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vel Report ]
영원한 거인 - 월남사지 삼층석탑
일 시 : 2015년 3월 15일(일)
아침에 법정 스님의 [서있는 사람들]을 읽다가 아무래도 시간이 남아 월남사지를 답사하고 오기로 했다. 한 팀은 천황봉 일출을 보러 떠났고 한 팀은 새벽 세시까지 캠프 화이어를 즐겼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간이 늦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나선 숲길은 싱그러웠고 새벽 공기는 정말 상쾌했다. 야영장을 빠져 나와 월남사로 길을 잡았다. 중간에 매화밭에서 보았던 백매는 어서 오라 반기고 있었다. 한참을 매원에서 스냅을 담다가 이내 발걸음을 월남사로 옮긴다.
월남사지에는 보물인 월남사삼층석탑과 진각국사 부도탑이 있기 때문에 답사 코스로는 최적인 곳이다.
그리고 근처에는 다산이 걸명소라는 글을 지어 차를 재촉하던 백운동 정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또한 국보급 문화재가 있는 강진 무위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대규모로 조성된 녹차밭의 뷰도 정말 좋은 곳이 이곳 월출산 남록의 모습이다.
진각국사 부도탑
무위사와 백련사에서도 똑같은 석질과 양식의 부도탑을 살펴 볼 수 있다
거대한 규모다
월남사지 진각국사 부도탑
보물 제313호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이 비석은 전라남도 강진군 월출산 기슭에 위치한 월남사의 창건주로 송광사 16국사 중 제2조인 진각국사(1178~1234)를 추모하기 위하여 고려 고종 때 건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진각국사의 속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식, 호는 무의자이고 법명은 혜심으로 화순현 사람이다. 고려 신종 4년(1201)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후 모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출가하였다. 출가한 후 보조국사 지눌의 문하에서 선학을 닦아 그 뒤를 이어 수선사의 제2세가 되었다. 그후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대선사가 되었다.
비는 전체적으로 매우 거대한 석비로서 장방형 대석에 귀부가 있다. 대석과 귀부는 한돌이다. 비석을 지고 있는 돌거북은 입에 구슬을 물고 긴 목을 빼어 들고 네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다. 비신은 편마암으로 되었으며 윗부분은 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이 남아 있으나 마멸 때문에 비문을 읽을 수는 없다. 비문은 고려의 문인 이규보가 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월남사지 진각국사 부도탑 (답사여행의 길잡이 5 - 전남, 초판 1995, 23쇄 2010, 돌베개)
꼬리 부분의 회화미
삼층석탑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 [月南寺址三層石塔]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원남리 854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98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7.4m이다.
월남사는 고려시대 진각국사 혜심(慧諶:1178∼1234)이 세운 사찰이다. 월남사터에 남아 있는 단층 기단(基壇) 위에 세운 3층 석탑으로, 기단이나 탑신부(塔身部)를 여러 개의 작은 석재(石材)로 각 부를 구성하였다.
기단은 장대석(長臺石)을 사각형으로 돌려놓고 중앙에 높직한 하대석을 놓고 있는데, 그 위에 우주석(隅柱石)과 면석(面石)을 별석으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역시 우주석과 면석을 별석으로 조성하였다. 탑신부는 1층 탑신이 2, 3층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고 지붕돌은 기단보다 넓고, 밑의 받침은 3단을 두었다. 지붕돌의 윗면은 전탑(塼塔:벽돌로 쌓은 탑)처럼 계단식 층단을 이루었으며, 추녀는 넓게 수평의 직선을 그리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 있다. 탑의 상륜부(相輪部)에는 받침 위에 장식한 석재가 남아 있다. 탑신의 모든 층을 같은 수법으로 조성하였고, 위로 오를수록 체감률이 낮다.
이 석탑은 전탑의 외모를 지녔다고 하여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고 하였으나, 여러 개의 판석형 석재를 끼워넣어 결구(結構)한 수법으로 보아 전탑이라 볼 수 없다. 이 탑은 기단과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돌로 조성한 것이나 1층의 지붕돌이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는 양식 등이 특징이다. 석재 결구에서 백제탑 양식을 많이 따른 석탑으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월남사지 삼층석탑 [月南寺址三層石塔] (두산백과)
단아한 월남사도 함께 자리한다
웅혼한 백제의 기상이 느껴지는 석탑
월남사지 [月南寺址]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32 지도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33,106㎡이다. 월출산을 배경으로 월남마을 중앙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남사재월출산남고려승진각소창유이규보비(月南寺在月出山南高麗僧眞覺所創有李奎報碑: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있는데 고려시대 진각국사가 창건하였고 이규보가 찬한 비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 고려 후기에 창건된 듯하나 언제 폐찰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동국여지지》에 ‘진각소창유이규보찬비금폐(眞覺所創有李奎報撰碑今廢)’라고 한 점으로 미루어 《동국여지지》를 쓸 당시(1649∼1659) 이미 월남사는 폐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인근에 있는 무위사의 사적기에 임진왜란 때 주변의 절이 모두 불타 사라졌다는 내용이 있어 월남사도 이때 폐찰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당지(金堂址)에는 월남사의 건물 초석과 기단으로 보이는 축대가 남아 있으며, 마을 어귀의 돌담장 근처에서 기와편과 청자·백자편, 탑재로 쓰인 직사각형의 판석들이 발견되었다. 1980년대 중반 모전석탑 우측에 있는 어느 민가의 장독대에서 석탑의 옥개석이 발견되었다.
지역민들의 구전에 따르면 월남사지에는 원래 2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모전석탑과 또 하나의 석탑이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발견된 옥개석의 세부 기법이 모전석탑 양식과 다른 신라의 양식과 기법을 따르고 있어,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같은 절터에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이 공존하였던 것이다.
기록대로 진각국사가 창건하였다면 월남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으며 모전석탑의 조성시기 또한 13세기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나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9)과 같은 백제계 탑들이 고려 초기부터 나타났음을 감안하 진각국사에 대한 기록은 당시 월남사의 중창일 것으로 보인다. 절터에는 민가가 있으며 마을 입구 양쪽에 월남사지 모전석탑(보물 298)과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가 있다.
참조항목: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성전면, 월남사지 삼층석탑
[네이버 지식백과] 월남사지 [月南寺址] (두산백과)
월남사
삼존불
유홍준이 극찬했던 백제 양식의 석탑
월남사지는 유적지 발굴과 조사로 인해 곳곳이 파헤쳐져 있었고, 와편이 널부러져 뒹구는 산만한 모습이었다.
진각국사 부도탑과 삼층석탑의 규모로 볼 때 이곳이 대단한 가람으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윤선도나 다산의 기록을 보면 이미 조선 시대에는 폐사가 진행되었던 듯 하다. 아마도 유가儒家 집단의 미움을 샀던 월남사가 아니었을까 짐작만 해 볼 뿐....... 이는 사학자의 몫이다.
참, 아름다운 신록의 날들이 흘러가고 있다.
- 2015년 3월 15일 완성하다 -
德 山 權 大 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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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 돋움체-필자 글(녹색), 궁서체-인용 글(검은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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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zanne - 향기로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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