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향일기 小鄕日記

가을 단풍에 물든 우리의 우정

梅君子 2016. 11. 21. 10:56



가을 단풍에 물든 우리의 우정 

 

 

 

일 시 : 2016년 11월 19일(토)

 

장 소 : 전남 화순군 동면 서성리 환산정

 

 

 

광주일고 47회 홈페이지에 한 달여 전부터 홍총장이 공지한 내용이 가을단풍 구경가기였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화순군의 명소인 환산정은 호수 속에 섬으로 앉아있는 최고의 명승지다. 그리고 그 정자를 굽어 보는 곳에 우리의 동기인 김재휴의 쉼터가 있다.


이름하여 선경헌禪憬軒!

고요할 선禪자에 깨어날 경憬자를 쓰는 당호로 필자가 지어 주었다.

이름하여 고요함으로 인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당호이니, 이리 좋을 수가? ㅎ

재휴는 저번달에 홍총장에게 전화를 하여 이런 제안을 한 바 있다.

"광주 친구들이 요즘 경기도에서 열렸던 [만남 50년] 행사에 참가하지 못해 일부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는데,

위로도 드릴 겸, 요즘 환산정의 단풍이 너무도 좋으니 홍총장이 공지를 띄워 단풍놀이를 한번 기획해 주면 어떻겠는가?

물론 단풍행사시 소요되는 점심식사를 포함한 모든 비용은 내가 부담할테니......"


김재휴의 제안은 받아들여 졌고, 오늘이 바로 그 길일이다.

닥터 김재휴는 전남대학교의과대학병원의 신경외과 과장으로 진료에 임하고 있는 한편,

화순에 있는 전남대학교화순노인전문병원의 병원장으로도 재직하면서, 참 인술에 헌신하는 진정한 의료인이라고 생각한다.





- 이 계곡 옆에 점심을 들었던 식당이 위치한다 -







단풍이 곱게도 물든 최적의 날인 11월 19일 토요일!

그런데 아쉽게도 가을비가 어제부터 내려서 나들이 나설 친구가 적게 모인 것이 흠이라고나 할까?

화순노인전문병원에서 만난 인원은 아쉽게도 총 8명.

김영호, 김재휴, 이승준, 이태연, 이충효, 한상수, 홍영재 그리고 필자.


가을비가 물러난 그림자 없는 날!

서성리 일대는 진정 환상의 단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단 민생고 해결을 위해 계곡 속에 빼어난 암릉미의 비경을 간직한 [햇살과 달빛] 식당으로 향했다.






- 이곳이 [햇살과 달빛] 식당 -


- 도착해서 담소를 나누는 친구들 -


- 낙엽을 쓸어내리는 가을장마 물길이 힘차다 -


- 재휴와 충효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


- 충효가 열심히 설명하던 휴대폰의 주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좌로부터 한상수, 김영호, 이충효)


(좌로부터 김재휴, 홍영재, 이태연)


(좌로부터 이승준, 한상수)


- 모두들 해줄 이야기가 많은 분들 -


- 코스요리가 시작되었다 -


- 광주에 몇개의 체인점을 낼 정도로 유명한 닭 코스 요리 (닭가슴살) -


- 색깔이 참 맛갈스럽다 (닭 훈제) -


- 다방면의 화제가 쏟아지던 우정의 날 -


- 모두들 건강한 노년의 삶을 영위하시길 -


- 가을비로 인해 단풍이 물러갈 조짐이다 -


- 친구들은 재휴의 쉼터로 향하고, 볼 일이 있어 필자는 여기서 이별을 나누었다 -


- 암석미가 빼어난 곳 -


- 가을비에 숨을 죽인 꽃 -





참으로 맛있는 코스요리를 즐기면서 친구들은 다방면의 화제를 꺼내어 지난 일들을 반추했다.

이제 나이가 드니 먼저간 친구들 이야기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근 500여명의 친구중에 먼저간 친구들이 10%를 넘어 간다니?,

장수가 진정한 화두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겠다.


친구들이여!

건강한 삶의 비결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나는 단식을 시작하면서 술과 담배를 끊어 버렸다네.

벌써 20여년 되었으니...... 그로인해 지금까지 아프지 않고 살아온 것이라네.

먼저 담배를 끊으시고...

마음 먹고 단식을 시작하면서 차제에 술도 끊어 버리시게!

피가 끓던 젊음이 사라졌다 한탄 마시고,

술, 담배 끊으시고 힘찬 노년의 삶을 다시 얻으시게!

그러면 붉은 피가 다시 부글부글 끓어 오를 걸세.

술, 담배? 그거 백해무익하다고 느끼는 날이 올 때 가서야... 진정 후회하지 마시고...


이게 필자의 바램이다.

볼 일이 있어 필자는 여기서 작별을 고하고 친구들은 재휴의 쉼터인 선경헌으로 향했다.

지금쯤 선경헌과 환산정에는 깊은 가을이 내려 앉아 있을 것이다.

친구들은 단풍 완상 후에 쉼터에 마련된 노래방에서 신나게들 노년의 가요제를 펼쳤으리라!


강령들 하시게!



지난번 교우회 모임을 환산정에서 가진 바 있는데, 궁금한 분들을 위해 환산정과 선경헌의 전경을 담았던 내용을 일부 따와 아래에 게시한다.

자세히 보실 분들은 아래의 영문 링크를 눌러 보시던지......



http://blog.daum.net/valeriano/17627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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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초여름에 선경헌에서 마음을 담다 




선경헌禪憬軒은 오랜 벗인 전남의대 김재휴 교수가 화순 동면의 승지인 환산정에 반해 찾아 들어와 쉼터를 만든 집의 당호를 이름한다.

[고요함을 깨닫는 집]이라는 뜻으로 필자가 지어준 그 당호를 김교수가 애용하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선경헌의 주변 풍경은 과연 빼어난 승지임에 틀림 없다.

왜냐하면 선경헌 바로 앞에는 필자가 수십년 전부터 찾아들어 정서함양에 매진하던 환산정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으로 둘러쳐진 곳에 있는 정자라는 뜻의 환산정環山亭은 필자가 펴낸 [한국의 멋을 찾아서]에 수록(교보문고 출간)되어 있으며, 필자가 엄선한 삼남지방 12개의 빼어난 정자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수승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선경헌에서 오랫만에 우리 동문들중에서도 훈장 선생님만의 모임인 교우회敎友會의 하계야유회가 펼져지게 되었다. 필자는 김교수와 미리 만난 날을 약속해 두었기에 광주일고47회 웹지기의 자격으로 취재차(?), 몸보신차(?) 카메라를 거머 쥐고서 방문하게 되었다. 워낙 좋아하던 환산정 정자에서 친구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버선발로라도 응당 뛰어감이 마땅하겠다!는 논리였다. 맞는가? ㅎ 

 

 

 

 

- 선경헌 앞에 자리한 환산정의 신록 -

 

- 환산정環山亭의 아름다운 모습 -

 

 

 

환산정(環山亭)


和順郡 東面 瑞石里 하서마을 앞 서성저수지 곁에 있다.

단층의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中齋室 건물이다.

 

文化柳氏 百泉 柳涵이 소축한 정자인데 그는 朝鮮 宣祖~光海君때에 愚伏 鄭經世, 芝峯 李○光, 九峯 曺煜등과 交遊하면서 學行으로 이름을 떨치다

丙子胡亂때 義兵을 일으켰으나 講和의 소식을 듣고 罷軍, 歸鄕하여 築亭하였다.

따라서 亭子는 17세기 전반기에 건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후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亭이 頹落되자 1896년에 後孫인 樂浩, 椎浩, 昶浩등이 중건하였고 다시 1933년에 基守, 聖榮등이 보수하였다.

 亭內에는 16개의 현판이 있다.

 

 

 

 

- 이곳이 김교수의 선경헌이다 -

 

- 모두들 6월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

 

- 이중표 교수가 선창으로 한 곡 뽑아들고 -

 




[아래의 글은 교보문고에 상재된 필자의 저서 <한국의 멋을 찾아서>에서 발췌해 온 환산정기의 일부분임]

 

 

 

 

 ▼환산정을 건립한 유함 선생이 남긴 원운

  
- 원운 原韻 -


庭有孤松階有菊 學來栗里晋先生 乾坤磊落違初計 山水幽閒托晩情
棄上春秋忘甲子 心中日月保皇明 歲寒後操其誰識 時與山翁和不平


<백천百泉 유함柳涵>

 

 


정에는 고송孤松 있고 계階에는 국화 있으니
율리栗里에 진선생晋先生을 배우려 왔도다
건곤은 퇴락한데 처음 계획을 어기었고
산수는 유한幽閒하니 늦은 정을 부쳤어라
잎사귀에 춘추春秋로 갑자甲子를 잊었고
마음 가운데 일월은 황명皇明을 안보했도다
세한후歲寒後의 지조를 그 뉘가 알랴
때는 산옹山翁과 더불어 불평을 화和하는 구나

 

 

 

 

 

 근차환상정운 謹次環山亭韻


再修亭役日 過者敬心生 獨抱春秋義 故爲山水情
北窓風尙在 東海月重明 丙事禽如識 夕陽啼不平


<후학後學 김영준金永駿>

 

 


두 번 정역亭役을 닦은 날에
지내는 자 공경심 일으키고나
홀로 춘추春秋의 의義를 간직했으니
그러므로 산수정山水情이 되었어라
북창北窓에는 바람이 오히려 있는데
동해東海에 달이 거듭 밝구려
병자丙子일을 새도 알고 있는 듯
석양에 불평을 울리구려

 

 

 

 

유백천 선생의 시문을 보면 ‘세한후歲寒後의 지조를 그 뉘가 알랴’하셨으니, 이는 ‘`겨울이 되어야 솔이 푸르른 줄 안다’는 세한후歲寒後 지송청知松靑이라는 말처럼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후에라도 사나이의 지조는 변함이 없지 않겠는가’하는 함축의 뜻이니 임군을 향한 일편단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며, 그 기개 또한 칭송 받아 마땅할 귀감이 된다 하겠다.


후학이라는 김영준은 백천의 기개를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지나가며 쓴 글 속에서 ‘홀로 춘추春秋의 의義를 간직했으니’라며 선생을 찬하는 글을 남겼다. 원래 의로운 일은 때를 가리지 않고 언젠가는 칭송 받기 마련인 것이 세상 이치이거늘, 사육신으로 유명했던 정몽주 선생은 비록 가셨으나 그 서슬 퍼렇던 이조 시절에도 고려의 충신이 배향되며 추앙 받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렇듯 의로운 기개는 항상 정의로 살아 남아 후인들의 가슴 속에서 꽃을 피우니, 사람이 사는 것이 대저 무엇을 위함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진리로 배웠던 학문을 정의롭게 실천함에 그 큰 뜻이 있지 않던가 말이다. 그래서 최영 장군의 혼도 지금까지 살아 남아서 길이 추앙 받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천 선생의 의로운 행적 또한 길이길이 본받아야 하리라.

 

 

 

 

 
謹書環山亭重建記後 근서환산정중건기후

 



擇勝地 構佳亭 此盖幽賞之一事 然苟無學問忠義 以先後之則 地雖勝 亭雖
佳 當時無所仰 後世無所稱 若是者 有亭猶無亭也 何足論哉 此亭 昔我八世祖
百泉先生 當丙子虜 ○募義到淸州 聞○和 歸隱的所築者也 竊想先生當是之
時 而築亭於此者 非直擇地之勝 正以其山益高 水益深 朝市遠而交遊息也 先
生嘗有詩日 何當携我堂堂士 ○取呼韓幕下看 又日 葉上春秋忘甲子 心中日月
保△皇 唯觀二詩 則先生志節 可管○矣 先生又嘗自言日 世居洛中 科甲綿綿
當時華閥 無如我家 若先生籍其勢焰 而取科第 則不○如拾地芥 不此之爲獨鴻
寬鵠擧婆娑 邱壑以的 大義扶正 綱爲主本 ○經籍○來學爲先務 玩心高明 結
情寥廓 是以在當時 而侯伯訪問之禮甚勤 在後世 而土林俎臣之義不替 鳴呼
盛矣 亭之廢壞 不知在何時 而今幸重建者 莫非僉族念厥祖之誠力其工役顚末
則族兄樂浩氏 記之詳矣 顧以不肖昶浩 亦先生後昆中一○○也每登亭 而望溪
山繞庭 而撫松菊 想像遊○ 曷勝曠感哉 玆述數行蕪語 以告吾門後承云爾.

<歲丙申十月初吉 八歲孫 昶浩謹識>


해설


승지를 택하여 가정佳亭을 지은 것은 대개 유상幽賞의 일사一事이다. 그러나 진실로 학문으로써 선후先後 하지 아니하면 지형이 비록 좋고 정亭은 비록 아름다우나 당시에 우러른바 없고 후세에 칭한바 없으니 이와 같으면 정은 있으나 정이 없음과 같으니 어찌 족히 논하랴. 이 정은 옛적 우리 8세조八世祖 백천선생百泉先生이 병자호란을 당하여 의려義旅를 모아 청주에 이르렀다가 화친 맺음을 듣고 은귀하여 수축한 것이다. 그윽히 생각컨데 선생께서 이때를 당하여 이곳에 정을 수축한 것은 다만 땅의 승勝함을 택한 것뿐만 아니라 바로 산이 더욱 높고 물이 더욱 깊어서 시조市朝를 멀리하고 교유를 끊음이다. 선생이 일찍이 시詩에 이르기를 「하당휴아당당사何當携我堂堂士 ○취호한막하간○取呼韓幕下看」 어찌 나의 당당한 선비를 끌어다 속박하여 삼한의 막하幕下로 보느냐 하였고, 또 이르기를 「엽상춘추망갑자葉上春秋忘甲子 심중일心中日 월보태황月保太皇」 일싹의 춘추로 갑자甲子를 잊었고 마음 가운데 일월은 태황太皇을 안보하였다 라는 두시를 본즉, 선생의 지절志節을 가히 헤아릴지로다. 선생이 또 일찍이 스스로 말씀하기를 대대로 낙중洛中에 살면서 과갑科甲이 면면하였으므로 당시에 화벌은 우리 집안과 같음이 없었다 하였으니, 만약 선생이 그 권세를 빙자하여 과제科第를 취할진대 땅에서 풀을 주음과 같을 뿐만 아니거늘 이를 하지 아니하고 홀로 홍관鴻寬 곡거鵠擧로 구학邱壑에 서식하면서 대의大義를 밝히고 정강正綱을 붙잡음으로써 주본主本을 삼고 경적經籍에 힘쓰고 래학來學을 열어줌으로써 선무先務를 삼아 고명高明에 완심玩心하고 요곽寥廓에 결정結情하였으니 이러므로써 당시에 있어서 후백侯伯의 방문訪問한 예禮가 심히 부지런하였고, 후세에 있어서 사림의 조두俎豆한 성誠이 폐하지 아니하였으니, 아! 성하도다. 정亭의 폐괴廢壞는 어느 때 인줄 알 수 없으나 이제 다행히 중건하게 됨은 첨족僉族의 궐조厥祖를 생각한 성력誠力이 아님이 없고 그 공역工役의 전말인즉 족형族兄 낙호씨樂浩氏의 기록이 자상한지라 돌이켜 보건대 불초 창호도 또한 선생 후손 중 하나의 찌꺼기라 매양 정亭에 올라 바라보니 계산溪山은 정庭을 둘렀고 송국松菊을 어루만져 유촉을 상상하니 어찌 광감曠感을 이기리까. 이에 두어줄 무어蕪語를 기술하여 우리 문중 후손들에게 고告하노라. <병신 시월 초 길에 팔세 손 창호昶浩 삼가 지음>

 

 

 


 

 ▲새벽안개 너무 좋은 가을 녘의 환산정

 

 

 

 

환산정은 봄날의 벚꽃과 가을날의 단풍이 특히 좋은 곳이다. 벚꽃 피어 오르는 봄날에 나른한 춘곤증을 어쩌지 못하고 길을 나선다면 꼭 환산정에 들러 보기를 권한다. 무등산 깊은 계곡의 물이 흘러 들어 옴으로 인해 그 물이 차갑고 맑아서 강태공들에게 도움이 될런지 어떨지 알 수야 없겠지만, 봄날의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그 정취만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에 틀림이 없다.


반짓고리처럼 둘러 쳐진 환산環山의 섬과 그림처럼 앉아있는 정자亭子의 모습에 취하다가 한 점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봄 날의 일렁거리는 아지랑이와 함께 떨어지는 벚꽃 잎새들의 하얀 군무에 취할 것인즉, 필시 옛 시인이 환상정을 노래했던 그 정취를 어찌 깨닫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벚꽃 피는 환산동천環山洞天

 

 

어즈버, 님 그리워 환산정에 올랐더니
우리 님은 오지 않고 벚꽃만 기다리네


이곳에서 벚꽃 봄은, 님의 소식 같음이니
애써 마음 달래면서 아지랑이 바라보네


흩날리는 봄바람에 벚꽃들이 날리우자
바람결에 우수수- 날개 달고 춤을 추니


낙화하는 벚꽃마다 춤을 추는 자태들이
햇빛 물고 반짝이는 춘설春雪 내림 닮았고녀


춘곤으로 졸다 말다 하얀 나비 찾아 드니
오호라, 낙화유수落花流水 백락동천百樂洞天 예로구나


 

 

- 소향小鄕 권대웅權大雄

 



지난번 선경헌 취재기 자료 바로 가기 -- 아래 영문의 검은 URL 클릭! --->> 아름다운 초여름에 선경헌에서 마음을 담다 

http://blog.daum.net/valeriano/17627806



 

 

 

- 2016년 11월 21일 완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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