로 품에 안은 어머니외다
여기 고스락 정상에 올라
거룩한 숨 내쉬며
저 아래 바람진 골마다
온갖 풀과 나무 어린 짐승들 한핏줄이외다
세세생생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도 한핏줄이외다
이다지도 이다지도
내고장 모악산은 천년의 사람이외다
오 저 마음 여기 두어
- 고은 시
- 선녀폭포에서 잠시 숨을 내린다 -
- 박배낭을 많이 슬림화했는데, 여전히 무겁다 -
- 대원사 코스를 버리고서 가파른 능선을 치고 올라 어느덧 정상에 이르렀다 -
- 정상 중계소는 이미 KBS 직원들이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하산중이었다 -
- 정상으로 찾아드는 구름무리들 -
모악산[母岳山]
『금산사지(金山寺誌)』를 보면 ‘엄뫼’라는 말이나 ‘큰뫼’라는 말은 아주 높은 산을 의미하는데, 한자가 들어오면서 ‘엄뫼’는 어머니산이라는 뜻으로 의역해서 ‘모악’이라 했고, ‘큰뫼’는 ‘큼’을 음역하고 ‘뫼’는 의역해서 ‘금산(金山)’이라고 적었다고 되어 있다. 구전에 의하면 모악산 꼭대기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어 모악산이라 했다고 한다.
모악산에는 산금(山金)이 있고, 주변의 금산면·금구면을 흐르는 원평천(院坪川)·두월천(斗月川)의 하상(河床)에는 사금(砂金)이 있다. 주능선은 북동∼남서 방향이나 지능선이 동과 서로 뻗어 있다. 동쪽 사면은 만경강의 집수역(集水域)으로 계곡의 물은 구이면의 전주저수지에 흘러들어 전주 서쪽을 흐르는 삼천(三川)이 된다. 서쪽 사면은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의 원평천 집수역이 된다.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북쪽 금구면의 두월천과 남쪽 원평천은 330년(비류왕 27)에 축조된 벽골제(碧骨堤)의 수원이 되었다.
모악산은 우리나라 남부의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이며, 맑은 날이 많고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식물분포학상으로 온대형에 속한다. 식생은 대체로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신갈나무가 우점하고 정상부에 아교목층의 철쭉꽃이 군락을 이루며 저지재는 소나무가, 계곡에는 층층나무와 느티나무 군락이 분포한다.
이 산은 저평한 호남평야에 우뚝 솟은 산이어서 예로부터 미륵신앙의 본거지가 되었다. 산의 이름도 ‘엄뫼’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모악이 되었다. 서쪽 사면에 있는 금산사(金山寺)는 599년(법왕 1)에 창건된 것으로 신라 불교의 5교9산(五敎九山)의 하나이며, 여러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금산사미륵전(국보 제62호로 지정)은 겉보기에는 3층이나 실제로 통층(通層)으로 되어 있으며, 그 안의 미륵불상은 높이가 11.82m나 된다. 절 안에는 금산사노주(보물 제22호)·금산사석련대(石蓮臺, 보물 제23호)·금산사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제24호)·금산사오층석탑(보물 제25호)·금산사방등계단(보물 제26호)·금산사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금산사당간지주(보물 제28호)·금산사심원암북강삼층석탑(보물 제29호)·금산사대장전(大藏殿, 보물 제827호)·금산사석등(보물 제828호) 등의 귀중한 문화재가 있다.
그러나 보물 제476호였던 대적광전(大寂光殿)은 28칸의 웅장한 목조건물이었는데, 1986년 12월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 안에 있던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 불상도 소진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처영(處英)이 금산사에서 승병 1,000인을 일으켜 왜병을 무찔렀던 장거(壯擧)도 있었다. 또한 옛 기록에는 모악산에 무려 80여 개소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심원암(深源庵)·청련암(靑蓮庵)·용천암(龍天庵)·부도전(浮屠殿)·대원사(大院寺)·귀신사(歸信寺) 등이 있고 미륵신앙의 기도처가 곳곳에 있다. 귀신사는 서쪽 사면의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것으로 676년(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이 절에는 대적광전(보물 제826호)·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2호)·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미륵신앙이나 풍수지리설 등의 영향으로 여러 신흥종교의 집회소가 있다. 특히 금산면 청도리의 백운동은 모악산이 후천세계(後天世界)의 중심지라 믿어서, 1927년 이후 신도들이 집단 이주하였고 증산교(甑山敎)의 의식인 오대치성(五大致誠)으로 결속되어 종교취락을 이루었다. 1976년 모악산도립공원 개발계획이 수립되어 숙박 시설과 토산품 가게의 집단화, 주변의 신흥 종교집단의 단속·철거 등이 이루어졌다. 봄철에는 금산사 입구의 벚꽃이 유명하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한국의 산지(山誌)』(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07)
『한국관광자원총람(韓國觀光資源總覽)』(한국관광공사, 1985)
『산(山)』(조선일보사, 1983. 2)
「전북 모악산의 식생」(김병삼,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신흥종교취락(新興宗敎聚落)의 발생(發生)과 변천(變遷)에 관(關)한 연구(硏究)」(김상식 외, 『지리학보고』3, 1984)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모악산 [母岳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정상 부근의 남봉전망대가 오늘의 숙영지다 -
- 서둘러 숙영준비를 한다 -
- 사람을 있게하는 귀한 물 -
- 젊은 등산객 두 분이 석양을 관조하러 잠시 들렀다 -
- 그분들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절경을 감상한다 -
- 남봉으로 다시 돌아간 산객 -
- 모악산에 섪디 서러운 석양이 걸리고 있다 -
- 멀리서 바라본 남봉전망대는 수직절벽위에 있다 -
- 정상의 KBS 건물은 평시에 개방을 한다하니, 내일 오르리라 마음 먹는다 -
- 우리가 환호했던 남릉에 걸린 운해! -
- 800미터급 산에서는 보기 힘든 운해가 반겨 주었다 -
- 그리고 섪디 서러운 황혼이 걸리었다 -
- 고은 선생은 이곳에서 모두가 한핏줄이라 우시었다 -
- 그 섪디 설운 마음을 아시는지 황혼 또한 섪도록 찬란하다 -
- 운해가 어머니산을 어루 만지고 -
- 내일은 결코 다시 오니 울지 말라 하신다 -
- 서러울 일 없다, 조국은 다시 광영으로 등장하시리라 -
- 해발 794미터의 모악산 -
- 오늘 바람은 시속 2Km 정도이니 잔잔한 정도가 되리라 -
- 스마트폰에는 나침반 기능의 어플도 있다 -
- 그리고 GPS 어플로 현 위치도 파악할 수 있으니 비상시에 참 편리하다 -
- 실내등 올빗 -
- 헤드랜턴 -
- 밤내 여러가지 잡념으로 기도명상에 들기가 쉽지 않았다 -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대원사 초입에서 잠깐 계곡을 버린 사이에 가파른 산길로 접어들게 되어 강증산 선생의 수도터였던 대원사와 그보다 훨씬 더 상부에 있는 수왕사를 일별할 수가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그리고 다시금 곰곰 생각해 보니 대원사의 지기가 필자를 밀어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아니면 내 자유의지의 사대원소가 대원사를 밀어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강증산 선생이 오도했던 수도터 대원사는 필자의 곁에서 멀어졌다. 아무튼 이것도 인연길이라 싶으니 가파른 산길을 마다않고 떠안는다.
덕분에 가파른 직벽을 오르느라 숨이 고르지를 못하고 무거운 박배낭에 하소연할 길 없는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따금씩 지나가는 산짐승과 지저귀는 새소리와 하늘거리는 흰구름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고통은 신비로운 환희심으로 가득차 오르며 필자에게 새로운 힘을 안겨준다.
맞아! 이 맛에 산에 오르는게야!
그런 마음으로 오르다 보니 어느덧 정상의 중계소 앞 전망대에 이르른다.
무등산의 KBS중계소는 개방이 된데다 미니카페도 개설해 두어서 커피에다 식수 보충도 가능하였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은 성 싶었으나 중계소 경비분에게서 간신히 마실 물 정도는 구할 수가 있었다. 수왕사에서 식수를 조달하고 정상에 오를 요량이었는데 길이 바뀌어 식수가 절대 부족한 형편이었기 때문에 사정을 드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정상을 지나 남봉에 이르러 야영지를 물색했다. 남봉의 북쪽으로는 kT중계소가 자리하고 있는 모양인데 계속해서 라디오를 틀어대고 있어서 숙영하기가 마땅치가 않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남봉전망대 데크에 사이트를 구축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가파른 칠십여미터의 직벽 위에 새워진 데크라 바람을 맞으면 위험해 보였는데, 다행히 스마트폰 어플로 찾아본 모악산의 날씨는 시속 2Km의 느린 바람만 통과하고 있다고 예보하고 있었으니 오늘밤 바람의 공포에서는 벗어날 수 있으리라 진단하고 텐트를 치기로 하였다.
황혼이 가까워 오면서 운해 또한 장관을 연출하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젊은 산객 두 분이 노을을 보려고 일부러 오후에 산행에 들었다며 전망대로 올라 오신다. 행색을 보아하니 프로급의 산꾼이 분명하여 수인사를 나눈 후에 식수가 부족하다는 애로점을 피력하였다. 그랬더니, 당일 등반객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하게 준비해 왔다며 물 2리터 정도를 아낌없이 내어 주신다. 그러니 이제 식수 문제는 모두 해결이 된 셈이다 그래 다시한번 하늘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대원사를 버릴 때부터 걱정이 안되던 식수문제는 예견한 그대로 이렇게 간단히 해결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즉석에서 커피를 꿇여 대접하면서, 두 분의 동반산행에 대해 깊은 부러움을 표해 본다. 이 나이쯤 되면 모두다 뿔뿔히 흝어져 동반등반은 쉽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고 필자가 의견을 토로하였더니, 젊은 산객들은 솔로등반이 더 멋있다며 필자를 추켜 세운다. 결과적으로는 서로가 추켜주는 타화타찬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런들 어쩌랴? 모두 다 멋지지 아니한가?
밤이 깊어지면서 마음을 모두어 작정한 명상에 몰입하여 기도 또한 정성으로 드려 본다.
하늘 아래 모두가 한핏줄임을 토로하셨던 고은 선생의 서러운 모악산 시詩를 떠올리며 '은근과 끈기'를 자랑으로 내세우며 섪게 살아온 이 민족에 대해서 깊은 연민을 가져 본다. 사랑스런 우리 민족이시여. 할 수만 있으시면 떨쳐 일어나 타민족에게 밟혀 서럽다 하지 마시고, 기쁘게! 멋지게! 한번 살아 보소서!
그렇게 기도하는 내 모습이 그래도 아직은 섪디 서럽다.
평상시에는 모두 초월하였는데,
산정山頂에만 이르르면 이렇게 섪디 서러운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이 또한 집착인데......
- 2013년 6월 28일 완성하다 -
小鄕 權大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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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 돋움체-필자 글(녹색), 궁서체-인용 글(검은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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