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문집

타는 봄을 찬미했던 앵도음(櫻桃吟)의 날

梅君子 2010. 5. 5. 16:05

 

 

타는 봄을 찬미했던 앵도음(櫻桃吟)의 날

 

 

 

 

열린 날 : 2010년 5월 1일 오전 11시

장     소 : 명 경 헌 뜨락

시 쓰신분 : 시인 박주관교수

사     진 : 화백 김혁정교수

 

 

 

- 앵두꽃이 이쁘게 피어 올랐다 -

 

 

산앵음한지도 꽤 되었는데...

복숭아꽃 피는 날 만나 도화음桃花吟을 하자고 약속했던 이들이

서로의 일정이 맞지를 않아 연기를 하다가...

오늘 만나게 되었으니...

도원결의라는 의미의 도화음桃花吟으로 해도 좋겠지만...

앵두꽃이 마침 보기에 좋으므로 그냥 앵도음(櫻桃吟)의 날이라 명명하기로 했다.

타는 봄날에 아무 날이면 어떠랴...

꽃 핀다는 핑계로 만나면 되었지...

 

우리는 오늘도 날이 맞지 않을 것 같아서 모든 일 작파하고...

두 눈 딱 감고, 이른 시간에 미르기화백의 아뜨리에에서 만나,

아무런 이유도 달지 않고 그냥 결행을 하기로 했다.

 

왜?

앵도화 피었고...

First of May이니까...

그만하면 명분이 딱!!!

 

 

 - 청옥동을 지나 미지의 금단동을 답사하였다 -

 - 죽림재는 조씨문중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

- 장서각이 있을 정도로 죽림재는 학문행이 깊었던 곳이다 -

 - 박주관 시인과 함께 무등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

- 미르기 김혁정화백과도 함께 (광주호에서) -

 

 

그 전날...

찬란한 봄빛을 받으며...

석곡동, 청옥동, 금단동, 죽림재...

광주호, 금곡도요지 등을 돌아 보았기에...

어찌보면 명경헌은 연속으로 치러지는 심춘深春의 2부 행사라 할 수 있었다.

 

오매불망 초대하던 손님이 오셨으니...

이로써 족하고 내... 오늘 한번 신나게 놀아 보리라...

 

사진은 화백이자 사진에도 조예가 깊은 김혁정 교수가 찍어 주었고...

주옥 같은 <명경헌 예찬>은 시인인 박주관 교수가 남겨 주었으니...

오늘은 명경헌明耕軒이 호사스런 멋태를 한껏 부린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함께 동문수학했던 이들이 찾아와서 명경헌을 이쁘게 보아 주시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 박시인은 명경헌에 도착하자 시상을 가다듬기 시작하였다 -

  

 
박주관   시인의 시감상

시인 겸 언론인
1953 전남 광주 출생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3 <<풀과별>>에 시 <젖어서 사는 의미> 등이 추천되어 등단  
2001 제3회 천상병 문학상 수상 (시집 ‘적벽은 아름답다’)
       <<5월시>> 동인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남광주>    청사  1985
시집 <몇 사람이 없어도>    청하  1986
시집 <사랑을 찾기 위하여>    학민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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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주관은 1953년 광주시 북동에서 태어나 광주서중·일고를 거쳐, 동국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2년부터 문예진흥원에 근무하다가, 1988년 무등일보 정치부 차장으로 옮기면서 언론계에 투신하였다. 그 후 광주매일 지역사회부장, 광남일보 경제부장, 사회부장 등을 거쳐 지금은 호남신문 논설위원으로 있다. 1997년 조선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마쳤다. 또한 광주대 문창과와 동신대 국문과 겸임교수로 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 아래의 주옥같은 장편 시를 써주었던 박시인에게 감사를 드린다 +++++++

 

 

 

 

 

명 경 헌 음 운

明 耕 軒 音 韻

 

 

朴 柱 官 (2010년 5월 찬란한 첫 날에 쓰다)   

 

 

I

 

물소리 빛나며 들리고

바람 소소히 흘러드는

옛 절터 명경헌明耕軒에

봄빛 사태져 쏟아져 내린다

 

 

 

II

 

사람소리 없는 햇볕 잔잔한 곳

소계곡 흐르는 잔잔한 저 물소리

누굴, 자연을,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반기는 모습인가

숲나무, 꽃들 스스로 울타리 선

피안의 공간을 만든다

잠시 머물고 가는 이 욕심을 허許하소서

 

 

 

III

 

음악이 흐르는 햇빛 조요로운 오두막 한 채

흔적없이 스쳐가는 물, 바람소리만

배경으로 넘쳐 흐르는 참, 고적한 곳

미혹의 세계를 벗어난 텅빈 충만의 집 하나.

찰나도 쉬어가는 무심無心의 집이리니

행복幸福하도다. 충만하도다

 

 

 

IV

 

밥 짓는 냄새도 진정 못 맡겠네

사진 속에서 가족이 웃어도 보이지 않네

세계의 정상들이 악수하는 모습도

명경헌明耕軒에선 무명의 미물로 사라진다네.

이곳에 와서는

사라지는 슬픔보다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마음이 깨닫고 나를 깨우쳐 주는

영성이 깃든 곳임을 감지할 수 있어

빈마음들이 충일로 가는 길목임을 보았다네

 

 

 

 

 

V

 

잔설마냥 귓바퀴를 하나 둘 적셔드는

잔풀들의 살아 있음으로

내 미망의 신경들이 깨어나는 시간쯤,

명경헌明耕軒의 나무수액들이 젖어들고 있다

나풀거리는 잔잎들의 흔들림에

내마음도 실어서 보내니

없어지는게 아니라 계속 흘러가고 있는

작은 계곡의 물소리 마냥

온 몸으로 적셔들며 속삭인다

이 집은 그대를 위하여 늘 기다리고 있었다

한번 처음으로 와 본 명경헌明耕軒은 미소 지으며

아무 말 없이 흔들리며 다가 오기만 한다

 

 

 

VI

 

그대

사랑함

진정으로

자연의 선물을 받음과 같으니

이 집의 지세가 풀을 자라게 하고

나무들을 순박純朴하게 하거늘

음악 들으며 시詩 적으며 사진 찍는

그대들도 청심淸心하거늘

집 한 채가 주는 힘은 바로

명당明堂으로서 지격地格을 높이는 것.

명경헌 사랑하고 사랑함은

진정으로 나를 태어나게 하고

그대들을 도반들을 다시 만나게 하니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5月의 진정 찬란한 첫 날의 공기에

마음껏 취해서 미망에서 벗어나는

시간들의 혜안 안에 거居하게 하소서

풀 한포기 바람 한 줌 아름다운 세상 이루는

명경헌明耕軒의 따뜻함과 온아함에 취해서

5월의 첫 날이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태어나고 있구나

 

 

 

VII

 

단아한 한 사람의 모습을 본다.

아바타의 변신도 아니요

인생의 세월 흐름에 변한 것도 아닌

진정스런 처음 만났던 그때의 모습대로

자유로운 인간의 주유천하가 여기 있었다.

권대웅. 오늘 당신의 요리사 분신分身은

무어라 표현해도 부족할 것이고

어떤 미사여구가 그 가치를 평가하리오.

당신의 모습은 저 70년대의 폭풍 속에 있었고

고흥의 큰바다에도 있었고 광주光州의 양동천변에도

그 그 이전以前 충장로의 그 음악홀에도

5.18의 진실 세움에도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변變한 것은 결코 없었다.

처음 세상에 나온 그 시간대로

그동안 그대가 자유로움으로 행동했던 그 순수함으로

이곳. 大德 땅에 큰 덕을 쌓았으니

사람들이 와서 보는 그리곤 새로운 에너지를 충만하게 받아

떠나는 이 조촐한 명경헌明耕軒에서의

인생정심人生正心을 배우고 떠나니.

당신이 있음으로 이곳을 왔다간 자者들아. 행복하여라

 

 

 

VIII. 때죽나무 아십니까

 

떼죽일까 때죽일까

처음 들어본 나무 이름

신기한 언어의 그 의미를 알려면

명경헌明耕軒에 오세요.

이름 모를 꽃들, 풀, 나무들은

이미 이름이 있었지만

인간人間들이 몰라서 모른 것일 뿐

사람들아. 당신들이 이름 모를 군상일 뿐

자연스럽게 자연의 사물들은

이름이 이미 명명돼 있었다.

이제야. 그 진실을 깨달았다

 

 

 

VIIII. 가락, 한가락 소리

 

영원히 흘러가는 시간 소리

계곡에서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

현악기 타고 흐르는 국악 한 소리

우리의 귓전을 스쳐가는

무명無明의 해탈자여,

그대들을 안고서 헤쳐가는

인생의 지혜를 배우려는 자세 하나로

이곳의 봄볕 맞으러 왔으니

허공에서 만나서 부딛히는

소리의 진실을 깨닫게 하소서.

깨닫는 자에게 소리가 안겨들고 있다

 

 

 

X. 봄 날의 상추쌈

 

상추쌈을 산 속에서 들어 보니

새소리가 얹어져 세상이 더욱 맛있고나

맛으로 길든 세계 속에서 빠져나와

무위자연으로 된장 부벼 먹으니

바베큐 목살도 기똥차게 혀를 간지럽히고

도시 속 갇힌 식당가에서 먹던 맛이

풀어져 숲 속으로 날으며 명경헌明耕軒 찾아 온

사람들을 기깔나게 만드는 재조가 있구나

 

 

 

xi. 돌 하나 돌 둘

 

거북돌 쌓으니 돌 던져 버리고 가던 옛길 아니로다

한마음 모두어 적선으로 모은 돌들

계곡 옆 채워 놓으니 빛나는 산돌로 살아나는고야

흰나비 날아들어 차가운 돌에 앉을라 치면

바람이 장난 불어 다시 날아 가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저 한 개의 돌탑이어도

바람도 꽃도 계곡물도 심히 우러르며

한암을 지내고 하루 이틀 사흘

영원의 시간을 함께하는 무언의 약속이거늘

아름다운 명경헌에서는 자연도 살아나고

살아 있지만 죽어있는 인간들도 다 함께 살아나는

돌의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차가운 것이 영원히 차가운 것은 아니다

 

 

 

xiii. 의자 몇 개

 

손님을 기다리는 저 숲 속의 의자 몇 개

언제든 비어있어도 좋고

가끔은 누군가가 와서 앉아도 좋지만

비어있음이 채워지기 위해서는 더욱 길어야 한다

오는 이 없어도 바람이 쉬었다 가고

새소리도 머물러 가고

무슨 걱정을 하랴

아무도 오지 않음이 더욱 더 그리워지는 명경헌明耕軒의 공간이여!

 

 

 

viiii. 주인이 말하길

 

손님 대접함이 내 보시요 적선이요

그대들의 집에서 처럼

평안平安하게 지내다 가시소서

어디든 자기 집이 되는 것, 그것이 시혜요

나눔이요 사랑이다

 

 

 

xv. 목련나무 지기로서니

 

나무에 목련꽃 없어도

그 가지 사이로 보이는 저 연초록색의

녹음들이 다가오니, 가슴이 애리다

초록의 바다에서

꽃 지고 나무 푸르르니 더욱 아름답고나

세상의 뜻은 모두가 바라 보면서 만드는 것이거늘

먼 하늘 바라보다 가까운 숲으로 눈을 돌린다

 

- 끝 -

 

......

  

 

 

 - 앵도음의 날에 필자는 너무 마음이 일렁여서 주체할 수 없었음을 고백해 본다 -

  

 

  

 

 

 

 

앵 도 음 의  날

 

마음 실어 보낸

진즉에

그대 떠남을 알았다

 

그러나 어쩌랴

그대 떠났다고

슬퍼할 사이 있겠는가

 

 

 

앵두꽃 피어 오르고

연초록 향기 뽐내는

깊은 봄 날도 왔으니

 

매화여 매화여

그대 그리워 한들

어디 계절이 용서나 하겠는가

 

 

 

                                                - 小 鄕     

 

 

 

 

 

 

마음맞는 지기들과 그리운 정담을 나누고

평소 공감했던 부분들을 다시한번 꺼내어 재공감하면서...

그리 살다 가면 되는 거지...

무슨 심오한 철학적 명제가 필요할 것이며...

잡다한 세파에 옷 젖을 일 있겠는가 말이다.

 

오랫만에 마음맞는 지기들과

실컷 떠들고...

실컷 웃어대며...

세월을 거꾸로 돌아가...

학창시절을 헤매었더니...

문득 지금의 내가 호접몽蝴蝶夢이 되었다.

학창시절의 내가...

늙은 내를 보고 깜짝 놀랐으나...

늙은 나비는

움쩍도 하지 않았다.

세월을 비켜가지 않은 연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윤회설을 강조하므로 해서

4계급의 신분이 고착화 되고...

신분상승은 내생에도 불가능하다고 천민들을 호도한단다.

그러니 어찌 보면 윤회설도 치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리 생각해 보면 아무리 깊은 사유라도...

호접몽과 다름 없다.

 

생멸生滅을 이겨낼

윤회輪廻는 없다!

 

 

小 鄕   權  大  雄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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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은 이곳 카페에 더 있습니다.

http://cafe.daum.net/valeriano

  

 

 

 

P.S: 배경음악은 Beethoven의 Spring Sonata "2악장"

 

  

- 2010년 5월 5일 완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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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기 김혁정 화백 간단 소개]

“건강한 문화로 우리사회 밝히는 사명 다할 터… ”

물 흐르듯 바람 불듯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인'

 

화가 김혁정 씨의 개인전이 10월 2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송화갤러리에서 열렸다. 60점에 상당하는 출품작은 그동안 김혁정 화백이 살아오면서 겪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담백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림을 향한 그의 열정은 살아있는 생명의 호흡과 유사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김혁정 자신의 삶에 대한 역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혁정은 8년간의 파리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95년 귀국한 후 1997년부터 올해로 10회에 달하는 작품전을 열어왔다. 소박하고 털털한 김혁정 화백의 무한한 작품 세계를 감상해보자.

김혁정은 작품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포용하려고 노력하는 화가이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2년, 3년, 5년 간격으로 작품의 오브제에 변화를 주었을 정도로 열정이 있는 화가이다.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자신의 작품이 분류되거나 정형화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려는 노력보다 작품의 질을 위한 변화를 소중히 여겼다. 이뿐 아니라 김혁정 화백은 “작가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으면 토해내듯 다량의 작품을 제작을 해두는 게 좋다”라며 꾸준히 작품전을 치러왔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하려는 예술가로서의 결단이다.

그를 사로잡은 하늘ㆍ구름ㆍ섬 그리고 나무 바다, 하늘과 구름, 섬 등의 자연 소재를 통해 특유의 조형적 감각으로 그림을 그려온 김혁정은 “내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경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을 때 바다와 하늘에 심취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심상에 떠오르는 하늘과 바다를 그렸다. 문학적 표현은 글로는 가능하지만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자연 안에 비어있는 의미들을 담은 것이다. 김 화백은 작품을 구상화와 추상화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작품에 존재하는 것을 재현해내는 가시적 세계와 고양된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한 비가시적 세계를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비결이 된 것이다.
실제로 그는 바다가 없는 곳에서 바다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바다를 그리다가 여수로 발령을 받아 바다 곁에서 관찰하며 그리는 작업을 했다. 오히려 그는 관념적인 생각에서 시작하여 바다를 체화함으로써 작품을 고양시킨 것이다. 김 화백은 바다를 직접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바다에서 섬으로 관심이 전이되었다고 한다. 그는 “고독하고 외롭게 느껴지는 섬들도 사람처럼 모여 사는구나”라는 생각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섬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바다 섬, 그리고 하늘을 보기 위해 산을 만났고, 산에서 숲을 만나면서 다시 나무를 만나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번 작품전에서 나무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김혁정은 “여름에 놀면 가을이나 겨울에 결실을 맺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여름에 상당히 많은 양의 작품을 준비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무를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여름이란 계절을 통해 비발디의 ‘사계’에서 영감을 얻어 나무를 통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표현해보려던 것이 본이 아니게 이번 작품전의 포인트가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작품을 보는 이들이 최근 카탈로그를 보며 작품이 변했다고 하는데, 소재나 주제가 달라지고 친필 사인이 없다하더라도 내 작품을 김혁정의 작품으로 알아봐주길 바란다”고 화가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그가 나무와 친해진 사연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2006년 별세한 전 목포대학교 김웅배 총장을 통해 나무를 깊이 알게 된 것이다. 김혁정은 “고 김웅배 총장과 깊은 정신적 교감을 나누며 직접나무를 기르고 가꿨다”며 “그가 그립다보니 나의 기억 속에는 늘 그의 잔재가 남아있어 작품에 나무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우리가 늘 즐겨 보는 미술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형과 색이 다른 여러 가지들을 나열하고 그것들을 적절히 변화시키는 것으로 간단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계(四季)’ 또한 마찬가지로, 강수량과 기온의 변화가 1년을 단위로 변화해 나가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런 본질적인 공통점 덕분에 김혁정 화백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그림으로 묘사해내기에 적합한 테마가 된 것이다.

       


나의 인생 나의 길, 미술세계는 나의 천명
일제 시대 때 국전초대 작가로서 위상을 펼친 김흥남 화백의 아들인 김혁정은 “가업을 이어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가 어린 시절 회상할 때 아버지는 한번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김혁정 화백은 장군이나 대통령이 아닌 스스로 “나의 꿈은 화가”라고 말해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이뿐 아니라 초등학교 4학년 당시 미술대회에 나가서 큰 상을 받았는데 공부를 하길 원한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무서워서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 그를 옆집 아주머니가 발견하여 집에 데려다 준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처럼 그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천명이었다.
김혁정 화백은 독특한 이력도 있는데 사범대를 나와서 미술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가 본격적인 미술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던 시절, 학생들과 함께 사찰을 갔을 때 한 학생이 ‘탱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바로 그 순간 미술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 미술에 대한 그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후 김 화백은 한점의 주저함 없이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가 한국 미술사를 공부해, 당시 ‘화순 천불동의 석불과 석탑’이라는 논문을 써서 동양미술에 대한 색다른 이론을 성립한 화가로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김혁정 화백이 작업을 할 때에는 서양재료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다 보니 이에서 비롯되는 미술에 대한 목마름은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소르본 1대학 조형미술 박사과정 수료하며 8년이라는 세월을 파리에서 미술 공부에 전념했다. 그에게 있어서 파리 유학의 궁극적 목적은 화가로서 성장과 발전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그는 미술사 전반에 관한 것을 아우를 수 있고 방향성을 가진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이다.

사회적 사명감을 가진 화가 ‘김혁정’
세상이 어지러워 보인다. 정치적인 중심축은 흔들리고 국민들은 국가 위기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다. 물론 열정적으로 나랏일에 많은 것을 희생하는 애국자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경제난 속에서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근심에 갇혀있다.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혁정 화백이 화가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이 이러한 것이다. “작품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끼고, 작품이 그들의 삶에 청량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것”이 사회적 사명감을 가진 화가 김혁정의 바람이다. 김 화백은 “건강한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문화가 정치, 경제, 사회를 올바로 잡아주는 뿌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림이 조형미술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요즘같이 어려운 때 오히려 문화로 눈을 돌려 예술적 감성을 살려야 한다. 예술이란 사람의 보편적인 감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술이라는 다리가 놓아지고 이를 통해 공감대가 형성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김 화백은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고 만났을 때 웃음질 수 있게 만들고 인간의 폭력적 성향까지도 잠재울 수 있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것이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될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이토록 사회적 사명감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에게는 행복추구의 권리가 있다”고 믿는 신념이 김혁정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함께 향유하고 누릴 수 있게 모두가 노력해야 하고 이를 위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하는데 현재 정치인도 문화인도 이 공통분모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물이 흐르듯 바람이 불 듯 자연스럽게 살기를 소망하는 김혁정 화백은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인이다. 자유로운 사고와 예술관을 가진 그는 특히 부인 허원 씨의 지혜로움에 대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아내로서 사는 것이 보통 가슴이 아니고서는 어려운데 내조를 잘해주어서 고맙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처럼 사명을 가진 화가로서 한 남자로서 진정성을 추구하는 화백 김혁정은 개인전뿐만 아니라 자신의 화실에 미술과 전혀 무관하고 전공이 다른 사람들을 종종 초대한다고 했다. “미술에 대해 순수한 사람들이 작품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고 찾는지를 고백할 때 큰 깨달음을 얻는다.” 심지어 그는 어린아이를 통해 배우기 위해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방명록 하나도 소중히 여긴다”는 그는 “이 모든 것들이 진정 나의 스승이자 텍스트가 된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겸손함과 따뜻한 인간미로 한국미술의 기상도를 포근하게 만든 김혁정 화백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 취재 홍성아 기자 -